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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행일기] 손정수

기자명 법보신문

항상 의심덩어리였던 ‘참나’
많은 법문 청해도 오리무중
참선으로 탐진치 닦아가며
포교사로 거듭나 전법할 것

▲
63·종성

늘 의문이었다.

‘진정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내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다. 진실한 내 실체를 알고 싶었다. 생물학적인 나, 사회적 역할로서의 나를 떠나면 난 진정 누구인가. 이 의문은 세월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의심의 덩어리로 더 커져만 간다. 요즘 인문학 강의가 많다. 명강의가 없진 않지만 나를 향한 갈증은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진짜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참선으로 찾아보려고 했다. 1700여년 넘는 시간 동안 선사들은 선방에서 기도와 선행, 참선으로 ‘그 놈’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범부중생인지라 쉽지 않다.

자신이 주체가 되라는 스님 법문도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난 화가 났다. 남의 눈을 의식한 그 무엇인가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나고 나면 흔적 없는 삶을 살았다는 느낌에 분노할 때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 모두 본래 부처의 품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그것이 곧 부처임을 알리기 위해 오셨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허덕이는 중생을 어여삐 여겨 구제하고 교화시키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우리 본래는 모두 부처님이며 청정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녹슬어 있는 만큼 그 녹을 제거해야 한다. 거울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지 않으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본래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단전에 깊은 호흡을 가져가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깊은 참선에 들어야 할 것 같다. 집중하면 본래 청정한 자리에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아름답고, 청정하고, 순수하고, 예쁜 모습이 바로 내가 아닐까.

왜일까. 왜 나는 그 순수한 나를 그렇게 멀리 두고 살 수밖에 없을까. 이 세상에 인간의 몸 받아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만큼 어지럽다. 혼탁하다. 실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탐진치 삼독심에 끄달려, 아니 삼독심으로 뒤범벅된 채 살고 있다. 그러니 살면서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참으로 슬퍼진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확률이 높다. 문제는 여기 있다. 우리는 나를 기준으로 상대와 자신을 비교한다. 항상 뒤처져 있는 상대적 상실감이 자신을 엄습한다. 진심은 본래 나를 온통 뒤덮는다. 남을 따라잡기 위해 어떤 무엇에 집착하는 탐심이 일어나고 충족되지 않으면 다시 진심이 불쑥 솟아난다. 어리석은 순환이다. 탐진치 삼독심에서 손톱만큼도 벗어나지 못한다. 본래 나는 온데 간데도 없고 마음 저 어두운 구석에 처박아 둔다. 중생이다. 평소 본래 나를 잘 대접하고 잘 모시고 간수를 잘했다면…. 너무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주 그 청정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고운 자리 마련해놓고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매순간 내가 누구인가를 사유한다면 본래 나와 가장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순간 지나면 과거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아쉬워 할 것도 두려워 할 것도 지금 이 순간엔 없다. 순간순간 거울 닦아야 하겠다. 청정하고 순수하기 그지없는 참 내 모습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지 않도록.

사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많이 듣던 말이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더 의문은 깊어진다. 나를 찾지 않고 허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이제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상황을 관찰하고 한 발짝이라도 내 모습에 다가가려고 애써야겠다.

부처님의 수승하고도 깊은 가르침의 핵심인 본래 부처인 내 모습을 볼 줄 아는 혜안을 키우고 싶다. 서울 국방부 원광사를 재적사찰로 열심히 다니고 있다. 얼마 전 법상 스님이 주지로 오셨다. 법상 스님 모시고 불법을 배우고 있다. 최근 아카데미를 여셨는데 불자를 포함해 비불자들까지 200명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왔다. 부처님 가르침에 목이 마른 중생들이 많다는 것이 아닌가. 새삼 나를 이 길로 접어들게 한 인연들이 고맙다. 부처님 가피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포교사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엔 꼭 포교사 시험에 합격해 품수 받고 전법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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