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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친일승 강대련

기자명 이병두

조선불교로 사익 챙긴 친일파 거두

▲ 강대련은 이회광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최고의 친일승으로 꼽힌다.

‘조선 불교계의 큰 악마·관청과 도제를 속이고 사익만을 도모하는 악마’, 전 용주사 주지 강대련의 이름에 함께 붙는 수식어이다.

30년간 본산 주지 지내며 친일
국방헌금·친일 법요식 등 자청
일제에 “뼛속까지 친일” 읍소
젊은 승려들에 ‘명고축출’당해

실제로 ‘3·1혁명 운동’ 3년 뒤인 1922년 3월에는 각황사에서 젊은 승려 100여명이 일제에 부역하던 수구파 승려 대표 강대련의 친일 행각을 격렬하게 성토하며, 그에게 북을 치며 종로 거리를 걷게 하는 명고축출(鳴鼓逐出)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사건 주모자들은 실형을 선고받기까지 했지만, 강대련은 도리어 이 사건을 영광으로 여기고 스스로 ‘명고산인(鳴鼓山人)’이라는 별호를 지어 붙였다. 일제에 “나는 이 정도 일로 겁을 먹을 인물이 아니오. 내가 이처럼 철저하게 뼛속까지 친일(親日)이라는 사실을 알아주시오!”라며 자기 존재를 증명해 보이는 기회로 여겼으니, 그의 처세술이 이 정도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강대련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14세에 금강산에서 출가하여, 명진학교를 졸업한 후 원종(圓宗) 종무원 서무부장 등을 거쳐 30대 중반에 화성 용주사 주지가 되어 1942년 사망할 때까지 3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1915년에는 ‘30본산연합사무소’의 초대 위원장에 올라 불교계 실력자로 부상하였고, 여러 차례 위원장과 상치원(常置員) 등의 소임을 맡았다.

위 사진을 보면, 강대련은 코와 귀가 뚜렷하고 전체 인상도 ‘잘 생겼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나 얼핏 잘 생긴 것 같이 보이는 그의 얼굴에 이미 ‘뻔뻔함’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 승려들 중에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 많았던 데 비하여,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합격한 진사였고 더욱이 진주에서는 크게 행세하는 진주 강씨 후손이었다. 그러니 이용구처럼 신분 상승을 위하여 적극 친일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하긴 명고축출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3·1 혁명 운동’ 직후 ‘30본산연합사무소’ 위원장 자격으로 일제에 제출한 ‘조선불교기관 확장의견서’에는 “한국과 일본의 왕실·귀족 여성을 상대국의 승려와 결혼시키면 양국의 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들어 있을 정도였으니 그는 친일을 소신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죽을 때까지 ‘적극 친일’ 행보를 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친일파인 해인사 주지 이회광과 대립하는 모습은 이완용과 이용구가 친일의 최고 거두 자리를 놓고 갈등하던 것과 비슷하였으니, 모두 일제의 ‘장난(作亂)’에 놀아난 것이리라.

다른 친일파 승려들 중에는 임시정부에 몰래 군자금을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두 다리’를 걸치며 일제의 패망에 대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강대련은 철두철미 친일의 길을 걸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뒤 ‘일본군을 위한 법요식’을 지내거나 거액의 국방헌금을 헌납하는 행위 등은 일제의 요청에 마지못해 뒤따라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아니다”는 억지 주장을 펼 수 있는 작은 근거라도 남긴 다른 인사들과 달리, 그는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들어가는 데에 아무런 걸림돌(?)도 없었던 것이다.

출신 배경이 좋고 재주도 갖추었던 그가 ‘악마’의 길을 걸었던 것을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요즈음에도 이 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와 판검사·변호사를 지내며 ‘천재’ 평가를 받던 인물들이 국정 농단의 주역이 되어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던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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