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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책황의 절묘한 언어

“임금 어질면 신하가 곧다는 말을 아시나요?”

▲ 그림=근호

중국 주(周) 왕조는 BC 1600년에 천여 개의 제후국을 거느리고 시작되었다. 그 많던 제후국은 200여년을 내려오는 동안 통폐합이 이루어지다가 주왕조가 뤄양으로 수도를 옮긴 BC 770년부터 시작되는 춘추시대에 12국으로 정리된다. 춘추시대는 300년 넘게 이어진 후 진·초·연·제·한·위·조 등 일곱 나라로 정리되어 쟁투를 벌이는데, 이 시기가 전국시대이다.

아랫사람에게 예를 다한 문후
곧은 말한 임좌 상객으로 맞이
깊은 의미서 온화한 책황의 말
애어 안에 재치와 기지 담겨야

전국시대는 주나라 왕실이 제후국인 진나라의 대부 위사·조적·한건을 제후로 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혼란한 점에서는 같았으나 위아래를 분별하는 점에서는 전국시대가 춘추시대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춘추시대는 혼란한 가운데서도 천자·제후·대부·사(士)·민(民)·노예로 분별되는 상하 관계가 유지되었는데, 대부가 제후에 오른다는 것은 그 분별이 무너짐을 의미했고, 이 점에 주목하여 역사가들은 전국시대를 춘추시대와 구별했다.

‘자치통감’에서 저자 사마광은 대부를 제후로 올린 주 왕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대부가 제후가 된다는 것은 분수를 넘는 범례(犯禮)로써 이렇게 되면 명분과 기강이 무너져 세상이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힘이 천자보다 강했으면서도 천자의 권위를 범하지 않았던 춘추시대의 제환공을 칭찬했다.

사마온공이라는 이름으로 ‘명심보감’에도 자주 등장하는 사마광의 이 시각을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현대인은 만민이 평등하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마광의 시대인 기원 1세기 동북아에는 만민평등 사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만민평등 사상이 모든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는 윗사람에 의해 아랫사람이 고통받는 역사를 써내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질서는 모든 이들이 요청하는 좋은 것이다. 그 좋은 질서를 현대인은 만민평등에 입각한 법치로써 잡아나간다. 그에 비해 봉건 체제는 질서를 잡는 방법으로써 출신 성분에 기초한 위아래 분별법을 사용한다. 그런 상황에서 능력은 자기가 속한 계급 안에서 제한적으로만 발휘될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욕하고 착취하게 된다는 점이다. 힘을 가진 자는 남용하기 쉽다는 이치로부터 봉건 사회의 병폐가 생겨난다. 그것의 해결법으로 유가(儒家)는 덕치(德治)를 제안했다. 임금을 비롯한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위(魏)나라 개창 군주인 위사(魏斯), 즉 문후(文侯)는 유가가 선호하는 유형의 군주였다. 제환공을 도와 큰 성공을 거둔 관중의 법치보다 현실 정치에서는 실패한 공자의 덕치를 앞세운 그는 복자하·전자방·단간목 등 세 선비를 스승으로 삼았는데, 복자하는 공자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이다.

문후는 단간목의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식(式)을 거행하였다. 신분으로 보면 아랫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간목에게 윗사람에게 하는 것 같은 예를 보였던 것이다. 이런 경우 그것은 참람한 범례가 아니라 겸손한 덕행이 된다. 문후의 그런 태도는 많은 선비들을 감동시켰고, 천하의 인재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문후가 어느 날 신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도중 비가 내렸다. 잠시 후 문후는 술 마시기를 그치고 수레를 준비시켜 들판으로 나가려 하였다. 신하들이 “비가 내리고 있는데 임금께서는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라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내가 어떤 사람과 사냥하기로 약속했소. 가서 만나야 하오.” 그러고는 약속 장소에 가서 전에 한 약속을 파하였다.

문후가 악양을 시켜 중산을 정벌한 다음 아들에게 주었다. 그런 다음 그가 신하들에게 “경들은 나를 어떤 임금이라고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이에 신하들은 한결같이 허리를 숙여 “인군(仁君)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단 한 사람, 임좌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분연히 항의했다. “임금께서 중산을 차지한 다음 아우님을 봉하지 않고 아드님을 봉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인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문후는 격분했다. 주군이 화를 내자 임좌는 말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당연하게도 분위기는 아주 썰렁해지고 말았다. 잠시 후, 화를 조금 진정시킨 문후가 옆에 서 있는 책황에게 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나는 어떤 임금이오?” 책황이 대답했다. “인군이십니다.” 문후가 다시 물었다. “방금 임좌는 내가 인군이 아니라고 하였소. 그런데 당신은 내가 인군이라고 하는구려. 당신은 내가 인군인지를 어떻게 아시오?”

책황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공손히 읍하며 물었다. “임금께서는 ‘임금이 어질면 신하는 곧다(君仁則臣直)’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있소.” “저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임좌의 말은 곧았습니다. 이로써 저는 임금께서 어지신 줄을 압니다.”

문후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그는 책황으로 시켜 임좌를 불러들였다. 임좌가 돌아오자 문후는 당 아래로 내려가 친히 그를 맞이하여 상객으로 삼았다. 상객은 신하가 아닌 상태에서 임금의 자문에 응할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애어(愛語)는 보시(布施)·이행(利行)·동사(同事)와 함께 대승불교가 불제자에게 권하는 사섭법(四攝法)의 하나이다. 애어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하는 것, 즉 훌륭한 말하기를 의미한다. 애어가 훌륭한 말하기라면 응당 책황이 한 말 또한 거기에 포함됨이 마땅하다. 따라서 애어는 부드럽고 온화한 말만이 아니라 재치와 기지를 담은 말까지를 포함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얼마나 절묘한가. 책황은 말 한마디로 임좌의 곧음과 주군의 체면을 모두 살렸다. 그는 한편으로는 임좌의 말이 옳음을 인정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후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두 사람의 장점을 배합하여 이 난감한 상황을 타개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은 보다 깊은 의미에서 부드럽고 온화하였다. 아마도 말을 하는 동안 책황의 얼굴에는 상황을 남의 일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달관자로서의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을 것이다.

책황의 말은 통찰과 여유가 있고, 그를 기반으로 한 기지와 웃음이 있다. 불교는 통찰의 종교이고, 여유의 종교이다. 그 두 덕목을 바탕 삼아 기지와 웃음이 있는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전까지, 아직 우리의 애어 수행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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