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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르키소스 ②

기자명 김권태

세상이 불안하다 느낄 때 자신의 본 모습 숨겨

“나르키소스는 연못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마치 마법에 걸린 듯 황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과 부드럽게 흘러내린 머리칼, 홍조 어린 피부와 상아처럼 새하얀 목…,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일으켰다.”

거울단계 아기 자기모습에 황홀경
과도한 만족·좌절 성장 멈추게 해
스스로 위로해 줄 역할모델 찾아야
정해진 것 없다는 인식 전환 필요

거울단계의 아기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황홀경에 빠진다. 그것은 엄마와 분리된 고유한 자기인 동시에 엄마의 시선 속에 비춰진 자기모습이다. 아기들은 자기를 양육해주는 대상(엄마)과의 경험들을 내면화하여 정신을 구성한다. ‘대상’과 ‘자기’의 상호관계 속에서 경험된 것들을 자기의 내적표상으로 삼아 정신을 구성해나가는 것이다.

이때 아기들이 경험했던 양육자의 태도와 사랑과 만족, 좌절의 체험들은 고스란히 아기의 자기 이미지가 되고, 이것은 또한 자존감의 근원이 된다. 자기를 반영해주는 양육자를 통해 아기들은 전능감과 과대성을 경험하고, 또 그들을 이상화하고 동일시한다. 그리고 차츰차츰 현실과 대면하여 적절한 만족과 좌절을 통해 현실을 수용하고 통합하여 고유한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고 달래는 힘을 기르기도 전에 과도한 만족과 과도한 좌절은 정신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타자와 세상을 향한 도전이 꺾이고, 이 시기에 고착된 문제로 평생을 갈등하고 투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물이 웅덩이를 다 채우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듯이 상처받고 결핍된 자기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한 곳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타자와 세상을 향해야할 에너지(대상애)가 자기에게 집중되어 거대자기 환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유아처럼 전능감에 사로잡혀 세상을 자기의 연장된 모습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도구로 삼아 착취하며 결핍된 자기에너지의 자원으로 삼는다. 이러한 자기애를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따와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한다.

‘정신증’이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라면, ‘경계선’은 나와 타자의 경계는 구분되어 있으나 인간과 현실구조의 다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전부(all good) 아니면 전무(all bad)인 극단적 이분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자기애(自己愛)와 대상애(對象愛) 문제에 걸려있으며, 양자 사이에서 무기력과 혼란, 모순된 양가적 감정을 반복 재연하며 왜곡된 방어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한다.

생애 초기 ‘충분히 좋은 엄마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아기들은 결핍과 박탈, 과잉자극으로 인해 진짜 자기 모습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이 세상이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살아가기에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므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호하고자 현실의 요구에 맞는 모습으로 변형한다. 이들은 무엇을 하든 자신이 진짜로 살아있다는 생생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와 만성적인 우울감에 시달린다. 

이들에게는 채워지지 않은 충분한 엄마환경의 재경험이 필요하다. 현실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랠 수 있는 역할모델의 내면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여기 나의 모든 것은 과거의 결과인 동시에 또 미래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어느 것 하나도 고정되게 정해진 것이 없으며 무엇이든 나의 의지로 새롭게 바꿔갈 수 있다는 ‘공(空)’으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인간정신의 발달에서 어느 중요한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자기애에 겨워 황홀했던 한 시기가 있었으며, 그 시기를 무사히 마침으로서 자기애는 건강한 자존감이 되어 타인과 관계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인격구조의 바탕이 된다. 어느 한 시기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성장할 수 있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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