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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조정육의 불교의 발견
10. 엄마로 살아가기한겨울 냇가, 빨래하던 엄마의 벌게진 손등
조정육  |  sixgard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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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1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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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운, ‘어머니와 아들’, 56×45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9 : 한때는 그녀도 고운 여인이었다. 귀여운 꼬마였고 수줍은 소녀였고 멋쟁이 아가씨였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된 후부터 엄마였다. 그런데 자식들은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난 줄 안다. 뽀글이 파마에 굵은 다리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엄마가 되어주신 세상의 모든 엄마들께 감사.

매생이를 샀다. 제철에 듬뿍 사 손질 후 냉동실에 넣어 두면 싼 가격으로 한여름까지 먹을 수 있다. 추운 날 먹는 매생이국은 허기진 위장뿐만 아니라 얼어붙은 마음까지 확 풀어준다. 겨울철 별미다. 겨울철 별미를 봄과 여름까지 두고두고 맛보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찬물에 서너 번 씻어 매생이에 들러붙은 이물질을 제거해야 한다. 다 씻은 매생이는 물기를 꼭 짠 다음 먹기 좋을 만큼의 분량으로 나누어 각각의 비닐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한다. 이렇게 보관한 매생이는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다시물을 붓고 끓이면 끝이다. 처치 곤란한 식은밥이나 냉동실에 얼려둔 밥이 있다면 끓는 매생이국에 넣고 함께 끓인다. 이렇게 끓이면 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매생이국밥이 된다.

찬물에 손 담가 매생이 씻다
갑작스레 떠오른 엄마 생각
열 식구 빨래 홀로 해냈지만
그 숭고함 그때는 알지 못해


겨울철 요리를 할 때 가장 곤혹스런 부분이 세척이다. 야채나 수산물은 미지근한 물로도 씻을 수 없고 항상 찬물로 씻어야 한다. 한겨울 찬물에 손을 담가 여러 차례 헹구다 보면 손이 시리다 못해 매워지고 나중에는 감각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찬물로 세척할 때 중간중간 뜨거운 물을 틀어 언 손을 녹인다. 재료를 씻다 손을 녹이고 씻다 녹이고를 반복하고 나면 시든 야채도 싱싱하게 살아난다. 오늘은 매생이를 박스로 샀다. 매생이와 함께 넣고 끓이려고 생굴까지 샀으니 찬물에 손을 담그는 시간이 더 길어질 것이다. 매생이를 씻기 시작했다. 손이 시릴 때마다 뜨거운 물을 틀어 손을 녹이지만 워낙 씻을 양이 많다 보니 일이 쉽지 않다. 아, 내가 왜 괜한 욕심을 부려서 이렇게 많이 샀던가.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채 그런 후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다. 그래서 엄마가 뜨거운 물을 가져갔었구나. 그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는 한겨울 냇가에서 빨래할 때면 항상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담아 가셨다. 열 명의 식구들 빨래를 혼자 하시려면 손이 얼면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빨래는 주로 햇볕 좋은 날을 선택했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바깥바람이 워낙 차가워 바가지의 물은 금세 식어버렸다. 빨래에 비누질을 하고 방망이질을 하다 보면 바가지 물이나 냇물이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빨래에서 맑은 물이 떨어질 때까지 찬물에 헹구기를 반복했다.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었다. 빨래가 끝날 때쯤이면 엄마의 손등은 붉게 변해 있었다. 한 번도 빨래를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찬물에 빨래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랐다. 엄마는 대야에 가득한 빨래를 다 빨 때까지 손 시리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는 아무리 오랫동안 찬물에 손을 담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다. 지금 내 나이가 그때 엄마의 나이보다 더 많은데도 여전히 손이 시려 뜨거운 물이 필요한데 그때 엄마의 손은 얼마나 시렸을까. 바가지에 담은 식은 물이 아니라 콸콸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손을 담가도 고통스러운데 엄마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그때는 진짜 몰랐었다.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숭고한지를.

엄마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는다고 해서 나의 손 시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서 손을 불어가며 겨우겨우 매생이를 다 씻었다.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려 각각의 비닐봉투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니 겨울 추위가 다 물러난 것 같았다. 이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먹기만 하면 된다.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깨끗이 씻은 매생이에 굴을 넣고 끓인 다음 저녁밥을 차리니 싱싱한 바다내음이 식탁에 가득하다. 순한 재료는 외로움으로 굳어진 독기마저 녹여준다. 매생이와 굴이 주는 위로다.

저녁밥을 먹고 여느 때처럼 남편과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갔다. 속이 따뜻하니 밤바람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파카를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까지 착용하고 산책을 나갔다.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 앞으로는 우리 절대 불평불만하지 말고 살자. 산책하는 내내 그런 건전한 대화를 나눴다. 산책을 끝내고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서는데 세탁소 앞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세탁소 여주인을 비롯해서 주부들 대여섯 명이 무슨 물건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서서 웅성거린다. 잠시 후 그녀들 앞에 서 있던 중년남자가 트럭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여자들이 바닥에 놓인 물건을 트럭에 실었다. 아, 그거였구나. 언젠가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갔더니 여주인이 열심히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부업이란다. 세탁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부업으로 종이접기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녀 앞에는 화장품 담는 종이박스가 가득했다. 그렇게 시작한 세탁소 여주인의 부업에 동네 주부들이 가세하였고, 오늘은 다 접은 물건을 보내는 날이었다. 그곳에 또 우리 엄마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부모은중경’에는 부모의 은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어깨에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피부가 닳아져 뼈에 이르고 뼈가 닳아져 골수에 미치도록 수미산을 백천 번 돌아도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 수가 없느니라.’

수미산의 크기와 높이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면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떠올려도 된다. 아니 동네 뒷산만으로도 충분하다.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모시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모시고 동네 뒷산을 한 번 돌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백천 번을 돌아도 부모님의 은혜는 갚을 수가 없다고 한다. 찬물에 빨래를 하시던 나의 엄마. 종이접기를 하는 또 다른 엄마들. 그녀들의 은혜 또한 마찬가지리라.

누구에게나 엄마는 있다. 엄마가 있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줄 수 없는 생명을 엄마가 내게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엄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진리를 가끔씩 잊고 산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조금만 피곤해도 엄마는 곧바로 화풀이 대상이 된다. 엄마의 등에 짊어진 짐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위에 나의 짐까지 더 얹어 놓으려 한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안다. 그러나 엄마는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귀하고 소중한 분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날들을 찬물에 손을 담그셨기 때문이다. 종이접기를 하고 박스를 접고 우리의 결점까지 접어주셨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이름만으로 그 모든 수고로움을 당연히 겪어 주신 세상의 모든 엄마들께 감사.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3호 / 2017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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