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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르키소스 ①

기자명 김권태

나르키소스 신화는 나와 타자에 대한 시원적 질문

나르키소스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물의 요정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났다. 리리오페는 아이가 오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갔다가, “만약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듣게 되었다.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소년으로 성장했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이 강해 아무에게도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숲의 요정 에코가 나르키소스에게 반해 상사(相思)를 주체하지 못하다가 숲 속에서 뛰쳐나와 그를 끌어안았다. 나르키소스는 그의 사랑을 거부하며, “너 같은 것에 안기느니 차라리 죽고야 말겠다”라고 말했다. 에코는 모욕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숲속으로 달아났고, 하루가 다르게 야위다가 결국 모든 몸이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이때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요정들이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랑의 아픔을 겪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그 기도에 응답하여 나르키소스를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기이한 형벌을 내렸다. 이에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만 사랑에 빠졌다. 나르키소스는 연인을 갈망하듯 수면에 비친 자기 자신을 뜨겁게 사랑했고, 그 자신에게 닿으려고 할 때마다 환영처럼 사라지는 사랑에 비통해하며 쓸쓸히 죽어갔다. 그 후 그가 죽은 물가에는 황홀한 듯 노란 꽃잎의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 꽃을 가리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불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나와 다른 존재 인식서 출발
상호의존적인 연기법 함의
개인의 심리 연원과도 관련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나와 타자의 관계를 묻는 시원적인 질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심리적 탄생과 더불어 의미의 기원과도 관련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물음은 나와 다른 별개의 타자를 인식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연기적 물음이다.

생애 초기, 아기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욕구를 채워주는 엄마를 자기로 착각하여 엄마와 심리적 융합관계를 이룬다. 이 시기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전능감을 통해 출생과 더불어 시작되는 압도적인 외부자극, 즉 죽음불안을 견뎌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기들은 신체발달과 더불어 서서히 현실감각을 익히며 엄마와 분리될 준비를 한다. 특히 생후 6개월이 지난 아기들은 팔과 어깨에 힘이 생겨 배밀이와 동시에 방바닥을 조금씩 기어 다니며 엄마와의 분리를 시도한다. 또 낯가리기가 시작되어 낯선 타인을 구별하고 경계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 자신의 신체이미지에 대해 환호하기도 한다. 나와 타인을 분리함으로써 비로소 고유한 자기만의 심리적 현실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16살의 소년이 되었어도 자기와 자기이미지를 구별하지 못했다. 전능감에 가득 찬 아기처럼 오만하게도 세상 모든 것을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세상이 온통 자기로 뒤덮여 있었다. 수면 위에 비친 아름다운 자기모습은 실은 생애 초기 온통 사랑 가득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았던 엄마의 시선 속에 떠있는 나르키소스다.(혹은 그런 사랑이 결핍되어 과대자기로 환상화한 ‘텅 빈 자기’다.) 그는 실제의 현실과 정면 대결하지 못하고 내면의 충만했던 시기로 거짓 환상을 만들어 도피한 것이다. 언어 이전의 경험들은 표상과 감정으로 소용돌이치는 우리의 분열된 무의식이다. 의식으로 지각되진 않으나 몸과 정신에 아로새겨진 생애 초기의 ‘이름 없는 표상’과 ‘주인 없는 표상’들이다.

정신증은 바로 이 분열된 무의식이 현실을 압도하는 세계이다. 나와 타자의 경계가 없고 심리적 현실과 객관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말이 사물이 되고 환상이 실재가 되는 세계이다. 끝없는 혼잣말의 세계이며, 죽음이 자신의 내면에 떠오르는 나르키소스의 세계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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