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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최호승 기자의 문인을 만나다
8. 고은 시인“옷깃 여미세요, 불구덩이 가마서 그릇 하나 익어갑니다”
최호승 기자  |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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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3.20  16: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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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의 꽃’
고은 저/ 문학동네

한국전쟁서 숱한 죽음과 마주
자살 등 방황…허무주의 빠져
효봉 스님 상좌로 출가 인연
마니산서 실컷 울고 창작 몰두

1958년 시 ‘폐결핵’으로 등단
30년 간 써온 시 4001편으로
인물백과 ‘만인보’ 30권 완간
시로 ‘화엄의 세상’ 열어 젖혀

만남도 계절도 ‘봄’이다.

마주 앉은 너를, 돋아나는 초록생명을 본다. 여든 넘은 시인이 기자의 법명을 봄에서 풀어냈다. “봄은 ‘본다’에서 온 계절 이름입니다. 만물소생을 본다는 뜻이지요. 법을 본다는 법명 ‘見法’이 이 봄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첫 만남, 상대를 대하는 시선에 봄이 담겼다. 따사롭다. 많은 질문에 미리 답을 적어왔다. 자필이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요”라고 했다.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를 배려했다. 시인이 ‘뜨거운 심장을 가진 청춘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부정했다. “누구의 심장이든 뜨겁고 쉬지 않는 우주”라고 했다. 자신을 바람, 아니 멈추지 않는 파도라 했다. 그의 호가 파옹(波翁)이다. 고은(85)이다. 3월13일 오후였고, 봄볕 가득했다.

고은은 어둠, 차가움, 슬픔 단어와 멀어 보였다. 착각이었다. 굴곡진 근현대를 관통하는 그의 삶은 ‘산다’가 아니라 ‘살아냈다’가 더 어울렸다. 1933년 8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소년은 일찍 죽음 냄새를 맡았다. 한국전쟁 피비린내는 군산중학교까지 번졌다. 비극이었다. 좌우 이념대립에 500만명이 넘게 죽었다. 북한군이 오면 남한군이 죽었고, 남한군이 오면 북한군이 죽었다. 군인들은 시체를 파내서 옮기라고 했다. 보름 동안 씻고 씻어도 시체 냄새는 짙게 남았다. 죽음은 해가 져도 그림자처럼 소년 발목을 부여잡았다.

같이 뛰놀던 친구들 웃음소리도 사라졌다. 살아, 남았다. 기쁘지 않았다. 정신착란이 왔다. 집을 나갔다가 잡혀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했다. 방황은 죽음처럼 깊고 어두웠다. 스스로 생을 벗어 던지려고까지 했다.

“생명의 폐허이기도 했습니다. 고향도 좌우학살과 보복학살의 현장이었습니다. 죽음의 골짝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내게 늘 죽음이 들러붙었지요. 10대 후반의 허무주의자였습니다. 가출을 거듭했고, 자살을 시도하다 지나가는 스님을 만나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그게 출가가 됐습니다. 자석에 작은 못이 눌러 붙은 듯이….”

‘절구통 수좌’ 효봉 스님과 만났다. 스님은 보자마자 “밥 안 먹었지? 배고프겠다”며 밥을 내줬다. “문자가 너무 많다. 버려야 한다”는 말을 반찬으로 곁들였다. 죽음 그림자 질질 끌고 다녔던 청년 고은이 부처님 품에 들었다. 효봉 스님 상좌가 됐다. 1952년, 법명 일초(一超)와 동행은 그렇게 시작했다. 불연은 불교신문 창간 및 초대주필, 법보신문 고문 등 글 쓰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스님 일초는 은사 효봉 스님이 조계종 초대종정에 추대되자 서울로 올라왔다. 종단에 눈과 귀가 있어야 한다며 청담 스님을 설득했다. 1960년 대한불교를 창간했다. 불교신문 전신이다.

죽음은 스님 일초에게 빚이었다. 그는 살았고 친구와 다른 이들이 죽었다. 상처였다. 돌아보니 “전쟁의 비극이 만든 외상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조금씩 치유됐다”고 했다. 스님 일초는 10년 동안 종종 시를 썼다. 도반의 병을 소재로 썼던 시 ‘폐결핵’을 친구가 ‘현대시’에 투고했다. ‘봄 밤의 말씀’ ‘눈길’ 등 조지훈 추천으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스님 일초의 시를 본 미당 서정주는 ‘현대문학’에 천거했다. 세 번 이상 추천돼야 등단이 가능했다. 미당 추천은 단박에 등단케 했다. 1958년 일이었다.

   
▲ 고은 시인의 시에는 우주가 담겼다.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진 동체대비의 세계다. 장소제공= ‘카페 스카이 앤 라이브러리’

일초와 동행은 10년이었다. 강화도 전등사에 있을 때였다. 마니산서 철야기도를 했다. 밤은 깜깜했고 별은 더 빛났다. 쏟아지는 별을 보니 시를 쓰고 싶었다. 실컷 울고 산을 내려왔다. 1962년 일초 벗고 고은과 다시 함께 걸음했다.

“아직도 생사문제에 어떤 해답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나는 해탈보다 미망의 세계를 지속하고 있지요. ‘무여열반(無餘涅槃)’보다 ‘무주열반(無住涅槃)’을 지향합니다.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려 합니다. 후회하고 시행착오 겪어야 지혜가 쌓입니다. 진주는 그렇게 생깁니다. 후회와 잘못에서 나오는 성찰이 중요해요. 아직 어리석은 쪽이 더 진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흔했다. 하지만 고은에게 죽음은 늘 화두였다. 1970년 11월 한 노동자의 죽음을 글로 접했다. 술집 바닥에 버려져 있던 신문에 실린 기사였다. 죽음이 한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전태일의 부고는 시대의 언어 그 자체였다. ‘만인보(창비, 2010)’의 계기였다.

첫 시집 ‘피안감성’ 내고 실존주의, 허무주의 시들을 발표하다 참여시를 썼다. 내란음모죄로 옥살이를 했다. 헌병이 지켰고, 전구 끄면 암흑이었다. 죽을 때 통일을 외칠까 민주주의를 외칠까, 짧은 시 하나 읊고 죽을까 고민했노라 회고했다. 현재가 박탈되자 과거가 비집고 들어왔다. 의미 없다고 여겼던 인연들이 흘러들어왔다. ‘다시 산다면 시로 그리고 싶다.’ 옥살이 버티는 힘이었다.

‘만인보’는 우리를 스친 존재들을 위한 노래다. 역사가 휘갈기고 지나간 모든 존재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1986년부터 집필한 연작시다. 5600여명의 인물을 총 4001편 30권으로 엮었다. 만났던 실제 인물, 다른 시공간의 인물, 불교인물을 시로 썼다. 머슴 대길이, 따옥이, 화양댁, 땅꾼 도선이…. 이름 없이 살다간 존재들의 애환도 담았다. ‘20세기 세계문학사상 최대 기획’이라는 평을 받았다.

“너 없이 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지요. 화엄은 내가 나만이 아니라는 것, 세계가 세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우주의 오묘한 실상에 대한 의미입니다. 1990년대부터 ‘화엄의 시인’으로 명명되곤 합니다. 더 써야 할 만인보의 세계가 아득합니다. 30권이 아니라 300권으로도 모자란 세계가 만인의 세계이지요. 만인보 역시 내가 꿈꾸는 화엄의 한 표현입니다. 현실을 떠나간 사람들을 재현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손을 잡게 하는 작업입니다.”

고은은 “나도 모르게 시가 내게로 왔다”고 했다. 일초와 동행했던 고은에게 ‘화엄’은 자연스러웠다. ‘순간의 꽃’(문학동네, 2001)이다. 214편이 실렸다. 무제로 된 작은 시들이 전부다. 풀 위에 앉은 잠자리도 그의 시심에 있는 화엄은 다르게 봤다. “부들 끝에 앉은 새끼 잠자리/ 온 세상이 삥 둘러섰네.” 그는 잠자리가 됐다. 온 세상이 삥 둘러선 게 맞다. 대추 하나에 벼락 몇 개 바람 몇 개 있듯 그는 인드라망 그물코처럼 얽힌 세상을 시로 풀어냈다. 미당도 노래했다. 국화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밤을 청한다.”

아름다운 나비 노니는 세상에서 거미집을 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꺼내고,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개 물방울에서 비가 내린 이유를 발견했다. 노를 놓쳐야 비로소 푸른 물을 볼 수 있다고 말했으며,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야 봤다고 고백했다. 그가 꿈꾸는 화엄은 이 시에서 극명하게 내보였다. 발 딛고 서 있는 그곳에서 다른 시공간을 봤다. 한 순간도 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옷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 하나 익어간다.”

고은의 다른 시는 부처님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민이자 대비였다. 홀로 우뚝 서서 생을 헤쳐 나가라고 격려하면서도 이기심을 경계했다.

“바람에 날려가는/ 민들레씨만 하거라/ 늦가을 억새 씨만 하거라/ 혼자 가서 한세상 차려보아라.”
“자비라는 건/ 정(情)이야/ 정 없이/ 도(道) 있다고?/ 그런 도 깨쳐 무슨 좀도둑질하려나.”
“실컷/ 태양을 쳐다보다가 소경이 되어버리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그대를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였다/ 이웃을 사랑한다며/ 세상을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고 말았다/ 시궁창 미나리밭 밭머리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고은은 화석에서 시를 본다. 소년의 유골 이마 옆 히아신스 꽃에서 엄마를 상상했다. 자식이 죽었을 때 옆에 꽃 하나 꺾어 놓고 슬퍼하며 ‘좋은 데로 가라’는 엄마의 눈물 섞인 염원이 히아신스라고 했다. “자기 안에 이토록 아름다운 시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 ‘감성이 메마른 시대’라는 세간의 평에 고은이 답했다.

“시는 1만년 이상 인류의 영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이제 새로운 문명이 시를 드러내고 있지요. 광고 문구에, 노랫말에 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의 사막이라고 한다면, 몇 번 신기루의 절망을 지나 오아시스가 나올 것입니다. 설계가 아니라 마음의 진화로 시와 불교를 만나세요. 황홀하겠습니다.”

봄볕만이 봄날을 따듯하게 하지 않는다. 흩날리는 연분홍 복사꽃잎도 봄을 부른다.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시인 고은 인생이 다가왔다. 죽음 냄새는 나지 않았다. 봄에 피는 꽃향기도 고은과 함께 왔다. 만남도 계절도, 역시 봄이다.

“어쩌란 말이냐/ 복사꽃잎/ 빈집에 하루 내내 날아든다.”(‘순간의 꽃’ 중)

time@beopbo.com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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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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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랑개나리 2017-04-15 23:00:52

    노랑의 잔치라
    개나리 산수유

    하양의 축제라
    벚꽃 백목련!

    봄이 오면
    꽃과 나무는

    온몸
    가득히 찬란한 원색을 토해낸다.

    우리는
    언제 무엇을 세상에 뿌리려는가?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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