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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폿틸라 비구의 육문 지키기

“거미집 속 도마뱀 잡으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그림=근호

학식이 높고 법을 잘 설하는 강사 비구가 있었다. 폿틸라는 이름을 가진 그 비구는 아는 것은 많았지만 깨달음을 성취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런 그를 경책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보통 때는 쓰지 않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깨달음 성취못한 비구 폿틸라
7세 아라한 사미를 스승 삼아
육문관찰 시작해 깨달음 성취
간절함·진정성으로 일군 결과

부처님은 폿틸라 비구를 만날 때마다 그를 ‘투차’라고 부르셨는데, 투차는 ‘머리가 텅 빈’이라는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그가 오면 “투차 폿틸라야, 이리 오너라.” “투차 폿틸라야 인사를 하여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폿틸라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머리가 텅 빈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부처님께서 나를 투차라고 부르신다면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곰곰 생각한 끝에 그는 부처님께서 자신을 투차라고 부르시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지혜는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선정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다’라는 결론을 내린 그는 그 날로 지내고 있는 사원을 떠났다.

그가 도착한 곳은 처음 머물렀던 사원에서 수십 리 떨어진 숲 속에 있는 한 수도원이었다. 폿틸라 비구는 수도원장에게 자기의 수행 지도를 부탁했다. 그러자 수도원장 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큰스님은 세상이 다 아는 대강사입니다. 어떻게 제가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폿틸라 비구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 수도원에는 원장 스님을 비롯하여 아라한 성자들이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지도하여 깨달음을 성취시켜 주십시오.”

수도원장 스님은 마침내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가 말은 겸손하게 하지만 마음속까지 겸손한지를 시험하기 위해 그를 일곱 살밖에 되지 않는, 그러나 최고 경지인 아라한을 성취한 사미의 지도를 받도록 조치했다.

폿틸라 비구는 아라한 사미에게 갔다. 후배 출가자는 선배 출가자를 만났을 때 절을 해야만 한다. 이에 규범에 따라 아라한 사미는 폿틸라 비구에게 삼배를 올렸다. 절을 받고 나서 폿틸라 비구는 아라한 사미에게 자신의 스승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라한 사미는 노비구가 진심으로 배울 마음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딴청을 부리며 그의 청을 승낙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폿틸라의 마음에서는 자만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했고, 그런 그에게 자기가 강사라든가 나이가 많다든가 하는 점은 자만심을 일으킬 만한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폿틸라 비구는 아라한 사미에게  자신을 지도해달라고 다시 요청했다. 그가 공손한 태도로 재삼재사 요청하자 마침내 아라한 사미가 말했다.

“이렇듯 간절히 청하시니 제가 큰스님의 스승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터이니 저를 잘 지도해주십시오.”

아라한 사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큰스님, 가사를 입은 채로 저 연못에 들어가십시오.”

폿틸라 비구는 스승의 말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스승이 나오라고 할 때까지 목까지 물에 잠긴 채 연못 속에 서 있었다. 밖으로 나오라는 스승의 지시를 받은 뒤에야 폿틸라 비구는 연못에서 나왔다.

그의 가사에서 더러운 진흙 물이 줄줄 흘렀다. 그렇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스승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수행을 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그를 보며 아라한 사미가 말했다.

“큰스님, 여기에 여섯 개의 구멍이 있는 거미집이 있다고 하십시다. 그 거미집에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들어갔습니다. 그 도마뱀을 잡고 싶을 경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라면 구멍을 관찰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만일 한나절이 지나도록 도마뱀이 안 나오면요?”
“목표를 이룰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렇듯 도마뱀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 때 스님의 마음 상태는 어떠할 거라고 생각되십니까?”
“일심으로 바짝 깨어 있을 것입니다.”
“자, 이것으로 저의 첫 번째 지도를 끝내겠습니다. 하루가 지난 다음 수행하신 결과를 제게 보고해주시면 두 번째 지도를 해드리겠습니다.”

전에 통달한 사람으로서 폿틸라 비구는 도마뱀 비유를 정확히 알아들었다. 그는 곧 자기의 수행처로 돌아가 자신의 다섯 가지 감각과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시작했다.

이튿날, 그는 전날의 수행 경험을 스승에게 보고했고, 그의 스승은 새 가르침을 주었다. 폿틸라 비구가 열심히 수행하는 것을 부처님께서 먼 곳에서 신통으로 보시었다. 부처님께서는 게송을 읊어 그를 칭찬하셨는데, 게송을 듣는 순간 폿틸라 비구에게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간절히 원하던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수행자의 할 일을 깔끔하게 끝마쳤던 것이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을 육문(六門)이라 한다. 육문으로 타물이 들어옴으로써 삶이 시작된다. 따라서 육문은 육입(六入)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육입의 대상은 육경(六境)이지만 불교는 육경을 문제 삼지 않는다. 육경이 육입으로 들어와 육식(六識)이 생긴 다음에 식이 어떻게 번뇌로 증장하는지를 불교는 문제 삼는다.

부처님은 성문을 지키는 파수병처럼 육문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볼 때 보는 줄 알고, 들을 때 들은 줄 알고, 냄새 맡을 때 냄새 맡는 줄 알고, 맛볼 때 맛보는 줄 알고, 감촉을 느낄 때 감촉하는 줄 알라는 것이다. 더하여, 마음이 온갖 감정과 생각을 일으킬 때에도 그것을 알아야 한다.

정신을 바짝 차려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림으로써 ‘나’라고 여기던 심신은 ‘나 아닌 무엇’이 되어 멀어진다. 그때 수행자는 물질(몸)과 비물질(정신)이 원인과 결과를 이루며 끊임없이 이합집산하는 현상을 본다. 그 무수한 현상 중에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다. ‘나’가 텅 빈 그 지점에 번뇌는 붙을 수 없다.

폿틸라 비구는 그것을 생각으로는 알았으나 비추어 보지는(照見) 못했다. 부처님께서 그를 ‘투차(머리가 텅 빈)’라고 부르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경책을 받아들여 그는 머리가 텅 빈 사람에서  ‘나’가 텅 빈 사람이 되었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을 성취한 그의 깨달음은 간절함과 진정성이 겸손을 거쳐 이루어낸 위대한 성취였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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