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연구는 “불교도의 목적과 그 목적을 달성한 결과를 알지 못하면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를 아무리 설명해도 ‘불교란 결국 무엇인가?’라는 것이 여전히 막연한 채로 남는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불교도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오가와 유지는 “적어도 붓다에게는 ‘해탈’이며 또 그것을 달성한 경지인 ‘열반’이었다. 일반적인 용어로는 붓다의 깨달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 ‘깨달음의 재발견’은 불교의 본질을 해탈과 열반으로 제시한 우오가와 유지가 ‘해탈·열반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증득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탐구 결과를 풀어놓았다. 일본에서 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이 책은 한편으론 몇 가지 이유 때문에 ‘깨달음’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자는 깨달음의 정의와 깨달음에 도달했을 때의 상태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설명하려 노력했다. 특히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무상, 고, 무아로 시작해 연기까지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이의가 없을 정도로 명쾌하다. 때문에 일본 불교학계에서 일가를 이뤘다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추천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붓다는 깨달은 다음에 왜 죽지 않았나?’ ‘붓다는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을 설한 게 아니다’ 등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질문과 표현이 이어지면서 깨달음에 대해 다양한 견지를 갖고 있는 학계가 들썩거렸고, 논쟁에 이어 이 책을 비판하는 단행본까지 나왔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진리를 체득한 다음에 하는 모든 행위는 순수한 유희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붓다의 이타행은 선택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붓다는 인간으로서 바르게 사는 길을 설한 게 아니다’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붓다의 말씀은 오히려 사회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노동과 생식을 부정하고, 애초부터 그 전제가 되는 ‘인간’이라든가 ‘올바르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고 봤다. 그래서 불교는 ‘반선악’이 아니라 ‘탈선악’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며 ‘깨달음’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말하면서도 윤회를 부정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논증, 무아이기 때문에 윤회한다는 논지와 증명은 불교를 더 불교답게 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이 윤회인가’라는 문제는 불교의 문맥에서 보면 애초부터 분류 오류인 문제이다. 존재하고 있는 것은 업에 의한 현상의 계기뿐이고 그 과정, 프로세스가 ‘윤회’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지, 거기에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 고정적인 실체는 내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회’라고 하면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죽어서 다른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전생’이라는 이야깃거리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윤회라는 건 전생의 순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당신에게도 현상의 계기라는 프로세스로 계속해서 생기한다. 전생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 알기 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불교학계가 주목하는 ‘젊은 피’로 불리고 있는 저자는 학계와 수행자 사이에 여전히 만연한 윤회 부정과 윤회의 주체를 설정하는 문제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다.
저자는 더 나아가 불교학계 거장들의 불교 논지 전개가 경전에서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솎아 내거나 때론 절대로 얼버무리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을 가한다.
다소 파격적인 주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깨달음이라는 불교의 애초 목적을 찾아가는 그의 진지한 여정은 함께 읽는 이들로 하여금 불교의 본질에 관심 갖고 한발 더 다가서게 한다. 명상이 불교의 전부인 듯이 비춰지는 오늘날 한국불교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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