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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빛 보지 못한 아이 생각하면 가슴 저려와”

  • 상생
  • 입력 2017.04.07 23:18
  • 수정 2017.04.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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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화계사·법보신문 이주민돕기 공동캠페인

▲ 퐁차이씨가 아내 알타이씨를 정성스럽게 간호하고 있다.

태국 이주노동자 퐁차이씨
입국한 아내 자궁외임신
병원비 3000만원 갚아야
임금체불 사장 만나기도

한국에 입국한 이래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지난번에 일했던 공장보다 근무조건도 좋고 사장님도 좋은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일한 덕에 공장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 아내를 추천해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내와 같은 공간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아내의 뱃속에는 둘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태국 청년 퐁차이(27)씨는 2013년 한국에 왔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생기자 태국에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 양가 부모님과 세 식구의 살림을 감당하기가 벅찼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 플라스틱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일을 했다. 일한 만큼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는 돈이 많아지기에 힘든 줄 모르고 몰두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돈을 주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기에 돈을 주지 않는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다.

다행히 이주민센터 도움으로 체불된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 직장을 잡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습니다. 또 잘못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어요.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다시 고용센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다행히 이번 직장에서는 좋은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사장님은 공장 주변에 거처를 마련해 생활비만 내면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성실히 일하며 다시 고국으로 생활비를 보냈다. 한국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아내도 한국으로 왔다. 어린 딸이 눈에 어른거리지만 둘이 벌면 타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2013년 떠나온 뒤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아 가족이 많이 그리웠던 차에 아내의 입국으로 외로움을 많이 덜어냈다.
아내는 화장품 공장에서 일을 했다. 두 사람 다 일이 고됐지만 낯선 땅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떠나올 때 2살이었던 딸아이는 이제 5살이 됐다. 매일 영상통화로 아이를 만나지만 아이를 품에 안아본지 3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가던 차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퐁차이씨는 뛸 듯이 기뻤다. 양육에 대한 부담보다는 아이에게 든든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줘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한국 생활에서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한국에 들어온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날들이었다. 아내의 뱃속에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에 부부는 열심히 일을 하며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날도 함께 출근해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아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갔다. 아내는 허리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이상했다. 아내가 허리통증을 호소했던 적은 없었다. 구급차를 불러 바로 병원으로 갔다. 아내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져 온몸으로 번져갔다. 뱃속에 있는 아이 걱정에 근심이 두배가 됐다. 응급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퐁차이씨에게 담당의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산입니다.”

한국말을 잘 몰라도 의사의 얼굴을 보니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건강한 아내였기에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려웠다. 원인은 자궁외임신이었다.

“아내의 뱃속에서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아내의 생명까지도 위험한 상황이었죠. 아이가 생겨 기뻤던 만큼 슬픔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타국 생활에 알게 모르게 마음앓이 했을 아내에게도 미안했습니다.”

현실은 냉혹했다. 3000만원의 병원비가 나왔다. 지금까지 고향에 보냈던 돈을 다시 아내의 병원비로 되돌려 받아야 할 처지다. 아내는 회복을 위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퐁차이씨도 당분간 아내를 돌봐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퐁차이씨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집안의 가장으로 일곱 식구의 입이 자신에게 달려있고 무엇보다 세상의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떠난 아이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72-01 (사)일일시호일. 02)725-7014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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