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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은혜와 원한, 정과 미움-하

“인생의 어려움은 나를 분발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 불광산 성운대사의 인간불교는 세계 곳곳의 불자들이 함께 실천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부모님과 가족을 떠난 뒤 세간 속세의 정을 멀리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원망을 듣고 꾸중을 당하면서도 마음에는 결코 원망이 없었습니다. 어느 때인가는 이성의 황당한 말을 들었는데 이러한 말은 그 자신에게 손해입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품을 수 있는 은혜와 원망이란 감정들은 수행에 있어서 역증상연(逆增上緣)이 됩니다."

물론 빈승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이 금전이나 물질적으로 주신 것만은 아닙니다. 서하율학원의 그 많은 강사 스님들이 저를 때리고 야단을 친 것은 그분들이 자비로운 마음에 날벼락 같은 수단의 교육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히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일부 사람들 가운데는 저한테 바라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해줄 능력이 없었던 저에게 원한을 품기도 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1989년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오고 난 후에 조카 한 명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계속 요구했습니다. 저는 청년이 바라는 것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에 어렵게 미국에 보내주었는데 학비를 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학교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또 저에게 집을 사달라고 하고 직업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게으른 성품이었기에 몇 번이나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조카가 저에게 하는 말이 20년에 걸쳐 지은 서래사(西來寺 : 미국 LA에 있는 불광산의 도량. 역자 주)를 자신이 이틀 만에 파괴해버릴 수 있다고 협박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성격이 좋거나 나빠서 혹은 질투 때문이거나 사상이 달라서 그렇다고 하면 그렇겠거니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척의 무리한 요구에 대해 빈승으로서는 이 모든 것이 불교의 것이고 시방대중의 것인데 “어찌 가족을 위해 저 개인이 무엇을 해줄 능력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저는 삼보 불가의 돈으로 그들을 도와줄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듯 저를 향한 원망과 욕설 속에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모두가 빚을 받으러온 빚쟁이들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저를 비판하고 심지어는 욕설을 퍼부어 모욕을 주거나 온갖 사소한 일을 부풀려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는 마음으로는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진정으로 저에게는 조금의 원한도 없고 단지 어떻게 그 사람의 부족함을 보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어서 우리들 사이에는 대립이 없고 정만 있었으며 원한이 없고 존중만 있었습니다. 현재는 이러한 수많은 원증회고(怨憎會苦 :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괴로움. 역자 주) 같은 것을 저도 별로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않습니다. 없는 일을 만들어 분란을 일으키거나 비방하고 헐뜯으려는 당신의 마음 속 분이 풀릴 수만 있다면 이 또한 그들에 대한 빈승의 조그만 기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은혜와 원망에 관한 것은 비교적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인간세상의 정과 사랑은 실질적으로 말로써 분명해 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빈승도 사람이라서 비록 출가하였지만 사랑과 미움에 대해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교장을 하고 있을 때로 기억하는데 한 노부인이 저를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자 온갖 방법을 다 기울였지만 저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부모님과 가족과 헤어져서 멀리 떠났는데 제가 어찌하여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이후 다시 다른 사람을 부모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경전에서 “모든 남자를 나의 부친으로 하고 모든 여자를 나의 모친으로 한다.”라는 말처럼 세상의 모든 부모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나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주는 그 사람만의 아들이 되는, 그런 부모는 필요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분들은 저에게 온갖 관심과 깊은 사랑을 주셨지만 그분들의 호의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반(潘)씨 성을 가진 부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저를 자신들의 사위로 삼고 싶어 하였지만 이는 더욱 더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생 끝에 출가의 기회가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바로 이곳에서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을 뿐이지만 제가 어찌 불교의 은혜와 깊은 의리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대만에 도착한 초기에 ‘인생’이란 잡지의 편집을 맡았는데 당시의 대만은 아직 문화적으로 사막지대인 시기였기에 불교에 사람들이 읽을거리가 되는 잡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쉽게 사회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여성이 자기들이 일하는 곳에 와서 설법을 해달라고 저를 초청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홍법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초청에 응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직전 다른 학교에서 강연을 하였기에 그 사람들도 저를 강당에서 강연을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도착한 그곳은 약 10미터가 되는 기다란 방이었고 한쪽으로 군대식 침상이 있는 여성들의 숙소였습니다. 침상은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전부 20여세의 여성만 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강연하게 됐습니다.

당시 이 상황을 본 저는 “중생제도를 위해 나 자신이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겠나?”라고 하신 지장보살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빈승은 평범한 몸을 가진 범부였기에 이렇듯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에서 설법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간단하게 강연을 한 이후 이름조차도 더 묻지 않고 더 이상 왕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정한 것일까요? 저는 인간 세상에 조금이나마 정을 남겼어야 하는 걸까요?

그 이후에도 정신 이상의 중년여성이 저를 민망하게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느날 불광산 대웅전 동쪽에 위치한 동선루 앞에서 갑자기 60여세의 여성이 키가 저보다 작지 않은 두 남성을 제 앞으로 데리고 와서 “이분이 너희 아빠시다. 얼른 인사드려라”하고 말을 하였고 그 두 남성은 저를 향해 정말로 절을 하였기에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저의 형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그 당시 40~50세에 달하는 저의 자식이 된다는 것은 명분에 맞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나이도 걸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이었는데 실제로는 망상증이 있고 불광산 근처에서 몇 년 동안 살고 있다고 사람들이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저에게 별다른 불편함이나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고전소설 ‘양산백과 축영태의 일곱 생 인연(梁山伯祝英台七世因緣)’을 흉내 내서 자신과 제가 일곱 생에 걸친 부부라고 바깥에서 계속에서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 여성에게 손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불교에 대해 이렇게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타이베이 보문사에서 매번 제가 강연설법을 하면 매우 우아한 중년여성이 항상 차를 갖다 주거나 꽃 한송이를 가져왔습니다. 평소 보문사에서 이 사람을 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강연할 때에만 나타나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그 여성이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었는데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으니 거동이 정상적이지 않더라도 개의치 말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와 자혜 스님 등 여럿과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저에게 다가와서 저의 옷깃을 정돈하고 옷차림을 매만져 주었습니다. 옆에는 많은 남성들이 있었고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손님들도 서 있었는데 단정하게 생긴 이 여성으로부터 이렇게 보살핌을 받는 저를 보게 되었으니 저는 입이 있어도 어찌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여성은 보문사에 메모를 남기면서 저에게 꼭 전해주라고 했다고 하는데 메모에는 “저는 하늘의 이 구름을 꼭 따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여성에게는 그림인 듯 시를 짓는 것과 같은 느낌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이러한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인간불교의 전법에 힘을 쓰다보면 날마다 많은 사람들과 왕래를 갖게 됩니다. 그 당시 대만에서는 두 가지 색깔의 모자를 가장 무서워했는데 누구라도 그 모자를 쓰게 되면 아주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빨간색으로, 즉 공산당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황색으로 현대인들이 말하는 정부를 가리킵니다. 한 출가자에게 이것은 매우 심각한 타격이 되고 특히 청년 출가자에게는 아주 불리한 행위가 됩니다. 물론 빈승 역시 사람이어서 저에게도 은혜와 원망, 사랑과 미움이 있지만 약간의 오해만으로도 사람을 아주 우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초창기 불광산에 15~16세 나이의 전화교환원이 있었는데 매번 손님을 만나고자 객당에 가려면 필히 교환실 옆을 지나야 했습니다. 1~2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말을 걸어준 적이 없었지만 제가 지나가면 그 교환원은 매번 일어나서 저에게 인사를 하였고 기다리고 있는 손님을 만나야 하기에 저는 교환원과 언어적인 접촉이 없었습니다. 어느 하루 우연히 길에서 교환원을 만나게 된 저는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는 마음에서 무심코 나온 말이 “아주 예쁘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아가씨에게 “예쁘다”고 해주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자인 자가(慈嘉) 스님이 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불학원 원장이었는데 “원장 스님이 저한테 예쁘다고 하신 거는 무슨 뜻이죠?”라며 그 아가씨가 제자를 찾아와서 물었답니다. 아주 정직하고 고지식한 자가 스님은 설명을 해주지도 않고 바로 “팔푼이 같은 소리 그만해! 무슨 헛소리야”라고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이런 수많은 팔푼이, 헛소리에 제가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빈승은 지금처럼 늙었습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지난 날이 있으며 지나간 옛일과 정, 미움에서 분리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모든 것을 우리들 수행에서의 역증상연(逆增上緣 : 어렵게 하여서 더욱 분발하게 하는 인연. 역자 주)으로 삼아야 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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