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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권태의 마음을 읽다
7. 나르키소스 ③‘촉’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실존적 발달 과정
김권태  |  munsach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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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1  15: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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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는 아름다운 숲의 요정이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외도를 도운 죄로 헤라의 저주를 받아 남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하는 벌을 받았다. 에코는 나르키소스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를 졸졸 따라다니기만 할 뿐 먼저 사랑의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그러다 그의 차가운 외면에 슬픔에 빠져 점점 몸이 사라지고 끝내는 목소리만 남아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그리스 신화 에코는 엄마 목소리
엄마와 심리적 융합관계 벗어나
자신의 개별적 특성 내면에 갖춰
유아 대상 일관되게 인식하게 돼


에코는 유아기에 자기를 반영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뜻한다. 유아는 엄마를 벗어나 독립된 주체로 성장하고 싶다. 한편 이러한 분리불안은 마치 악을 쓰고 울며 엄마를 찾는 아기처럼 존재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준다.

불교의 12연기에서 ‘촉(觸)’은 ‘몸(根)과 외부대상(境)과 마음(識)’이 만나 하나의 세계가 펼쳐지는 자리이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라는 진실을 두고,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고유한 나를 경험하는 자리이다. 다시 주객이 하나라는 진실로 돌아오기까지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적 발달과정이다.

미국의 정신분석가인 마가렛 말러는 유아의 심리적 탄생과 관련하여 정신 내적인 ‘분리-개별화 과정’을 주장하였다. 여기서 ‘분리’란 유아가 엄마와 심리적 융합관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고, ‘개별화’란 유아가 자신만의 개별적 특성을 내면에 갖추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녀에 의하면, 인간은 생후 0~2개월 시기 외부자극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태내에서의 삶과 유사한 폐쇄된 심리 상태에 있으며, 이러한 유사 수면상태를 ‘자폐적 단계’라고 제안하였다. 또 생후 2~6개월 시기, 때에 맞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엄마를 자신의 일부로 착각하여 엄마와 심리적 융합을 이루는 시기를 ‘공생 단계’라고 하였다. 생후 6~24개월 시기는 ‘나와 타자(我他)’, ‘고통과 즐거움(苦樂)’, ‘좋은 것과 싫은 것(好惡)’으로 분화되는 시기로 이를 ‘분리-개별화 단계’라고 하였으며, 이에 대한 하위 단계를 ‘부화기’, ‘연습기’, ‘재접근기’로 세분화했다.

‘부화기’는 생후 6~10개월 시기로 유아가 외부 세계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서도 엄마를 더 잘 보기 위해 몸을 들쳐대고, 엄마의 신체를 탐색하듯 머리카락이나 귀를 잡아당기며 서서히 엄마와의 심리적 융합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이를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다 하여 ‘부화기’라고 한다.

‘연습기’는 생후 10~16개월 시기로 신체적 발달로 기고 서고 걷는 것을 완성하며, 엄마를 심리적 안전 기지 삼아 세상의 이곳저곳을 탐험하며 본격적인 분리 노력을 기울인다.

‘재접근기’는 생후 16~24개월 시기로 언어발달과 함께 인지능력이 발달하여 자신의 분리를 인식하지만, 이에 따른 분리불안으로 인해 엄마와의 친밀함을 확인하고자 떼를 쓰기 시작한다. 이때는 다가가면 도망가고, 내버려 두면 다가오는 방식으로 독립과 의존에 대한 양가감정을 표현한다. 애정 대상과 재결합하여 안정을 얻고 싶은 욕구와 그 대상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삼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대상에서 벗어나 주체로 독립하려는 갈등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엄마나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좋거나’ ‘전적으로 나쁜 대상’으로 분열하여 인식하며, 인형이나 담요 등 ‘중간 대상(엄마 표상과 연결되는 대상물)’에 집착하여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이 지난한 ‘분리-개별화 과정’을 거치며, 유아는 대상이 곁에 없어도 대상에 대한 일관된 상을 유지할 수 있는 ‘대상 항상성 단계’로 진입한다. 이 단계는 최소 36개월 이후에야 자리를 잡으며, 엄마가 부재하는 동안에도 엄마 표상을 유지해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엄마의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을 통합해 하나의 전체적 표상을 형성한다.

수면 위에 비친 나르키소스의 얼굴에는 이렇듯 수많은 실존의 이야기들이 물주름으로 일렁거리며 우리의 또 다른 거울이 되어준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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