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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상

중앙집권·지방분권이라는 두 나라 특성 불교에 고스란히 반영

▲ 일본 나라시 동대사 대불. 높이는 16m. 한반도 출신들이 제작 총책임을 맡았다.

인도의 대승불교를 발전시켜 성립된 중국의 독자적인 일승불교는 한역대장경의 전파와 함께 동아시아 전지역에 유포되어 동아시아 불교의 원류가 되었다. 그 결과 중국 주변 여러 나라의 불교는 대체적으로 중국불교의 발전과정에서 거치는 단계를 거의 그대로 따르면서 공통적인 성격을 나타내게 되었다. 동아시아 불교권의 공통적인 특성으로는 한역대장경과 대승불교, 그리고 국가불교 등이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각 나라와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불교내용과 성격에서는 다른 점이 없지 않다.

동아시아 공통적인 현상으로
한역경전·대승·국가불교 특성

한국불교는 회통불교 성격
일본은 종파의 독립성 강해

한국은 참선·간경·염불 수행
일본은 한가지 요소만 선택

유교 숭상 조선의 억불정책
산속 밀리며 국가주의 약화

성·속 일원화 경향 강화되며
대처식육 등 일본불교 세속화

토속종교와 불교의 습합현상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나타나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중국불교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전개된 것은 한국불교였다. 한국불교는 대체적으로 중국불교의 발전단계를 따라가면서 상호영향을 미치기도 함으로써 동아시아 불교로서의 보편성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에 비하여 일본불교는 처음에는 한국불교, 뒤에는 중국불교를 받아들여 발전하여 갔으면서도 시대를 내려가면서 점차 다른 길을 가게 되어 특수성을 강하게 나타냈다. 따라서 동아시아 불교권의 대표적인 불교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불교를 비교하여 보는 작업은 동아시아의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는 기초적인 작업으로서의 의의를 가질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와 일본불교 각각의 특성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도 유익할 것으로 본다.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특색을 개략적으로 비교하여 보면, 먼저 한국불교의 특징으로는 일반적으로 회통불교(會通佛敎)·호국불교(護國佛敎)·무불습합(巫佛褶合) 등 3가지가 지적되고 있으며, 다음 일본불교의 특색으로서는 진호국가(鎭護國家)·일대승교(一大乘敎)·원돈삼학(圓頓三學)·진속일관(眞俗一貫)·즉신성불(卽身成佛)·본지수적(本地垂迹) 등 6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17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불교와, 150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불교의 특성을 비교함에 있어서 시대에 따른 변화를 무시하고 ‘한국불교’, ‘일본불교’라고 일괄하여 단일의 실체로서 규정하고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한 점이 없지 않다. 또한 다른 불교권에는 두 나라 불교의 특성으로서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경향이 없었다고 단정하기에도 주저되는 점이 없지 않다. 특히 위에 열거한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특성에서 서로 중복되거나 유사한 내용도 없지 않기 때문에 직접 비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와 일본불교를 상호 비교하는 데 일정한 논점을 제공하는 것으로서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먼저 한국불교의 회통성에 대해서 살펴보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중국에서 성립되는 각 학파와 종파의 불교(삼론종·성실종·섭론종·지론종·계율종·열반종·법상종·화엄종 등)를 받아들여 전체 불교사상에 대한 이해체계를 수립하여 원효(元曉)의 불교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사상적인 면에서의 통합불교(統合佛敎)를 성립시켰다. 신라말기 선종이 수입된 이후 고려시대에는 오교구산, 오교양종이라고 하여 다소간 종파의 분립은 있었으나, 지눌(知訥)에 의해서 교학불교인 교종과 실천불교인 선종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여 조계종 중심으로의 사상적인 선교통합(禪敎統合)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말기 사회혼란에 상응하여 불교종단이 11개의 종파로 분열된 적이 있었으나, 조선초기 억불시책에 따라 7종으로 통합되고, 7종은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되었으며, 조선후기에는 마침내 선종(임제종의 간화선)으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선종은 순수한 참선만을 추구하는 불교가 아니라 그 안에 참선·간경·염불의 요소가 종합된 것[三門修業]이었으며, 이러한 통합불교적인 경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불교는 한국불교에 비하여 종파의 분립성이 강하여 나라(奈良)시대에 성립된 남도6종(南都六宗: 법상종·삼론종·구사종·성실종·화엄종·율종), 헤이안(平安)시대의 2종(二宗 : 천태종·진언종), 가마쿠라(鎌倉)시대의 신불교(新佛敎: 정토계의 정토종·정토진종·시종, 법화계의 일련종, 선종계의 임제종·조동종) 등을 비롯한 수많은 종파들이 이어져왔다. 이들 종파들은 각각 시대를 달리하여 다양하게 성립되어 각기 지속되면서 쌓여 왔다. 그리고 다시 각 종파 안에서 더욱 분열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파벌이 난립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40년 일본정부는 전시총동원체제를 구축하면서 종교단체법을 제정하여 1종조(宗祖) 1파(派)를 목표로 불교종파들을 강제적으로 통합시켰는데, 그 결과 유지된 종파의 수효만도 천태종 3파, 진언종 8파, 정토종 서산(西山)파 3파, 임제종 13파, 일련종 3파, 법화종 3파, 본화정종(本化正宗) 2파가 각각 1파로 통합되어 전체 13종 28파가 되었다.

물론 일본불교에서도 각 종파 사이에 ‘팔종겸학(八宗兼學)’ ‘일체경의 열독(一切經의 閱讀)’이라는 말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불교의 총체적 파악을 추구하는 시도가 전연 없지는 않았으며, 그러한 취지의 저술들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향은 ‘전수염불(專修念佛)’ ‘선택(選擇)’ ‘제목(題目)’ ‘지관타좌(只管打坐)’ 등의 말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종파마다 각각 특정의 요소만을 선택하여 염불(念佛)이면 염불만을, 참선(參禪)이면 참선만을, ‘법화경(法華經)’이면 ‘법화경’, 특히 그 제목만을 전념하는 대신 여타의 다른 요소는 완전히 배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본불교의 이러한 종파적 경향은 한국불교의 회통적인 성격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인데, 한국의 중앙집권적인 사회와 중앙집중적인 문화(통일성의 문화), 일본의 지방분권적인 사회와 분산적인 문화(다양성의 문화)로서 대비되는 일반적인 사회와 문화의 경향 차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서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으로 한국불교의 호국적인 성격과 일본불교의 진호국가설은 불교의 국가주의적 성향을 나타내 주는 표현으로써 두 나라 불교의 공통적인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일본불교가 국가주의적인 성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근대 메이지(明治)시대에는 그 절정을 이루어 호국(護法)과 호법(護國)의 일치를 주장(때로는 서양의 기독교를 막아야 한다는 방사(防邪)를 추가하여 삼위일체를 주장하기도 함)하는 국가주의적 불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한국불교의 경우는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중국불교의 왕즉불사상과 전륜성왕이념을 받아들여 왕권 강화에 크게 기여한 바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교단체제가 지배체제의 일부로서 관료체제와 함께 이원적 구조를 이루어 국가의 정치 운영에 참가하는 등 불교가 정치와 유착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5세기 조선시대 이후 유교가 지배이념으로 채택됨으로써 불교교단은 공적 성격을 상실하고 사적 집단화되었으며, 정치권력의 억압을 받아 산속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국가주의적 성격은 현저하게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주의적 불교의 성격과 직접 맞물려 그 기반을 제공한 문제로서 현실주의적 경향을 들 수 있다. 불교의 현실주의적 경향은 원래 중국불교에서 유래한 것이었고, 한국과 일본 불교의 공통 현상이었다. 그러나 세 나라 가운데 일본불교 측이 상대적으로 더욱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불교가 인도불교에 비하여 현실중시의 경향으로 바뀐 것이었지만, 일본불교는 현실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더욱 현세주의적 경향이 강화된 것이었다. 앞서 일본불교의 특색으로 열거한 6가지 가운데 일대승교·원돈삼학·진속일관·즉신성불 등의 항목은 모두 일본불교의 현세주의적 성향을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즉 일본불교는 헤이안시대부터 세속성(世俗性)에 가치를 더 두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는 일상성 가운데서 불교의 궁극적인 가치의 실현을 의도하는 경향, 성(聖)과 속(俗)의 일원화의 경향, 중생의 몸 그대로 곧바로 부처가 된다고 하는 즉신성불의 주장 등을 들 수 있다. 더욱이 메이지시기 승려의 대처식육축발(帶妻食肉蓄髮)이 공인됨으로써 불교의 세속화가 가속화되어 출가와 재가 생활이 구분되지 않고, 세속의 혈통(血統)과 교단의 법통(法統)이 일치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현세적 성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토속종교와 불교의 습합 경향은 한국불교와 일본불교 모두에서 나타내고 있는데, 불(佛)·보살(菩薩)과 토속신(土俗神)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위치 지우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무불습합, 일본불교에서는 신불습합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서는 신불습합의 논리적 근거로서 불국토설(佛國土說)을 제창하여 원래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불교의 경우에는 신불습합의 논리적 근거로서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을 강조함으로써 불·보살과 토속신들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본지수적설은 불·보살(本地)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거짓 모습(迹)으로 바꾸어 나타나는(垂) 것이라는 의미인데, 원래 ‘법화경’의 ‘수량품’ 본문(本門)·적문설(迹門說)에 근거하지만, 또한 ‘대일경(大日經)’의 본지신(本地身)·가지신(加持身)의 설과도 관계가 있다.

이 본지수적설은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에서도 일찍이 제기되었던 문제이었지만, 일본불교에서 특히 의미가 크게 부각되었다. 중국불교나 한국불교의 본지수적설에 있어서는 본지(本地)인 부처나 보살의 위치가 당연히 수적(垂迹)인 신들보다 상위에 설정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본불교에서도 초기에는 본지가 수적보다 상위에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현상적인 일체의 존재를 그대로 긍정하는 일본불교의 본각문(本覺門) 입장에서는 현상계에 출현하는 신 쪽이 오히려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내 주는 방향으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일본 사찰에는 한국의 사찰에서보다 토속적인 신들이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불교의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것으로서 일본 사찰에서는 일본의 토속신과 함께 일본불교 종파의 개조인 조사(祖師)가 부처나 보살보다 더 중시되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교토의 동(東)·서(西) 혼간지(本願寺)에서는 정토진종의 개조인 신란(親鸞)을 모시는 조사당(祖師堂)이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불전보다 더 크고, 그리고 사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사찰에서도 토속신을 모시는 칠성각이나 산신각, 그리고 한국의 역대 조사를 모시는 조사당이 설치되고 있었으나, 부처나 보살을 모시는 불전에 비하여 크기나 위치에서 부속적인 차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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