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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 김정빈의 일화로 보는 불교
15. 풍환의 당연히 그러한 법“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지”
김정빈 교수  |  jeongbin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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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8  1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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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육순호

전영(田嬰)은 제위왕(齊威王)의 아들이다. 그는 장군이 되어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고, 그 공적으로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며 설(薛)이라는 땅을 하사받았다. 그에게는 첩에서 난 문(文)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전영은 문의 어미에게 아들을 키우지 말라고 말했지만 첩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선비들 영지 머물게 한 맹상군
자리 빼앗기자 선비들 떠나가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
권세에 따라 오고 간 것일 뿐


문이 장성하자 그녀는 문을 아비에게 보였고, 전영은 진노하여 첩을 힐책했다. 옆자리에 있던 문이 아비에게 자신을 키우지 말게 한 까닭을 묻자 전영이 대답했다. “5월에 태어난 아기는 키가 문설주 높이 만큼 자라면 아비에게 이롭지 않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문이 되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명을 하늘에서 받습니까, 문설주에서 받습니까?” 문이 다시 말했다. “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군께서 근심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명을 문설주에서 받는다고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문설주를 계속 높여 올린다면 어느 누가 키로 그 높이를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 후에 문은 아버지에게 재산을 풀어 가난한 선비들을 널리 초청해 대접할 것을 제안했고, 전영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빈객이 날로 모여들어 전영의 명성이 제후들에게 알려졌다. 제후들이 전영에게 문에게 대를 잇도록 하라고 권하자 전영이 허락했다. 전영이 죽고 나서 문이 설의 영주가 되니 그가 맹상군(孟嘗君)이다.

맹상군은 천하의 선비들을 널리 초청하여 자기 영지에 머물게 했다. 그의 영지로 들어온 가구 수는 6만이 넘었고, 총 유입 인구는 3천에 이르렀다. 그는 모든 선비를 똑같이 예우했으며, 그들 중 재능이 있는 사람을 관직에 추천하거나 자기가 기용했다.

수많은 인재를 가진 그를 진나라가 재상으로 삼고자 했으나 주변의 반대 때문에 포기했다. 그것을 안 제나라는 그를 다른 나라에 빼앗길까 두려워 재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몇 년 뒤, 그는 제왕에 의해 재상 자리와 봉읍을 잃었다.

3천 명의 식객들이 언제 은혜를 입었더냐는 듯 맹상군에게서 떠났다. 그의 곁에 남은 사람은 풍환(馮驩) 한 사람뿐이었다. 풍환은 진나라에 들어가 맹상군을 등용하기를 권했고 진왕이 허락했다.

풍환은 제나라로 돌아와 제왕에게 맹상군이 진나라 재상으로 등용되는 것이 나을지 제나라에서 다시 등용하는 것이 나을지를 저울질해보라고 말했다. 제왕이 사람을 보내 국경을 살피니 진나라에서 파견된 사자가 맹상군을 데려가기 위해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제왕이 맹상군에게 재상 자리와 봉읍을 회복시켜 주었다.

다시 선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선비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맹상군이 탄식하며 풍환에게 말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나를 떠나던 그들이 돌아온다고 하는구려. 그들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보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 욕보이고자 합니다.”

풍환이 말에서 내려 맹상군에게 절했다. 답례한 다음 맹상군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그들을 대신하여 저에게 사죄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군께서 크게 잘못 생각하시는 것이 있어서 감히 지적드리려고 절을 올린 것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군께서는 ‘당연히 그러한 법칙’을 아십니까?”
“제가 배움이 적어 모르니 가르쳐 주십시오.”

“군께서는 아침에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셨겠지요.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시장을 향해 벌떼처럼 달려갑니다. 그러나 시장이 파한 저녁때에는 시장 쪽으로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시장에는 이익에 부합하는 물건이 있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시장을 향해 가거나 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 현상의 배후에 ‘당연히 그러한 법칙’이 있습니다.
군께서 권세를 가졌을 때 빈객들이 밀물처럼 몰려왔고, 군께서 권세를 잃자 빈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권세를 가졌을 때 군은 아침 시장이었고, 권세를 잃었을 때 군은 저녁 시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인심의 당연한 법칙에 따라 오고간 것일 뿐입니다.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군께서는 당연한 법칙과 다투고 계십니다. 이것은 현명한 사람의 태도가 아닙니다. 저는 군께서 이 점을 잘 헤아리시어 빈객들을 웃으며 맞으시기를 기대합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다시 절한 다음 말했다.

“말씀을 듣고 저의 두 눈이 환해졌습니다. 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제가 비록 어리석습니다만 선생의 극진한 말씀을 어찌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필자는 종교를 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교(神敎)와 법칙을 중심으로 하는 법교(法敎)로 분별한다. 유태교·기독교·이슬람교는 신교에 속하고, 불교는 법교를 대표한다.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천도교와 증산교는 신교로 볼 수 있고, 동서양의 철학은 넓은 의미의 법교로 볼 수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을 신교는 신으로 보고, 법교는 법(法)으로 본다. 법은 법칙을 의미하는 산스크트어 다르마(Dharma), 빨리어 담마(Dharmma)의 번역어이다. 신과 법의 다른 점은 신이 인격체인데 비해 법은 비인격적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교와 법교를 오가며 산다. 놀라운 일을 당하면 영미권 사람들은 “오 마이 갓(Oh, my God)!”을 외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쿠, 하느님!”하며 충격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그들은 엉겹결에 신교 신자가 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대개 덜 충격적인 수준에서 일어난다. 놀라운 일이 아닌 평명한 수준에서 ‘법’을 말할 때가 있다. 잘못을 지지른 사람을 타이르며 “사람이 그런 ‘법’이 아니지.”라고 말하는 경우가 그중 하나이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지.”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자연과학에 의해 자연의 법칙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불교에 의해 마음의 법이 잘 밝혀져 있다. 마음의 법 중 가장 심오한 열반에 관해서는 부처님만이  밝혀놓으신 바이지만, 중간 이하의 법 중에는 불교 밖에서 밝혀진 것들도 많다.

풍환은 그 법 중 하나를 보아냈고, 맹상군은 풍환의 말을 듣고 그 법을 따랐다. 내가 멋진 불제자라는 것은 풍환 같은 눈으로 인심의 법을 보아낼 줄 안다는 것이고, 맹상군 같은 귀로 그것을 들어 따른다는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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