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행일기] 이경숙
[나의 신행일기] 이경숙
  • 법보신문
  • 승인 2017.04.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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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연화심
그냥 절에 다닌다는 사실이 무의미했다.

사찰만 오가는 일 무의미
부처님 법 배우고자 공부
수요일마다 미용봉사 다녀
포교사고시도 응시해 합격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다. 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신도전문과정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면서 항상 자비행을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잘하는 자비행인지 모르겠다. 후회하고, 다짐하고, 참회하고, 바로잡고, 수행하고…. 참 어렵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당황스럽다.

과감하게 자신을 고통 받는 사람 자리에 놓아봤을 때 만일 똑같은 고통을 받는다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겪게 될지 가능한 생생하게 상상해봤다. 자기 자신을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자리에 놓을 때 자신의 애착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른 존재로 옮겨갈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자리에 놓는 것은 자아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자유로워져 우리의 자비심이 유추되게 하는 매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을 위해 자비심이 일어나게 하는 또 다른 감동적인 기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가까운 친구를 또는 진정 사랑하는 친구를 바로 그 사람의 처지에 놓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마음이 열릴 것이고 자비심도 자신 안에서 일깨워질 수 있다. 자비행을 일으키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 존재는 똑같이 살과 뼈, 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피하려 한다. 더욱이 우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다. 만일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똑같다고 여긴다면 인간관계가 좀 더 원활해지고 여기에 새롭고 좀 더 풍부한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당신이 가장 강력한 적수인 자기에 대한 집착과 자기에 대해 눈 먼 사랑을 상대하는 것으로 자비행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대신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우리를 내어주는 자비행은 무아의 지혜와 손을 잡고서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잠시라도 헤매야 하는 낡은 자아에 대한 모든 집착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깨트린다. 이것이 우리 전통에서 자비행을 깨달음의 근본이자 본질로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말고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제 우리 마음에서 자비심이 흘러와 우리의 도움을 줄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단지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그 사람을 도구로 활용해 자비행을 일으킴으로써 우리는 커다란 공덕을 쌓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충분한 사랑이 없다고 생각할 때 그것을 발견하고 염원하는 방법이 있다. 마음속으로 거슬러 올라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 아마도 어린 시절에 받았던 사랑을 떠올려 형상화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린 어머니와 우리들에 대한 그녀의 오랜 헌신을 받으며 자라왔다. 나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듯이 내가 사랑받을 만하고 참으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남은 일은 그 사랑을 다시 나누는 것이다.

자비행이 널리 충만해진다고 부처님 가르침은 강조한다. 일체를 포용하고 어디도 쏠리지 않는 평온함이야말로 자비행의 출발이자 토대이다. 자비행을 일으킨 사람, 자비행이 일어나도록 이끈 사람 그리고 저 자비행이 그를 향해 일어나도록 한 사람의 자비는 곡해될 수 없다. 그것은 하늘에서 감로수가 내리는 것처럼 흘러내린다.

공부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 자비행을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체계적인 공부와 내 열정이 내 삶을 조금씩 능동적으로 만들고 있다.

매주 수요일이면 미용봉사를 나간다. 신도전문과정을 마치고 22기 포교사고시에도 응시해 합격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전문포교사도 고민 중이다. 결혼하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집착도 모두 내려놨다. 알게 모르게 쌓아온 업장 탓이리라.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행복을 가져오고, 나만 생각하는 마음이 모든 고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중생이 어느 한생에 나를 키운 어머니였다. 나와 모든 중생 위해 보살심을 일으키고 보살행을 하겠다. 자비를 실천하겠다. 나무관세음보살.

공동기획:조계종 포교원 디지털대학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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