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은 ‘차이의 존중’에서

기자명 심원 스님

불교계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성평등불교연대(약칭 성불연대)가 출범하였다. 성평등문화 구현을 통한 불국토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출범의 계기는, 청정계율수호로 ‘제2의 정화’를 주장하던 선학원 이사장의 ‘여직원 성추행 피소사건’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교계 단체들이 동참하면서 드디어 지난 3월16일 연대가 결성된 것이다.

교계 밖에선 탄핵 이후 앞당겨진 대선으로 시끌시끌하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번갈아 내놓은 공약 중에 ‘차별금지법’도 보인다. 이 법안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권고로 2003년부터 논의를 시작하여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까지 하였으나 논란 끝에 폐기되었고, 이후 몇 차례의 입법시도도 일부 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무산되거나 철회되었다.

차별금지법이 몇 차례의 입법 좌절에도 불구하고 선거철을 맞이하여 다시 거론되고, 교계 단체들이 성차별 없는 세계를 구현하자고 연대를 결성한 것을 보면, 차별로 야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보편적 위기의식이 자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조계종이 채택한 봉축표어도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양한 차이가 있다. 다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녀 성별이 다르고 인종, 피부색, 언어가 다르고, 종교와 사상과 문화와 이념이 다르다. 이러한 ‘차이있음’을 차이 있음 그대로 본다면 하등의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아상과 아집을 벗어나지 못한 중생계에는 차이가 차별로 변질된다.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가지고 강자는 약자를 차별하고, 다수는 소수를 차별한다. 억압과 착취, 그에 따른 저항과 보복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대표적인 예로 나치의 우생학적 민족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은 홀로코스트(Holocaust)라 불리는 유대인 집단학살을 불러왔고, 그 유대인들이 건설한 나라 이스라엘은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 서안지역에 총 길이 800㎞ 이상, 높이 8m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건설하였다.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었다. 이 다음에는 또 무엇이 올 것인가? 우리 현실도 녹록치 않다. 사회갈등지수는 24개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은 반면 갈등관리 능력은 최하위권에 있다.

공평한 분배와 정의를 위해 법과 제도가 있지만, 불행히도 인류 역사상 법과 제도로써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구현한 예가 없다. 그래서 생각을 내면화하는 자비, 관용, 배려 등의 미덕이 요청되고, 똘레랑스와 같은 사회적 가치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도 한계가 있다. 힘의 우열이 미묘하게 스며 있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베풀 때는 어쩔 수 없이 균형이 깨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귀중하면 다른 이의 것도 똑같이 귀중하며, 자신이 존중받기 바란다면 다른 이를 존중하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주장하는 바이다.

‘차이의 존중(Dignity of Difference)’은 영국의 저명한 유대교 랍비인 조너던 색스(Jonathan Sacks)로 하여금 2004년 종교 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케 해준 저서이다. 직역하면 ‘차이의 존엄’이지만 ‘차이의 존중’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동일한 유일신 신앙에서 출발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중 가장 폐쇄적이라 할 유대교 성직자이지만 그는 이 책에서 “종교야말로 갈등의 원천이 아니라 평화를 앞당기는 힘이 될 수 있다”고 공존의 지혜를 역설한다. 서로가 ‘타자’를 위해 공간을 내주는 것, 즉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인종 갈등과 문명 충돌, 테러 행위에 대한 종교적 정당화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 유대인 랍비가 ‘금강경’을 읽어 본다면 다음의 게송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할 것이다. ‘응무소주’는 차별을 지양함이요, ‘이생기심’은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성불연대가 목표로 한 ‘성평등한 불국토’ 건설도, 차별금지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차별 없는 세상’도,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차이의 존중’에서 시작된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daum.net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