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 생명과 평화

기자명 최원형

힘들기에 더 꿋꿋이 나가는 것, 이것이 희망

생명평화, 이 말은 그 의미를 미처 알기도 전에 익숙해져버렸다. 너무 익숙해서 말이 담고 있는 뜻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본 노노코씨 원전사고 후 변화
사진에 방사능 위험 메시지 담아
한국서 전시회…탈핵 순례 동참
“나를 강하게 만든 건 아이들”

지난주에 후쿠시마 6주기 사진전 ‘100인의 어머니와 아기 +9’를 기념하는 토크가 있었다. 나는 토크의 진행을 맡게 되면서 이번 전시회의 사진작가인 카메야마 노노코 씨를 알게 됐다.

카메야마 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그 이전과는 180도 바뀐 삶을 살게 되었다. 그녀는 한때 제법 잘 나가던 사진작가였다. 패션화보를 찍으며 유명세를 쌓아가고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삶의 방향은 완전히 뒤바꾸게 된 계기는 후쿠시마 사고였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그녀는 핵에 대해 무지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패션 화보 촬영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다 후쿠시마 소식을 접했다. 일본 도쿄에는 그녀의 6개월 된 쌍둥이가 있었다. 도쿄로 돌아오자마자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했고 도쿄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자 곧 안전한 곳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이주한 곳이 이토시마에 있는 이토나미 공동체였다. 그곳은 자연에 순응하며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주하기 전부터 그녀는 방사능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사진으로 그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다.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을 피해 이주한 엄마들은 그렇게 해서 만난 카메야마 씨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0인의 어머니들이 됐다.

카메야마 씨를 기다리는 동안 전시된 사진을 둘러보았다. 유독 내 눈길을 붙드는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아주 작은 아기 발이었다. 막 태어난 아가의 발인 듯 했다. 얼마나 작고 보드라운 발인지 사진인데도 그 느낌이 전해졌다. 아이를 낳고 길러본 엄마라면 누구나 아가의 그 작고 작은 발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안다. 두 발을 보며 세상에 태어난 아가에게 축복을 보냈다. 그 축복이 ‘핵 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울컥했다.

카메야마 씨는 쌍둥이와 세 살 배기 막내를 데리고 왔다. 한 손에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카메야마 씨는 막내 수이에게 젖을 물렸다. 엄마 옷 속에 들어가 젖을 먹던 수이는 이내 잠이 들었고 카메야마 씨는 토크가 끝날 때까지 왼팔로 수이를 안고 토크를 이어갔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이 작은 사람들을 나는 지킨다. 온 힘을 다해.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카메야마 씨가 그의 사진에 곁들여 적어 놓은 이 글이 그의 모습에 고스란히 살아나는 걸 지켜봤다. 그에게 무한 신뢰가 생겼다. 카메야마 씨는 2월 28일 한국에 와서 부산과 울산에서 전시회와 강연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3월 5일 토크가 있던 날 오전에는 부산, 울산 지역 사람들과 탈핵 순례를 했다.

카메야마 씨는 후쿠시마 사고에 대해 분노했고 여전히 분노한다고 했다. 그런데 분노만 하고 있는 것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계속 키우는 일이라 했다. 그는 분노마저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했다. 인생은 끝없는 배움의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은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준다고 했다. 엄마들과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긍정의 에너지를 배운 것 같았다. 누군가가 용기를 가지고 던진 어떤 말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피운다고 그는 얘기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그 꽃을 알아채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꽃은 거기서 또 씨앗을 퍼뜨려 다른 어딘가에서 또다시 꽃을 피울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핵 없는 세상을 희망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결국 서로를 살리는 힘이 될 거라는 그의 믿음이 곧 희망이었다. ‘어렵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힘들다고 해서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들기 때문에 더불어 더 꿋꿋이 올바름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희망’이라던 강수돌 선생의 글이 생각났다.

이번 사진전에는 ‘동아시아 생명평화’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한국은 사드배치로 중국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었고, 일본은 헌법 9조를 바꾸어 평화를 위협하려한다. 이 모든 것은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이다. 동아시아의 생명평화는 그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며 함께 이해하며 함께 도울 때 지켜질 것이다. 그 길에 카메야마 씨를 만났다.

* 사진전은 3월11~20일 서울시청 본청사 1층 전시공간에서 열린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