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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감로(甘露)

기자명 정진희

한 방울 마셔도 괴로움 사라지고 만병 치유

▲ 보석사 감로왕도, 220×235㎝, 마본채색, 조선(164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물은 필수적이다. ‘먹는 샘물’이라고 불리는 생수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마시는 물을 의미한다. 필자도 수돗물에 볶은 보리나 옥수수를 넣어 차를 끓여 마셨던 시절은 이제 생각도 잘 나지 않고 목이 마르면 당연히 정수기에서 물을 찾고 생수병을 들고 목을 적신다. 물론 우리네 정서 속에는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이란 어르신도 계시지만 그건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알프스 눈 녹은 물을 돈 주고 사먹는 시절이 올 줄 누가 알았으리요.

조선시대 수륙재 큰 재화 필요
불단 등 포함한 감로왕도 그려
서민까지 봉행 가능하도록 해
조상 영혼 해원으로 마음 달래

불가에서뿐만 아니라 흔히들 깨끗하고 시원하며 맛이 좋은 물을 감로수라 한다. 감로(甘露)는 단 이슬이란 뜻이며, 오래 전 임금이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면 하늘에서 감로가 내린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법문이 감로에 비유되는 까닭은 중생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알게 됨으로써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고 고통의 세상에서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가에서 사용되는 감로의 의미는 조금 달라져 부처님께 올리는 찻물을 뜻하기도 한다. 원래 감로수는 도리천에서 샘솟아 오르는 달콤하고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물이다. 이 물은 천신들이 마시는 천주(天酒)이기에 감로는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만병을 치유하며 수명을 늘리고 죽은 이는 부활한다는 불사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찰에서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축여주기 위해 마련된 수조(水槽)에는 감로수라 이름 붙인 예가 많고 이를 찾은 사람들은 그 이름만큼 몸에 좋을까 싶어 약수를 한 사발씩 들이키는 것이리라.

감로는 목이 마를 때 겨우 얻은 귀하디귀한 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죽을듯한 갈증을 해소시켜준 생명수인 감로를 주제로 삼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불화가 감로왕도(甘露王圖)이다. 감로왕도의 신앙적 배경이 되는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이었던 목련존자는 육신통을 얻은 뒤 가장 먼저 돌아가신 어머님을 찾아보았다. 슬프게도 목련존자 어머니의 영혼은 아귀가 되어 굶주리고 목이 타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목련에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스승인 부처에게 답을 구해 7월15일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을 하면 전생과 금생의 부모님 일곱 분을 구제할 수 있다는 답을 듣는다. 목련존자는 부처의 가르침대로 행하여 어머니를 구했는데 이것이 사찰에서 백중날 우란분재를 지내 조상에게 천도재를 올리는 까닭이다.

▲ 일본 약센지 소장 감로왕도 세부, 158×169㎝, 마본채색, 1589년,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기탁.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린 감로왕도는 조선시대 성행하였던 수륙재와도 관련이 깊다. 17~18세기는 임란과 호란을 겪은 아픔에 대기근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고충도 극심한 한국의 역사에 있어 변란의 시기였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으로 부모와 가족을 잃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무주고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설행되었던 수륙재는 큰 반응을 불러왔다. 하지만 정통 수륙의궤에 따라 의식을 진행하려면 불단을 조성하고 도량을 장엄하는 데 엄청난 재화가 요구되어 일반백성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불교 의례를 모아 정리한 의식집이 등장하면서 간략화된 수륙의례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에 의거하여 요약된 수륙화인 감로왕도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서민들도 천도의식을 행할 수 있는 방편이 마련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그림 한 장에 수륙의식에 필요했던 거대한 성찬이 차려진 불단과 각종 장엄구와 공양물, 불보살과 선인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을 간추려 모아 그렸기 때문에 일반 백성도 적은 비용으로 가족이나 친지의 영가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로왕도에서 목이 타서 감로를 구하는 아귀는 감로의 혜택을 받아야 할 실체이며 이 그림의 성격을 함축한 결정적 요소이다. 인도의 재래 관념에서 ‘부모의 영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귀는 그림에서 조상의 죽은 영혼을 나타낸다. 아귀는 현생의 업에 따라 윤회하는 육도 가운데 하나에 속하지만 육도를 헤매는 중간 단계의 영혼들도 아귀에 속한다. 그래서 아귀상태에 있을 때 극락천도를 비는 천도의례를 하는 것이다. 대체로 초기에 조성된 감로왕도에 아귀는 단독인 예가 많고 후대로 갈수록 아귀는 쌍으로 등장한다.

일본 약센지 소장 감로왕도의 화면 중앙에는 무릎을 꿇고 왼손으로 발을 들어 감로를 받는 아귀가 있다. 경전의 내용대로 입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배는 부풀어 항상 굶주리고 있지만 목은 가늘어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 아귀가 손을 내밀어 감로를 구하는 형상 위에는 아귀에게 감로를 베푸는 법사승려가 있다. 왼손으로 의식기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감로수를 공중에 튕기는 법사승려의 수인은 수륜관인(水輪觀印)이다. 이 수인을 하고 감로수를 공중에 뿌리면 일체의 아귀와 귀신들이 이를 받아 마시고 타는 갈증을 없앨 수 있으며 더불어 업장도 소멸된다고 한다. 18세기 이후가 되면 더 많은 아귀와 귀신의 갈증을 달래주기 위해 손 대신 끝부분에 술이 달린 막대를 이용하기도 한다.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감로왕도의 법사는 아예 바가지로 감로를 공중에 뿌리고 이를 받는 아귀의 그릇도 구연부가 넓은 그릇을 들어 감로를 받는다.

▲ 감로왕도 세부, 265×294㎝, 견본채색, 18세기, 삼성미술관 소장.

감로왕도에는 지옥과 아귀와 같은 영혼이 되어 받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연꽃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연화화생의 과정도 보여준다. 그림에서 감로수와 불법으로 구원을 받은 영혼은 인로왕보살에 의해 인도되어 극락의 연꽃 만발한 연못에서 새롭게 연화화생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부처가 여러 보살과 제자를 거느리고 이 영혼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감로왕도는 지옥에서 헤매는 조상의 넋을 구하기 위한 효심에서 시작되어 조상의 영혼이 구제되어 극락왕생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불화는 신앙을 표현한 종교회화이지만 그 속에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 시대의 현실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힘든 시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이지만 영가천도불사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저승으로 떠나보냈던 가족과 조상님들의 영혼이 해원(解寃)되어 서럽고 힘든 마음이 달래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마음이 우리나라에만 보이는 감로왕도라는 불화를 있게 만든 것이다.

근래 매스컴은 우리에게 가슴이 에이는 슬픔을 주고 가라앉았던 배가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식을 연일 전하는데, 자식을 기르는 부모입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서 피하고 싶고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흐려진다. 피지도 못한 채 떨어져 버린 꽃송이와 같은 어리고 여린 영혼들에게 아귀의 목구멍을 개통시켜 배고픔과 갈증을 벗어나게 하였던 하늘에서 내리는 감로와 같은 기운이 깃들어 극락왕생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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