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헤진 옷을 입은 아이들이 새까만 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을 하고 앉아 있다. 툭, 툭. 아이들의 바구니 위로 밥이랑 과일들이 떨어진다. 공양 받은 음식을 스님들이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스님들이 자기가 먹을 하루의 음식을 떼어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광경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스님들의 맨발이 유난히 빛나게 느껴졌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거리에서 매일 새벽 동틀 무렵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루를 지낼 음식 탁발에 나선 스님들과 음식물을 보시하는 주민들, 그리고 탁발한 하루 먹을 음식을 다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는 스님들의 모습을 담아낸 풍경에서 그곳의 정신까지 엿볼 수 있다.
얼굴 그려 주는 남자 김동범의 태국, 라오스 감성스케치 여행을 옮긴 ‘조금 늦어도 괜찮아’는 이렇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을 그림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해마다 동남아시아를 간다. 그렇게 여행한 지 10년이 넘었다. 직업은 카툰 일러스트. 그가 해마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도, 시간이 넘쳐나서도 아니다. 다만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매번 무언가를 얻어 오는 것은 아니다. 길을 잃기도 하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저자는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들 때 망설이지 않고 여행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위로받고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돌아온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에는 저자의 여행하는 법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남다른 감성 그물에 걸린 태국과 라오스의 도시, 그리고 시골 오지의 거리 풍경, 삶의 모습, 사람들의 표정이 글·그림·사진과 더불어 다채롭게 펼쳐진다. 그래서 저자의 섬세한 감성과 오랜 여행에서 얻은 지혜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다른 여행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태국과 라오스의 속살, 즉 더러는 정겹고 흐뭇하고 더러는 아프기도 한 그곳의 사람살이를 만나게 된다.
라오스에서 스님들의 탁발 행렬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허겁지겁 달려 나온 저자는 탁발이 시작되기 전 풍경부터 끝난 후 주변 모습까지 섬세하게 담아냈다. 보통은 스님들이 탁발하는 모습만 보고 돌아서거나, 아이들에게 탁발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에 감동하며 숙소로 향했을 터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살폈다. 공양을 끝낸 할머니의 얼굴에 평온함이 깃들고, 공양할 음식을 팔던 아주머니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 받고 뿌듯하게 돌아서는 모습까지. 그리고 자신도 이 작은 베풂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여행지의 풍경과 사람살이 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놓은 에세이와 그림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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