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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재료 기행에서 진짜 사찰음식 만나다

  • 불서
  • 입력 2017.04.17 15:53
  • 수정 2017.04.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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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 박찬일 지음 / 불광출판사

▲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
‘먹방과 쿡방’. 요즘 텔레비전은 각종 음식을 만들고 먹는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마치 전 국민이 먹는 일에 경도돼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듯하다. 사는 것이 먹는 일과 무관하지 않으니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는 말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대부분 방송 프로그램이 폭식을 미식으로 알고 음식재료 희롱하는 것을 재주로 삼고 있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이유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음식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방송에서 자연과 생명을 나누는 식재료를 다루거나, 그 자연에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 국민들이 그저 폭식과 미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친화적 먹을거리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찰음식을 찾는다.

절집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며 손을 모은다. 내 앞에 음식이 놓이기까지 수고한 자연과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 음식으로 영양을 섭취하고 힘을 얻어 일을 성취하고 회향하는 것으로 밥값을 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사찰음식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찰음식은 절대 거창하지 않다. 일부에서 사찰음식을 특별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로 착각하지만, 실상 사찰음식의 기본은 자연이다. 요리사 박찬일이 사찰음식의 고수로 손꼽히는 스님들과 자연으로 음식기행을 다니면서 보고 들은 맛과 멋을 엮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에서 그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 박찬일은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손님과 대면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 기꺼이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요즘엔 오픈 주방이 생기고 손님과 소통하는 직업이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따라가면서도 요리계의 불문율을 깨고 자기만의 색을 찾는데 성공했다.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안 요리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스테이크로 만들고, 문어·고등어·미나리를 청담동 양식당 고급 탁자에 올렸다. 자연의 맛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사찰음식 고수인 스님들과 자연으로 음식기행을 떠났다. 잘 기른 것, 잘 자란 것, 마음이 있는 먹거리를 찾아 나선 길에서 사찰음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스님들을 만나면서 그 자연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열세명의 스님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세 번씩 바뀌는 동안 산과 들, 바다를 찾았던 저자는 그 시간동안 “냉이는 추운 겨울이 없으면 달고 깊은 향을 내지 못하며, 미나리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 없이 향을 세포 안에 축적할 수 없고, 고사리는 딱 며칠간의 따스한 봄날에만 여린 싹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며,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1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옥수수도 맛이 있어야지요. 오늘 좋은 옥수수를 공양했습니다. 사찰음식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채집하고 수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을 보니 참 좋습니다.’ 옥수수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구휼의 역사를 가진 작물인 것이다. 나눠준다는 것, 그것이 보시의 마음이며 부처님 아닌가.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옥수수를 보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저자와 열세명의 스님들은 기행을 하는 동안 농부들이 기꺼이 내준 그들의 땅에서 바로 거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었다. 스님들은 여정 내내 “맛은 재료의 힘이야. 기술이 다 무엇이야. 허명이지, 잘 기른 것, 잘 자란 것, 마음이 있는 것을 찾아서 써야 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 23개가 실렸음에도 조리법이 간결한 이유다.

스님들과 함께 찾는 곳에서 농부들과 나눈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느낀 감동이 버무려진 책의 행간에서 음식 맛의 근본과 기본을 만날 수 있다. 책장을 펴고 저자와 함께 음식기행에 동행하면서 이타심, 생명존중, 삶의 태도를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행복이다. 1만6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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