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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화중생 즉시감응·분신서상과 보주

기자명 오중철

권위 벗고 대중에 다가서려는 여망의 발로

▲ 막고굴 237굴에 그려진 분신서상. 하나의 몸에 좌우로 대칭을 이루며 갖춰진 2구의 불두는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하단 양측에 무릎꿇고 예배하는 두 공양자는 각기 부처님 그림을 요청한 두 명의 가난한 사람이다.

돈황석굴에 묘사된 각종 서상(瑞像)들의 면면을 보면, 앞서 살펴본 양주서상이나 보리서상의 예와 같이 불상의 형식에 있어서 여타의 불상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을 갖춘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형식을 갖춘 불상은 단연 하나의 몸에 두 분의 부처님 얼굴을 갖춘 이른바 분신서상(分身瑞像)이다.

두 개의 불두 갖춘 파격양식
‘대당서역기’에 유래 기록돼
가속화된 불교 대중화의 결과
영험에 대한 과한 집착 경계

막고굴 237굴 주실에는 천정부의 가장자리를 따라 각양각색의 서상들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중 주존상을 기준으로 후면 천정부의 중앙에 위치한 불상은 그 기묘한 형태가 눈길을 끈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하나의 연화대좌 위에 하나의 입불상이 자리한 형식이다. 하체를 보면 분명 하나의 몸이지만, 그 상체를 보면 2구의 불두(佛頭)와 4개의 팔로 표현되어 있어 마치 2구의 불상을 모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두광(頭光)을 보면 하나의 두광만이 표현되어 있어, 본래 이것이 하나의 부처님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 좌측에 적힌 방제를 보면 ‘분신서상. 간다라국의 가난한 자 2명이 돈을 들여 상을 그리게 하였다. 그 공덕이 지극하여 한 몸에서 두 머리가 나왔다’고 적혀있다.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현장은 간다라국 카니슈카 왕이 세운 대탑에서 이처럼 기이한 도상의 불화를 참관하고, 상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 가난한 사람이 날품팔이를 하며 어렵게 금전 한 닢을 벌었는데, 그것으로 불상을 조성하고 싶어 한 화공을 찾아가 부탁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또 다른 가난한 사람이 와서 역시 금전 한 닢을 주면서 불상을 그려줄 것을 청하였다. 화공은 이에 두 사람의 돈을 받아 좋은 물감을 구하여 불상을 그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의 불상만을 그려서 두 사람에게 주었다. 이를 받아들고 의아해 하는 두 사람에게 화공이 말하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당신들은 이미 받아야 할 물건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만약 내 말에 거짓이 없다면, 앞으로 이 상에 반드시 신통한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화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상이 두 몸으로 나뉘어 서로의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었다. ‘대당서역기’는 두 사람이 화공의 말이 진실임을 깨닫고 환희심을 내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 간다라지역에서 발견된 2세기경 석조쌍신불보살상. 석가모니 부처님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양면성의 부각이란 면에서 분신서상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파격적인 도상의 특수성을 놓고 볼 때, 이 불상의 출현배경은 너무도 소박한 것이다. 그저 가난한 이들의 불상을 얻고자 하는 단순한 바람과, 이름 모를 화공이 그림을 그린 행위만 있을 뿐이다. 화공이 왜 하필 한 폭의 불상만 그렸는지 이유도 모르고, 그가 어떻게 불상에서 신통한 변화가 있을 것을 아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있다. 도상의 과도한 파격과 배경의 소박함을 고려하면, 이 불상이 하나의 신앙 대상으로서 폭넓게 확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돈황석굴에서 분신서상은 여타의 불상들과 함께 대표적인 서상의 하나로 자주 등장하였으며, 특히 231굴이나 237굴 등 주실 천정부에 서상도를 장식한 경우에는 대부분 중앙의 자리에 배치되어 이 불상이 여러 서상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중시되었음을 추정케 한다.

이처럼 기묘하고도 불완전한 형태의 불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고, 돈황에서 중시되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만약 이 문제를 도상 형식의 계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곧바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현재까지 발견된 고고학 자료를 볼 때, 이와 같은 형태의 불상의 가장 이른 예는 키질에서 발견된 7세기 무렵의 목판화이며, 이후 막고굴, 동천불동, 유림석굴 등의 돈황석굴과 고창, 카라호토(黑城) 등 대부분 중국의 서북부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당시에 비록 십일면관음보살이나 사비관음보살과 같은 밀교적 성격을 가진 도상이 이미 중국에 전파된 상태이지만, 보살도 아닌 여래의 몸을 이와 같이 파격적인 형태로 표현한 경우는 없었다.

비교할 만한 것은 간다라 지역에서 발견된 2세기경의 쌍신불보살상이다. 이 석조(石造) 불상은 하나의 신체에 여래의 얼굴과 보살의 얼굴이 서로 등진 채 연결되어 있어 역시 일종의 ‘쌍신불’로 조각되었다. 그러나 이 상의 경우 한 면은 여래로 다른 한 면은 보살로 표현하여 여래의 존재에 내재한 양면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면, 돈황의 분신서상은 이와 반대로 본래의 상과 파생된 상 사이의 동일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자 간에 명확한 차별성을 갖는다. 어쩌면 이 도상이 갖는 ‘동일성의 확장’이라는 관념이야말로 돈황석굴에서 분신서상이 중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왜냐하면 불상의 조성은 이러한 동일성의 확장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상을 통하여 불보살의 신앙적 원력의 확산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 막고굴 72굴 주실 천정부에 그려진 보주서상. 방제에서는 한 가난한 자가 보석을 보고 탐심을 내자 불상이 스스로 몸을 굽혀 보석을 가져가도록 하였다고 하여, ‘대당서역기’ 기록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돈황석굴에 묘사되는 많은 서상들은 저마다 특수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특별한 영험이나 기적을 나타냈던 불상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특수한 불상들은 분명 대중들에게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 신앙적 대상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들이 갖는 특수성에 치중하면 그 신성함의 근원이 상(像)이 아닌 불(佛)에 있음을 망각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분신서상은 그 출현배경이 갖는 소박한 서사구조를 통하여 그러한 특수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도상적 파격과 서사내용의 소박함을 전하는 중첩의 미학은 또 다른 서상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막고굴 72굴 주실 천정부의 서상도 중에 역시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불상이 있다. 통상적으로 여래를 표현한 불상은 정면을 바라봐야 할 것인데, 이 불입상은 정면을 향하지 않고, 우측에 그려진 한 인물을 향해 몸을 살짝 틀고 있으며 고개도 이 인물을 향해 살짝 수그린 상태로 왼팔을 뻗고 있다. 이 인물 역시 화답하듯 불상을 향해 오른팔을 치켜세우고 있다. 이 불상은 현장이 승가라국(지금의 스리랑카)에서 친견한 이른바 보주서상(寶珠瑞像)을 표현한 것이다.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한 정사에 금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한 도둑이 불상의 육계에 장식된 보석을 훔치려다 불상이 신통력을 부리는 바람에 실패하였다. 이에 도둑이 불상에게 보살행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푸념하자, 불상이 곧 스스로 고개를 숙여 보석을 전해주었다 한다.

어찌 보면 하나의 가벼운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을 서사배경을 가진 이 같은 서상들의 대두는 7세기 이래로 중국에서 밀교의 본격적인 도입과 더불어 가속화된 불교의 대중화의 결과이다. 그에 따라 전통적으로 불상들에 과도하게 부여된 종교적 권위를 걷어내고, 대중의 현실적인 요구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종교로 자리 잡으려는 당시 불교계의 여망의 발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중철 중국 사천대학 박사과정 ory88@qq.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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