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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푼돈 모아 큰돈 만들기?

기자명 조정육

경전은 복 쌓는 법 일러주는 최고 지침서

▲ 오채현, ‘합장’, 35x25x47cm, 화강석, 2007년, 개인소장 : 보시의 공덕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보시는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내어주는 것인데 재물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보시가 있다. 그것을 무재칠시라고 한다. 자원봉사처럼 몸으로 베푸는 보시, 마음으로 축원해주는 보시, 환하게 웃어주는 보시, 좋은 말을 하는 보시, 자비로운 눈길을 보내는 보시, 자리를 내어주는 보시, 잠자리를 내어주는 보시 등등 사소하지만 생활 속에서 복을 짓는 행위 등이 무재칠시다. 오늘 나는 어떤 보시를 하고 있는가.

오래된 얘기다. 언니 때문에 빚을 잔뜩 지게 되어 월세로 산 적이 있었다. 사는 것이 팍팍해 희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가족만큼 친하게 지내던 분이 딸의 등록금을 빌려달라고 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등록금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파출부로 생활하면서 아이 둘을 기르는 분이었으니 사정이 매우 절박했을 것이다. 내 성격이 원래 징징거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았다. 때문에 그분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부탁했을 것이다. 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돈을 빌려주지 못했다. 변명도 할 수 없어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 얘기는 그렇게 끝났다.

많은 빚 얻어 힘들게 살 때
딸 등록금 빌려달라던 지인
결국 빌려주지 못하고 절망

경전 읽고 고통 원인 발견
적은 돈이었지만 매달 저축
경전은 등불처럼 삶 밝혀줘

그런데 생각할수록 나의 처지가 한심했다. 대학 등록금도 아니고 겨우 고등학교 등록금인데 그걸 빌려주지 못한 내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고 기가 막혔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구나. 새삼 내가 처한 현실을 재확인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분명 그 원인이 있었을 텐데 그 원인이 궁금했다. 현상적으로는 언니 때문에 빚을 지게 되었지만 돈 때문에 고통받는 데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았다. 당시에 나는 한참 불교 공부에 심취해 있던 때라 불교의 가르침에서 그 해법을 찾고자 했다. 인과법에 관련된 책은 모조리 찾아서 읽었다. ‘삼세인과경’도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경전이었다. 경전내용 중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전생에 돈 한 푼 밥 한 그릇 남에게 베풀지 않은 탓이다. 의식주가 풍족하고 복된 삶을 누리는 사람은 전생에 부처님께 시주공양을 많이 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한 공덕을 쌓았다.”

아, 그랬었구나. 내가 돈 때문에 힘든 것은 전생에 인색했기 때문이구나. 비로소 돈 때문에 고통받는 근본원인을 찾아낸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고통이 아니라 ‘겨우’ 돈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삼세인과경’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불행의 원인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는데 그나마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런데 현재 고통의 원인을 찾아냈지만 이미 전생의 일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전생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서 주저앉았더라면 나는 평생 비참한 생각에 빠져 살았을지 모른다. 다행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를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복을 쌓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한단 말인가. 매일 빚쟁이한테 시달리고 살면서 무슨 수로 복을 짓는다는 말인가.

그때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예전에 아주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에 어떤 할머니가 저축한 얘기였다. 그 할머니는 부엌 모서리에 작은 항아리를 마련한 후 밥을 지을 때마다 쌀 한 줌을 덜어 그 항아리에 담았다. 겨우 한 줌밖에 되지 않은 쌀을 모아 어느 세월에 항아리를 가득 채울까 싶었지만 날이 가고 달이 가자 그런 날이 왔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 할머니를 따라서 해보고 싶었다. 내가 이번에는 고등학교 등록금도 주지 못하지만 그 집 둘째가 대학 갈 때는 대학 등록금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은행에 가서 적금통장을 만들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매달 일정액을 불입했다. 내 빚도 다 갚지 못한 상황에서 보시를 하겠다고 적금을 넣는 내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계속했다. 불자로 살기로 했으면 진짜 불교교리를 실천하며 살아보는 거다. 어차피 저 돈을 아낀다고 해서 빚을 전부 갚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미래를 위해 복이나 짓자. 뭐, 그런 생각이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면 결과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진짜 돈이 모아졌다. 푼돈 모아서 뭐하겠냐 싶었는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빈말이 아니었다.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되고 푼돈도 모으면 목돈이 되었다. 적금의 저력을 확인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목돈을 쥐게 되자 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돈을 꼭 등록금으로 줘야 할까. 주겠다고 말한 적도 없고 지금 나도 빚 때문에 시달리는데 급한 불부터 꺼야 되지 않을까. 마음속에서 갈등이 끊임없이 지글거렸다. 어떻게 모은 돈인데 이 돈을 공짜로 준단 말인가. 이 돈을 줘봤자 내가 여유가 있어 준 줄 알 거야.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 돈인지 결코 알지 못할 거야. 이렇게 무의미한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껄껄껄 웃었다. 내가 대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겨우 이런 사람이었구나. 한심한 자신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런 생각을 뛰어넘느냐가 아닐까. 스스로 위로했다. 등록금으로 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 돈은 내 돈이 아닌 거다. 한없이 돈을 향해 손을 뻗는 나를 바라보면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모은 돈을 찾자마자 바로 입금했다. 남들은 내가 도량이 넓어 보시를 척척 실천한 줄 알지만 알고 보면 나야말로 진짜 쫀쫀하고 속이 좁은 사람이다.

오늘 이 얘기를 쓰는 이유는 보시를 했다고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부처님 법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애초에 언니 때문에 빚을 졌다고 말했지만 그건 순전히 원망의 대상이 필요해서 한 얘기였을 뿐이다. 쉽고 편하게 돈을 벌어보려는 한탕주의가 나의 잠재의식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언니 말에 속았다. 내 생각이 반듯했더라면 옆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속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의 모든 행동과 결정은 내 책임이었다. 그나마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어 얼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별 실수 없이 살아가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럴 때 경전은 등불처럼 우리 삶을 밝혀준다. 경전에 적힌 대로 따라 하기만 해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복을 쌓을 수 있다. 경전은 복을 적금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재테크 지침서다. 그 적금은 어느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영원한 보배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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