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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백리해의 인욕바라밀

“당신에게는 천하를 움직일 큰 재능이 있어요”

▲ 그림=근호

백리해(百里奚)는 우(虞)나라 사람이다.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아내를 얻은 그는 매우 가난했다. 백리해는 집안을 건사해보고자 여러모로 애썼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이 생기자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어느 날 아내 두(杜)씨가 그에게 말했다.

아내 독려에 큰 뜻 품고 집 나서
온갖 고난 견디며 70살에 고위직
참고 견디지 않고 큰일은 불가능
인욕 실천하는 보살의 삶 닮아야

“당신에게는 천하를 움직일 만한 큰 재능이 있어요. 아들과 저의 살림은 어떻게든 제가 꾸려갈 터이니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세요.”

남편을 배웅하기 위해 두씨는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재산인 암탉을 잡았다. 암탉을 삶을 땔감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문빗장을 뜯어 불을 지펴야만 했다. 눈물을 흘리며 한 끼를 배불리 먹은 후 백리해는 집을 떠났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그를 임금에게 천거해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집을 떠난 지 십 년, 그의 나이는 이미 마흔 고개를 넘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껏 밥을 구걸하며 세상을 떠도는 거지 신세였다.

그런 백리해를 건숙(蹇叔)이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었는데, 나이가 한 살 많은 건숙이 형이 되었다. 백리해가 건숙과 함께 사는 동안 제(齊)나라에서 난이 일어났다. 공자(公子) 무지(無知)가 양공(襄公)을 죽이고 군위(君位)에 오른 것이다. 무지는 널리 인재를 모집했고, 그 소식을 들은 백리해는 무지를 찾아가려 하였다. 건숙이 백리해를 말렸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의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소. 가지 않는 편이 좋소.”

그 말을 받아들여 백리해는 무지에게 가지 않았는데, 과연 얼마 안 있어 무지는 패망하고 말았다.

두 번째로, 백리해는 주(周)나라 왕자인 퇴(頹)를 찾아가 벼슬을 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건숙이 백리해를 만류하는 것이었다. 건숙은 퇴의 인품으로 보아 그를 섬기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백리해를 만류했고, 백리해는 이번에도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건숙의 예측대로 퇴 역시 패망하였다.

세 번째로, 백리해는 궁지기(宮之寄)라는 사람의 천거를 받아 우공(虞公)을 모시며 중대부(中大夫)라는 벼슬을 할 기회를 잡았는데, 이번에도 건숙이 “우공은 사람이 잘고 변변치 못하오. 앞으로 유망한 주인이 될 것 같지 않다는 뜻이오.”라고 말하며 그를 만류했다.

백리해가 한숨을 쉬며 하소했다. “제가 지금 너무 곤궁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땅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겐 지금 물 한 모금이 필요합니다.”

“정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소. 나는 고향으로 떠나려 하오. 다음 날 날 만나려거든 송(宋)나라 명록촌(鳴鹿村)으로 오시오.”

두 사람은 헤어졌고, 백리해는 우공의 신하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건숙의 예측은 들어맞아 우공은 진(晉)나라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 얼마 후 백리해는 진목공(秦穆公)에게 시집가는 진(晉)나라 공주 백희(伯姬)를 모시는 시종 자격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비루한 처지에 몰린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던 그는 일행에서 빠져나왔다.

진목공은 시집 온 공주의 시종인 백리해가 명단에는 있는데 사람은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겨 그를 찾았다. 알아보니 그는 초(楚)나라에 머물며 임금을 위해 말을 기르고 있었다. 진목공은 백리해가 귀중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나라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도망자를 체포한다는 명분으로 염소 가죽 다섯 장을 주고 백리해를 자기 나라로 데려 왔다.

목공은 백리해에게 사흘 낮밤 동안 국가 경영에 대한 그의 소신과 철학을 물었는데, 백리해의 답변에는 막히는 데나 의심가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목공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경의를 표한 다음 그에게 재상 자리를 주려 하였다. 백리해가 사양하며 말했다.

“저에게는 건숙이라는 의형이 있는데, 그분의 능력은 저에 비해 열 배나 뛰어납니다. 그분을 초청하여 나라 일을 맡기십시오.”

백리해의 주청을 받아들여 목공은 건숙을 초청하여 우서장(右庶長)으로,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았다. 그후 백리해는 진목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春秋五?)의 하나로 성장시켰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큰 칭송을 받았다. 진목공에게 등용되던 때 백리해의 나이는 일흔 살이었다. 백리해의 보좌를 받은 진목공은 춘추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이상적인 임금으로 꼽히고 있다.

백리해가 진나라의 재상이 된 지 얼마 후, 그가 당상(堂上)에 올라 연회를 열고 있을 때였다. 궁중에서 빨래를 하는 한 노파가 악공(樂工)에게 다가와 거문고를 탄주하기를 청했다. 그녀는 악공의 허락을 받아 거문고를 탄주한 다음 백리해에게 그가 앉아 있는 당상에서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말했다.

백리해가 허락하자 그녀는 백리해 곁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노래를 듣자마자 늙은 재상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염소 가죽 다섯 장, 백리해여, 그대를 떠나보내던 때 나는 울었소. 부귀하게 되시더니 나를 잊으셨소?”라는 내용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백리해가 보니 자신의 아내가 분명했다. 두 사람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가족이 다시 만난 것을 안 진목공은 축하의 선물을 보내는 한편, 백리해의 아들인 백리시(百里視)에게도 벼슬을 내렸다.

불교는 지혜를 들어서 얻는 지혜, 생각해서 얻는 지혜, 닦아서 얻는 지혜, 깨달음의 지혜로 분별한다. 그것이 어떤 지혜이든지간에 지혜는 남에 대한 배려와 친절을 수반한다. 배려와 친절이 없는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거나 아직은 더 성숙될 필요가 있는 지혜이다.

들어서 얻는 지혜보다 생각해서 얻는 지혜가 더 힘 있고, 생각해서 얻는 지혜보다 닦아서 얻는 지혜가 더 힘 있고, 닦아서 얻는 지혜보다 깨달음의 지혜가 더 힘 있다. 앞의 지혜보다 더 힘 있는 다음 지혜를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덕목 중의 하나가 인내심이다.

참아야 한다. 견뎌야 한다. 참고 견딤이 없이는 큰 일을 이룰 수 없고, 큰 지혜를 얻을 수 없다. 백리해는 집을 나온 뒤 사십 년 동안을 참고 견디었다. 그 견딤의 과정에서 그는 이리저리 치였고, 이런저런 실패를 겪었다. 중요한 것은 그 참음과 견딤의 과정에서 그가 마음의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조건 견디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참고 견딤은 마음의 순수를 억누르거나 해치기 쉽다. 참고 견디는 가운데 마음을 더럽힘 당하지 않는 것, 어려운 중에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고 돕고 격려하는 것, 그것이 백리해의 마음이자 그의 아내의 마음이었다. 보살에게 요청되는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또한 응당 그런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 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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