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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일상과 수행 수채화로 그려낸 편지

  • 불서
  • 입력 2017.04.03 15:53
  • 수정 2017.04.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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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일초 스님 지음 / 민족사

▲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불혹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저는 내 영혼과 육체가 파도에 부딪쳐 녹아내리는 거품처럼 꺼져가는 어떤 의미를 잃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존재의 의미, 소유의 의미, 그것들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은,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나는 며칠 동안 심하게 감기몸살을 앓았습니다. 몸은 아프지만 한편으론 푹 내 안에 잠겨 상념에 젖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기로 돌아와 성성하게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보면, 번뇌 속에 헤매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면서 서글퍼집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텅 빈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밤이 꽤 깊은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잠을 놓친 것 같아요. 이 생명이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늙음이라는 고(苦) 때문에 생각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언뜻 노년기에 접어든 어느 지성인이 자신의 마음자락을 펼쳐놓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글은 동학사승가대학원장 일초 스님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다. 스님의 편지에는 감기나 관절염 등 질병으로 고통 받는 보통사람의 모습을 비롯해 점차 나이 들어가는 노인의 마음, 속가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온갖 괴로움 등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출가자 역시 생로병사의 근본 고통 속에 흔들리는 존재임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낸 편지 속에는 “하늘빛이 맑아지면 물빛도 맑아지고 사람의 눈빛도 따라 맑아진다. 그 높고 넓은 하늘이 비어 있는 것만큼 행복으로 채울 수 있다” 등 구절구절 수행자의 번뜩이는 지혜가 녹아 있기도 하다.

▲ 동학사승가대학원장 일초 스님이 도반, 후학들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비구니스님들의 일상과 수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에는 이처럼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고, 사유하고,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비구니스님들 모습이 담겼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까지 생생하게 묘사됐다. 덕분에 독자들은 내밀한 삶의 이야기를 담아낸 편지에서 비구니스님들의 일상과 수행을 엿볼 수 있다.

전체 4장으로 엮은 책은 첫 번째 장에서 일초 스님의 삶과 고뇌를 진솔하게 담은 편지와 자작시를 만날 수 있다. 2장에서는 도반 서림 스님의 일상과 수행을 엿볼 수 있고, 3장에서는 일초 스님의 제자들이 품은 사연들이 공개됐다. 그리고 4장에는 고달픈 삶의 애환을 위로받고 싶어 하는 세상 사람들의 편지를 덧붙였다.   

일초 스님은 자신을 ‘선생님’으로 부르는 학인들이 새해 인사를 전하는 연하장을 보내오면 “여러분의 자비심과 자비행이 불자들의 가슴에 꽃을 피우고 불자들이 세상에 계속 퍼뜨려 자비행의 릴레이를 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출가자 본연의 모습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등 편지 곳곳에서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고 있다.

“미움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에 봄은 세상을 꽃밭으로 만들고 여름은 풍성하고 기운찬 젊은 날의 표상처럼 환희로우며 가을은 한 생을 살고 난 삶처럼 자기의 색깔을 만들어 장엄한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쉴 수 있는 겨울 마음의 씨앗을 만들어 고이 간직하는 따뜻함, 이제 살갗을 스치는 바람의 향기도 맡을 줄 아는데 이 좋은 것들을 가슴 가득히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사랑 아님이 없음을 알았는데 내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비구니스님들은 평소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까’ 하는 호기심에 펼쳐든 책에서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고통과 기쁨, 자연과 벗 삼은 일상과 사색,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수행의 과정으로 삼아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만나며 함께 성숙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수행자의 구도열과 타인을 향한 자비보살행의 염원을 담은 글이 내 삶의 이정표로 다가옴도 느낄 수 있다. 1만45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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