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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유마거사와 한국불교

기자명 이제열

대승불교가 재가주의라는 사실 망각해서야

“그는 노름을 하는 데에 가더라도 그것으로써 사람들을 제도했다. 외도들의 주장을 포용하면서도 바른 믿음을 지키고, 세속의 학문에 밝으면서도 항상 불법에 근본을 두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았고, 정법으로써 어른과 아이들을 잘 섭수했다. 네거리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구제하였으며, 경서를 강론하여 대승법으로 인도했다. 매음굴과 술집에 드나들기는 했으나 그 뜻을 허물지는 아니했다.”

진정한 재가주의 불교란
출재가 함께 주인 되는 것
스님 중심 한국불교 풍토
재가 선지식 출현 어려워

이는 유마거사가 세상 속에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방편에 대해 설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마거사를 통해 어떤 삶이 올바르고 가치 있는 삶인지에 관한 기준과 함께 불교가 이 세상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답을 얻을 수 있다. ‘유마경’의 위대함은 불교가 세상과 중생을 떠나 별개로 존재 할 수 없다는데 있다. ‘유마경’은 분명 대승의 극치를 설하는 경전이다.

엄밀히 말해 대승은 출가 쪽에 치우친 불교가 아니다. 소승은 가르침의 대부분이 비구들을 향해 있다. 가령 대승의 시각에서 소승으로 취급하고 있는 초기 경전들을 보면 가르침의 중심이 거의 비구들에 맞추어져 있다. ‘비구들이여~’로 시작하는 형식으로 교리가 전개된다. 이에 반해 대승에서의 불교의 주체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바르게 닦는 모든 사람들에 해당한다. 대승은 출가와 재가 가운데에 어떤 한 쪽이 더 낫다거나 열등하다고 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바르게 발심하고 보살도를 실천한다면 그가 곧 불교의 주체가 된다.

대승의 모든 경전은 비구가 아닌 일반 불자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선남자 선여인이여~’라는 형식으로 가르침을 전개한다. 대승의 경전들을 접하다 보면 느끼는 터이지만 대승 속에는 출가를 권하거나 출가의 공덕을 강조하는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볼 때 대승불교는 출가주의 불교가 아닌 재가주의 불교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서 재가주의 불교란 출가 행위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 하더라도 모든 수행과 그 결과가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재가주의 불교란 재가신도와 출가한 스님이 모두 불교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불교는 대승사상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재가 중심의 불교를 외면 한 채 흘러왔다. 한국의 불교 현상을 보라. 모두가 출가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불교를 지탱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불교에서 재가자의 역할과 능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다소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한국불교는 ‘스님을 위한, 스님에 의한, 스님의 불교’에 가깝다. 스님들은 불교와 절은 우리들의 것이고 재가자들은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잠재적 의식을 짙게 깔려 있으며, 재가자는 스님들의 이러한 권위주의적 사고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다.

한국불교가 대승불교이고 대승불교는 ‘재가주의 불교’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1700년이 흘러온 것이다. 이런 한국불교 풍토에서 유마거사 같은 선지식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불교는 망해도 흥해도 스님들 것이라는 풍토 속에서는 재가의 선지식이 나오기 어렵다. 혹여 필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세상에 훌륭한 재가 선지식이 나오지 않는 것이 왜 스님들 탓이냐 반박할지 모르지만 앞서 지적한 풍토가 재가자의 능력과 역량을 막아왔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마경’은 한국 불교에 시사해 주는 바가 대단히 크다. 재가자가 바르게 보살도를 실천한다면 출가자 못지않게 세상을 위해 훨씬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며, 불법도 한층 더 넓게 펼 수가 있다. 꽉 막힌 한국불교의 흐름을 걷어 내고 새로운 불교를 창출하고자 한다면 단연 ‘유마경’이 최고의 경전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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