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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삶

기자명 금해 스님

출가했던 행자 속퇴 후 찾아와
오히려 삶 수행으로 더 깊어져
결실은 끝아닌 다음 순간 과정

봄꽃이 피어나는 시절입니다. 붉은 매화꽃이 서울 끝자락 우리 절에서도 화사한 모습을 자랑합니다. 

7년 전, 우리 절에서 몇 개월을 행자로 지낸 보살님이 있습니다. 불교공부 하면서 출가하려는 마음을 내고, 본사 행자로 들어가기 전이었지요. 승려로서 기본적인 습의와 염불, 목탁 등을 지도해주고 기초 교리와 기본 경전에 대한 공부도 했었습니다. 본사로 가면서 헤어진 후에는 따로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심성이 따뜻하고 심지가 곧아서 좋은 스님이 되었으리라 생각할 뿐이었지요. 그런데 몇 년 후, 속퇴한 모습으로 찾아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보살님의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출가보다 더 큰 결단이었을 테니까요.

그 후, 보살님은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고마운 것은 옛 정을 잊지 않고 꾸준하게 안부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우리 절을 방문했습니다.

기도와 사찰 소임으로 바빠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서로 얼굴을 보며 눈인사만 했습니다. 저녁 공양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마주 앉았습니다. 잠깐의 출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동자가 제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와 사람들과의 문제를 불교 공부와 수행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식어버린 밥, 겨우 몇 가지 반찬에도 마음 따끈따끈한 공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이 마주앉은 저녁 참선 시간은 풍경소리 가득 흘러내리는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가 승복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삶의 수행으로 더 깊어진 그를 만날 수 있었지요. 다음날 아침 이별할 때 보살님이 말했습니다.

“출가 시절 공부했던 힘이 저를 더 열심히 살도록 해 주었어요. 그 시절이 있어서 삶의 어떤 순간도 두렵지 않고, 더 행복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삶에서 어떤 일을 할 때, 크든 작든 우리는 오래도록 고민하고 선택합니다. 하지만 항상 원하는 결실을 얻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결실’은 끝이 아니라, 곧 다음 순간의 ‘과정’이 됩니다. 그렇기에 순간의 결과를 두고 삶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것도,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된 듯 포기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실패였다고 생각했던 결과가 오히려 힘이 될 때도 있습니다.

큰 사업을 하던 한 노거사님은 IMF로 모든 것을 잃고 노숙자처럼 사찰에서 5년을 지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사업가로 기억했습니다. 이후 다시 사업을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더 즐기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에 사는 동안 욕심을 버리고 나눌 줄 아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했지요. 같은 시절 사업을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러 가지 병과 우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 나이 아흔이 되어가는 노거사님은 등산을 즐길 정도로 건강하고 통찰력이 있으며 환한 미소를 갖고 있습니다.

▲ 금해 스님
가득 피어나는 꽃, 바람결에 날리는 꽃잎들을 보며 본래의 나무를 칭찬합니다. 꽃 피워내고 떠나보내는 나무는 한 해 동안 그렇게 자라날 겁니다. 우리의 삶도 같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삶의 순간순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기쁨과 성장을 주며, 삶의 의미가 됩니다. 죽음도 다음 삶의 과정일 뿐이라 생각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 결과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금해 스님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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