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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삶에 대한 심판-명부 시왕

기자명 정진희

생전에 지은 죄 심판하는 10명의 저승판사

▲ 시왕도 중 제5 염라대왕, 고려후기, 견본채색, 61.2×45.0㎝, 미국 개인.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체온으로 느끼는 봄은 아직 먼데 마음은 벌써 백화가 만발하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을 느끼고 싶어 나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발길 닿는 데로 봄을 찾아 나선 여행이지만 필자의 삶과 불교미술이 맺고 있는 가늘고 긴 인연 때문에 산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천왕문을 지나 금당의 부처님도 뵙고 법당의 보살님도 만나며 이리 저리 전각들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멈춘 곳이 명부전이다.

현왕도·시왕도 지옥 장면 묘사
섬뜩한 장면으로 중생들 교화
절로 두려움 자아내도록 하여
죄 짓지 않겠다는 다짐 이끌어

봄날을 느끼고 싶어 떠난 걸음인지라 어두운 저승의 시왕이 모셔진 명부전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8명의 재판관에 의해 탄핵이 심판되었던 기억 때문인지 인간의 삶을 재판하는 판관이 모셔진 명부전에 대한 감상이 여느 때와는 다르다. 불교적 상례를 시다림이라고도 하는데 말뜻 그대로의 의미는 추운 숲(寒林)이다. 신을 벗고 법당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더니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발끝이 오그라들 정도로 바닥이 차 유명계(幽冥界)의 서늘한 분위기를 체온으로 느끼겠다.

▲ 시왕도 중 제2 초강대왕도 염라왕, 조선(17세기 중후반), 견본채색, 155.0×126.5㎝, 동아대 박물관.

명부전 내부의 배치를 보면 전각 중앙의 불단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좌측에 스님 모습의 도명존자와 우측에 판관복장을 하고 있는 무독귀왕이 있고 그 좌우로 시왕이 배치되어 있다. ‘불설예수시왕경’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 저승사자에 이끌려 명부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망자는 7일마다 7명의 대왕에게 순서대로 생전의 죄업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죗값을 혹독히 치르는 7개의 관문을 통과하고도 아직 남은 죄가 있으면 세 대왕에게 심판을 더 받아야 하기에 지옥을 다스리는 대왕은 모두 열 명이다. 시왕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대개는 양을 나타내는 홀수에 해당하는 제1 진관대왕, 제3 송제대왕, 제5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은 지장보살 왼편으로, 음을 나타내는 짝수인 제2 초강대왕과 제4 오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은 지장보살 오른편에 배치한다. 그리고 시왕의 업무를 보좌하는 판관과 녹사, 동자 등의 권속과 수호신격인 인왕상이 전각 좌우에 문 양옆으로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시왕을 그린 불화는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뉘는데 먼저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뒤에 지장과 시왕을 함께 그린 지장시왕도를 둔다. 이 그림의 내용을 쉽게 풀이하자면 인간의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업무를 맡아보는 지장보살과 시왕, 판관, 녹사, 시동 등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이다. 화면에 그려진 짐승형태의 인물들은 망자의 영혼을 각각의 대왕 앞으로 인도하고 길을 재촉하는 옥졸과 귀졸들이다. 이 형식의 그림에서 주존은 지장보살로 시왕은 지장을 따르는 권속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다른 형식은 시왕상 뒤편에 걸리는 그림으로 시왕 각자가 자신 임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을 회화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10폭으로 구성된 시왕도는 보통 그림의 윗부분은 망자의 죄를 판결하는 시왕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아래는 지옥에서 죗값으로 혹독한 고통 받는 혼령들의 처참한 광경이 묘사된다. 화면에서 시왕의 옆 관복 입은 인물은 망자의 죄목을 시왕에게 아뢰고 판결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판관들로 조선시대 시왕도에는 아예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죄를 기록하고 있는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망자의 죄업은 생전의 선업과 악업을 그날그날 충실히 명부에 보고하는 선악동자와 같은 감찰 신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에 시왕의 법정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지장보살과 시왕도 이외에 불교 명부신앙을 표현한 불화인 현왕도는 사람이 죽은 뒤 3일 후 받는 최초의 심판을 주재하는 현왕을 그린 것으로 주로 명부전이 아닌 다른 전각 특히 주불전에 봉안된 예가 많다. 현왕은 석가모니의 수기에 따라서 미래에 보현왕여래로 성불할 염라대왕을 말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죽은 뒤 3일, 그리고 5번째 7일 이렇게 두 번씩이나 염라대왕을 만나야 했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을 그린 고려 시왕도에는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기록한 문서를 입에 물고 대왕에게 호소하는 가축들의 모습이 있어 그림에서 벌을 받는 망자의 악행이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죄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는 망자의 생전 죄상을 관찰 카메라로 찍어 활동사진으로 생생히 보여주는 업경대가 있어 세상에 이름 난 달변의 변호사를 항아사 모래만큼 동원하여도 망자의 죄 값을 줄일 수는 없다. 망자의 머리칼을 잡고 끌어가 업경대에 비친 생전의 죄업을 보여주는 지옥의 옥졸 모습은 마치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 지장시왕도, 고려(14세기 중반), 견본채색, 115.0×58.8㎝, 일본 게조인(華藏院).

지옥 가운데 가장 고통이 극심하다는 무간지옥을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쇠 독수리가 죄인의 눈을 쪼아 내고 쇠 뱀이 목을 조이며 몸의 마디마디 긴 못을 내려 박고, 혀를 뽑아서 쟁기로 간다’고 하였다. 시왕도에 그려지는 지옥의 장면도 이 못지않게 섬뜩하여 보는 이들에게 그 순간만이라도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지라는 다짐이 절로 나오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죄를 반성하고 선업을 지으라는 교화의 뜻을 명확히 알겠다. 죽어서 지옥을 헤매며 그림에 그려진 이러저런 죗값을 치르지 말고 살아서 선업을 짓고 복을 쌓아 극락왕생하라는 것이 시왕도를 조성하는 목적이다.

시왕도에는 지옥고에 고통받는 망자를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장보살을 그려 이런 지옥에도 구원의 빛이 함께 함을 제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이 저승세계의 망자와 함께 있는 이유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 뒤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고 서원하였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한 그림을 보고난 두려움 뒤에 망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지장보살의 등장은 어둠 속의 빛이요 광명이었을 것이다.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 판결을 받는 명부의 모습들을 뒤로 하고 나오며 필자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시왕도가 주는 교화적 효과는 분명하다. 돌아오는 길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탄핵에 대한 이런 저런 일들을 떠올려 본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다는 탄핵 판결문은 학창시절 내내 사람이 지켜야할 도덕적 도리를 수없이 듣고 자란 필자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매 순간 깨어있어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진심으로 촛불과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에게 서글펐던 이런 사건은 우리민족에게 다시는 없길 바란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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