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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한 이능화

기자명 이병두

비운의 시대 살아갔던 위대한 학자

▲ 이능화는 연미복을 세련되게 갖춰 입은 신식 신사였으며, 전통문화에도 대단히 해박했던 학자였다.

충청도 괴산 출신의 이능화(1869∼1943)에게는 간정(侃亭)·상현(尙玄)·무능거사(無能居士) 등 호(號)가 여럿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드물게 중국어(漢語)·일어·영어·프랑스어(法語) 등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며, 관심 분야가 넓고 깊어 불교·기독교·도교·민속학·외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귀중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려서, ‘위대한 학자’라는 명예로운 칭호 뒤에 조선사편수위원회 참여 경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민족친일행위자’의 딱지가 따라다닌다. 이처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불행한 시절을 만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어 등 여러 외국어 능통
‘광대원통’한 불교에 매료돼
조선불교 역사 써보겠다 발원
10년간 불철주야 불교사 집필

이능화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광대원통(廣大圓通)’해 보이는 불교에 마음이 끌려 불교에 입문하였다. 그 뒤 불교진흥회 간사·이사를 맡고 ‘불교진흥회월보’와 ‘조선불교계’·‘조선불교총보’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연달아 맡으며 불교활동가로서 면모를 보여주었으며, 1918년에는 방대한 불교 역사서인 ‘조선불교통사’를 출판하여 불교학자로 큰 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이 불후의 명저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되는 이제까지 어느 후학도 이 책을 뛰어넘는 연구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게 여기던 차에, 몇 해 전 동국대에서 정부 예산 지원을 받아 이 책의 완역본을 출간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이능화는 연미복을 세련되게 갖춰 입은 신식 신사였다. 한성법어학교(서울 프랑스어학교) 교사와 교장을 역임한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이 그는 구미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지식에 밝았으며, 이런 조건을 이용해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불교에 푹 빠져들어 살게 되었으니,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답답한 유가의 성리학보다 광대원통한 불교의 심성설(心性說)을 매우 좋아했으나, 불경·선서를 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 원흥사의 불법연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조선불교의 연혁에 대하여 물어보았지만,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 1500년 역사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나는 이에 ‘조선불교통사’를 저술하여 불충분하지만 세상에 내어 불교에 뜻을 둔 이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였다.”(1917년 7월14일자 ‘매일신보’ 인터뷰 기사)

그러나 문득 ‘조선불교 역사를 써보겠다’며 마음을 먹은 뒤 이능화에게는 매우 힘든 실천 과정이 이어졌다. “그때(1907년 경 자료수집에 착수한 때)부터 나는 일본·중국 등지에서 불서와 기타 참고서적을 구한 뒤 (외국어학교 교사와 교장 소임의) 낮 근무를 마치면 심력(心力)을 다하여 불교를 연구하였다. 또 고승의 비문과 행장, 사찰의 기록, 종파와 산문의 풍습 등을 막론하고 모두 모았다. 그리하여 시중에 보이는 것은 모두 불서요, 책상 위에 쌓이는 것도 불서요, 촛불 아래에서 초록하는 것도 불서요, 누워서 꿈을 꾸는 것도 불서였다. 오로지 밤낮으로 불서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아내에게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며 비웃는 말까지 들었다.”(위 신문 7월15일자)

역시 미쳐야 일가를 이루는 법(不狂不及)인가 보다. 그런데 이렇게 미쳤던 이능화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자꾸 작아지는가. 나만 그럴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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