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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국토와 공

기자명 이제열

중생과 세계가 실체 없음을 아는 것이 성불

‘부처님께서 사리불에 이르셨다. 사리불아, 나의 국토가 이렇게 항상 깨끗하건만 하열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일부러 갖가지 나쁜 것들이 가득한 부정한 국토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마치 천상 사람들이 보배 그릇에 밥을 먹더라도 복덕에 따라 밥의 빛깔이 다른 것과 같으니라. 만일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이 국토의 공덕장엄을 보게 되리라.’

사리불은 소승 대변하는 인물
이 세상을 고통과 무지로 간주
대승에선 물질·정신이 모두 공
‘공=비실재=청정=불국토’ 주창

대승의 목적은 성불에 있다. 성불은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불을 불국(佛國) 또는 정토(淨土)라는 말로도 대신한다. 많은 경전에 등장하는 불국토 장엄이나 왕생정토라는 용어들은 모두 성불이라는 의미를 안고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대승의 성불은 자신이 부처됨과 동시에 이 세계와 중생들이 함께 성불하는  것이다. 자신은 성불하여 광명 속에 있고 세상과 중생은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중생과 세계가 함께 광명으로 바뀌는 것을 성불이라 한다.

소승의 시각에서 볼 때 중생과 세계는 온갖 번뇌에 쌓여 생사를 되풀이 하는 더럽고 괴로운 존재이다. 이로 인해 소승에서는 중생과 세계를 벗어나기를 원한다. 수행 최고의 목적인 아라한과를 얻어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는 것을 궁극으로 삼는다. 사리불은 그 중에서도 대표가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면 사리불이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에 무리가 있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대승의 시각이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아도 이 세상은 어리석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전쟁과 기아와 질병이 난무하고, 지진과 해일과 태풍이 세상을 덮친다. 중생과 세계는 탐욕과 투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비참하고 잔혹하다. 감각적 쾌락을 진실이라 여기고 이에 집착하는 중생들의 삶의 방식은 결코 불국이나 정토와는 거리가 멀다. 도리어 이러한 중생계를 불국토나 정토로 바라보는 대승과 부처님의 시각이 잘못되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이 같은 견해와 입장을 모를 리 만무하다. 분명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세상에 계셨고 우리와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대승을 설하기 전 부처님은 ‘일체가 괴로움이며 삼계는 불타는 집과 같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이러한 부처님이 대승에 와서는 완전히 입장을 바꾸어 이 세계가 곧 부처의 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내용에 대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대승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공(空)의 교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공이야말로 대승의 모든 교리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대승에서는 제법의 공성을 강조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무엇을 막론하고 공하지 않은 것은 없다. 여기서 공이란 ‘실체가 없다’ ‘자성이 없다’는 뜻이다. 모든 법들이 범부 중생의 눈으로 보면 실재하는 듯하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실로 있는 것이 아니며 거짓으로 존재한다. 바로 세상과 중생이 모두 공하여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성불이나 불국토나 정토란 바로 중생과 세계가 공임을 깨달아 실체가 없음을 안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괴로움 역시 공하여 본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이 때문에 대승에서 공을 청정이라고 말한다. 공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청정을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대승의 교리가 그렇듯이 ‘유마경’ 역시 공에 입각하여 가르침이 전개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본문에 부처님이 ‘마음을 깨끗이 하면 국토의 공덕장엄을 보게 되리라’한 것은 마음이 공함을 깨치면 중생과 세계가 함께 공해져 괴로움과 더러움이 사라지고 함께 청정함을 알게 된다는 말씀이다. 세계와 중생 그리고 여기에 깃든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공한 것이요, 공하므로 실재가 아니며 실재가 아니므로 청정하다는 이치로 불국토의 완성을 삼는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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