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쾌락의 대상으로 삼는 방송에서 자연과 생명을 나누는 식재료를 다루거나, 그 자연에 감사하고 사람에게 감사하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반 국민들이 그저 폭식과 미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자연친화적 먹을거리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찰음식을 찾는다.
절집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라며 손을 모은다. 내 앞에 음식이 놓이기까지 수고한 자연과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동시에, 그 음식으로 영양을 섭취하고 힘을 얻어 일을 성취하고 회향하는 것으로 밥값을 하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사찰음식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찰음식은 절대 거창하지 않다. 일부에서 사찰음식을 특별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고급 요리로 착각하지만, 실상 사찰음식의 기본은 자연이다. 요리사 박찬일이 사찰음식의 고수로 손꼽히는 스님들과 자연으로 음식기행을 다니면서 보고 들은 맛과 멋을 엮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에서 그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 박찬일은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손님과 대면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 기꺼이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요즘엔 오픈 주방이 생기고 손님과 소통하는 직업이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따라가면서도 요리계의 불문율을 깨고 자기만의 색을 찾는데 성공했다. 한국식 재료로 이탈리안 요리를 만들고, 돼지고기를 스테이크로 만들고, 문어·고등어·미나리를 청담동 양식당 고급 탁자에 올렸다. 자연의 맛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스님들을 만나면서 그 자연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열세명의 스님들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세 번씩 바뀌는 동안 산과 들, 바다를 찾았던 저자는 그 시간동안 “냉이는 추운 겨울이 없으면 달고 깊은 향을 내지 못하며, 미나리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 없이 향을 세포 안에 축적할 수 없고, 고사리는 딱 며칠간의 따스한 봄날에만 여린 싹을 우리에게 허락한다. 미역에 제 맛이 드는 것은 시린 바람과 바닷물의 깨질 듯한 수온을 견뎌낸 선물이며, 콩나물이 숨소리를 쌕쌕거리며 1주일을 버텨야 비로소 비리지 않고 고소한 맛을 준다는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상식”이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옥수수도 맛이 있어야지요. 오늘 좋은 옥수수를 공양했습니다. 사찰음식이 저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채집하고 수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현장을 보니 참 좋습니다.’ 옥수수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구휼의 역사를 가진 작물인 것이다. 나눠준다는 것, 그것이 보시의 마음이며 부처님 아닌가.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의 옥수수를 보는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들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저자와 열세명의 스님들은 기행을 하는 동안 농부들이 기꺼이 내준 그들의 땅에서 바로 거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었다. 스님들은 여정 내내 “맛은 재료의 힘이야. 기술이 다 무엇이야. 허명이지, 잘 기른 것, 잘 자란 것, 마음이 있는 것을 찾아서 써야 해”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계절 사찰음식 레시피 23개가 실렸음에도 조리법이 간결한 이유다.
스님들과 함께 찾는 곳에서 농부들과 나눈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느낀 감동이 버무려진 책의 행간에서 음식 맛의 근본과 기본을 만날 수 있다. 책장을 펴고 저자와 함께 음식기행에 동행하면서 이타심, 생명존중, 삶의 태도를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행복이다. 1만6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