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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계승 넘어 시대 맞는 차 문화콘텐츠 개발”

▲ 박동춘 소장은 “예부터 선승들이 차를 즐겨 마셨다는 것은 그것에서 얻는 이로움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라며 “수행이라는 것이 장식성을 배제하고 원론적인 불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차는 수행을 북돋우는 매개물로서 손색없다”고 강조했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커피 한잔’의 열풍은 사람들의 일상을 급격히 변화시키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커피가 담긴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 혹은 커피전문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러한 커피 열풍은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적지 않은 스님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고 일부 사찰은 스님이 직접 원두를 갈아 만든 커피를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찰에까지 깊숙하게 스며든 커피가 깨달음으로의 여정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어쩌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79년, 해남서 응송 스님 만나
차에 호기심·본격적 연구 시작
전다게 받고 승주에 차밭 조성

초의·범해·원응·응송에 이어
‘동춘차’로 전통차 복원·확산
차 덖고 재건하는 과정은 ‘삼매’
“몰입은 선의 경지와 일맥상통”

반면, 차(茶)는 예로부터 선정에 들게 하는 방편, 수행자의 도반으로 애용돼왔다. 잘 만들어진 차는 머리를 맑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동생 김명희는 초의선사에게 받은 차를 마시고 “향기와 맛이 바라밀에 들게 한다”고 감탄했으며 암행어사 박문수의 손자 박영보도 “초의선사의 기나긴 정업, 짙은 차 맛의 깊은 깨달음이 참된 선을 닦는다”고 말했다. 선의 기운을 북돋는 차, 그 가운데서도 바라밀에 들게 한다는 극찬을 받았던 초의차의 수승한 품격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차가 있어 사람들은 이를 ‘동춘차’로 부른다. 초의선사로부터의 차맥을 확장하여 시대에 아로새기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만든 한국의 전통차다.

박동춘 소장은 초의차 5대 계승자다. 한반도 전통차의 연원을 밝히기 위해서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唐)으로 유학을 감행했던 구법승들, 그 가운데서도 신라 스님들은 수도 장안에서 차를 마시며 수행했다. 당에서는 이미 육조혜능 이후 차를 마시며 수행하는 풍속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는 차의 효능이 선종 부흥과 맞물려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차 문화는 그 영향을 받은 구법승들에 의해 소개돼 고려시대에 이르러 사찰과 왕실을 중심으로 찬란하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가 쇠락하며 차 문화 역시 역사의 뒤안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19세기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의 출현으로 차 문화는 다시금 불꽃처럼 타올랐지만 이후 근대 격변기에 다시 암울한 시대를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한반도 전통차의 맥은 초의, 범해, 원응, 응송 스님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던 1979년, 한학을 공부하던 박 소장은 자신의 원고를 현대적으로 윤문할 사람을 찾는 응송 스님을 만났다. 해남 백화사, 응송 스님은 세납 89세였고 박 소장은 29세였다. 응송 스님과 차를 마시며 초의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이를 인연으로 차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85년 응송 스님에게 전다게(茶道傳偈)를 받고 그 무렵부터 전남 승주에서 직접 차를 재배해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30여년 동안 매년 빠지지 않고 승주로 내려가 직접 찻잎을 따서 가린 뒤 덖고 재건(再乾)해왔다. 차의 의미를 선에 이르는 매개물로 보고 있는 박 소장은, 그러나 차를 덖고 재건할 때는 삼매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찻잎이 익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선 마음을 몰입상태로 올려놔야 하고, 그것이 바로 선의 경지와 상통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춘차’는 예의 초의차가 그랬듯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추사 김정희 연구에 획을 그은 미술사학계의 거목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박동춘 선생이 응송 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아 더욱 발전시킨 제다법으로 만든 동춘차는, 추사가 사랑했던 초의차에 근접한 수준”이라며 “나는 오로지 동춘차만을 마시고 있는데, 박동춘 선생으로부터 아무리 많이 얻어왔더라도 금방 떨어져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전통을 잇는다는 게 누가 가르쳐준다 해도 결국 본인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박동춘 선생은 뜻을 세우면 그 뜻을 결국 성취하고야 마는 뚝심을 가지고 있어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도 동춘차의 애호가다.

박 소장은 전통차 복원·확산은 물론 이론 정립을 위한 학문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001년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는 차 문화 강의를 통해 제다인을 양성해온 한편, 학술대회를 열어 초의선사와 응송 스님 등을 조명하는 활동도 이어왔다. 박 소장 역시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우리시대 동다송’ ‘추사와 초의’ 등 저서를 선보였고, 2010년에는 동국대에서 ‘초의선사의 다문화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박 소장은 2009년 불교여성개발원의 제4차 여성불자 108인으로 선정됐으며 저서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가 2011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 2013년엔 제22회 행원문화상 학술부분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품질 유지에 대한 신념으로 상업화의 기로에서 언제나 전통 계승을 선택해왔던 박 소장은, 동춘차를 판매하는 대신 시음회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서다. 맑은 빛깔에 다섯 가지 맛이 조화되어 그윽한 향과 함께 정신을 밝게 해주는 동춘차가 여전히 마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박 소장은 계승을 넘어 현대에 맞는 차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올 3월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를 사단법인화하고 제다인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제다인 육성은 차이론 연구 심화와 연계돼 더욱 의미가 깊다. 학부가 아닌 특수대학원 위주로 차 문화 강의가 이뤄지는 현재 흐름 속에서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차 문화 이론연구가를 배출시키려는 의도다. 불교문화에 침전된 차 문화의 역사성을 드러내 널리 펼쳐내고 있는 박 소장은 공산품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박제된 고전이 아닌 시대의 콘텐츠로서 ‘차 한잔’을 대중들에 건네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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