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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라한의 청정

기자명 이제열

‘지혜제일’ 사리불이 대승에선 왜 홀대받을까

‘그때 사리불이 위신력에 힘입어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보살의 마음이 깨끗하면 불국토가 깨끗해진다고 하시는데 우리 세존께서 보살행을 하실 적에도 마음이 깨끗하였을 텐데 어찌하여 사바세계는 이렇게 깨끗하지 못할까?” 부처님은 사리불의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마치 장님이 해와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장님의 허물이요, 해와 달의 허물이 아니듯이 중생의 죄업으로 여래의 국토가 깨끗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라. 나의 국토가 깨끗하건만 그대가 보지 못하느니라.”

사리불은 분별심 못 없앤 존재
불보살에 질책 받는 모습 등장
세상이 더럽다는 건 미혹 불과
중생심이 번뇌로 오염됐을 뿐

보적의 불국토에 관한 질문에 부처님은 중생의 국토가 곧 부처님의 국토이며, 그 국토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청정히 해야 한다고 답하셨다. 그러자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에 사리불은 의심을 품는다. 부처님의 마음은 과거에도 청정했는데 사바세계는 왜 이토록 더럽냐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사리불에게 그대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의 국토가 깨끗함을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사리불은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 지혜가 으뜸이다. 부처님은 사리불을 ‘법의 장수’라 부를 만큼 높이 평가하셨고, 자신을 대신하여 설법을 하라고 했을 정도로 신뢰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러한 사리불을 향해 그대의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국토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최고의 제자를 형편없이 일그러뜨리는 언어표현이다.

사리불에 대한 이런 식의 격하는 비단 이 장면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대승의 많은 경전에서 사리불은 ‘법의 장수’는커녕 졸개처럼 등장한다. 즉 많은 대승 경전의 전반부에 사리불이 출현하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사리불은 부처님이나 보살들로부터 질책을 받는 모습을 띤다.

대승 경전에서 사리불의 위상은 턱없이 낮다. 사리불은 수행 과위로 볼 때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에 올랐다. 아라한과는 모든 번뇌와 의혹을 끊어 열반을 증득한 경지이다. 이 경지에 오르면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으므로 설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라한을 무학인(無學人)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리불은 무학인의 대표가 되는 사람이다. 이런 부처님의 제자를 대승에서는 미완성의 존재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대승에서는 사리불을 미완성의 수행자로 바라볼까? 이는 사리불이 소승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승의 관점에서는 소승에서 얻어지는 모든 수행의 결과가 수행자 한 개인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다. 가령 소승의 어떤 수행자가 번뇌를 끊고 마음의 청정을 이루었다면 그 청정은 자신에만 머무를 뿐 세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 자신이 청정해졌다고 세상의 더러움마저 청정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마치 어두운 밤중에 자기 방안에 불을 밝히면 방은 밝아지지만 밖은 그대로 어두운 것처럼 청정 또한 한 개인의 경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승에서는 자신이 청정해지면 더러운 세상이 함께 청정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마치 태양이 밝으면 세상도 함께 밝아지듯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 마음의 청정은 수행자 한 개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세계 전체로 확산되어 한 바탕을 이룬다.

대승에서 볼 때 세상의 본래 모습은 중생의 주관적 분별에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청정하다. 소승에서 바라보듯이 세상은 더러운 존재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 더럽게 나타나는 것은 중생의 마음이 번뇌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지 세상 자체가 본래 더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소승의 아라한이 비록 번뇌를 여의었다고 하나 세상의 청정을 알지 못했다면 완전한 청정을 성취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부처님이 사리불을 향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다고 한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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