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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행복과 불행

기자명 조정육

온가족 비극적 죽음서 건진 위대한 깨달음

▲ 이광택, ‘추억 속의 봄날 저녁’, oil on canvas, 31x41cm, 2016 : 꽃 피고 새 우는 봄밤이었다. 하루 일을 끝마친 땅 위로 조각달이 내려와 속삭이던 밤이었다. 외양간의 송아지도, 마당의 강아지도, 병아리를 불러 모은 장닭과 어미닭도 고요한 평화 속에 몸을 누일 밤이었다. 아버지는 백열등 아래서 책을 읽고, 이불 속의 세 자매는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밤이었다. 부디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행복은 행복을 줄까? 불행은 불행만 줄까? 얼마 전에 노비구니스님을 만났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바라본 스님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저렇게 고운 사람이 무슨 계기가 있어 출가를 결심했을까 궁금했다. 꼭 무슨 사연이 있어야 출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로병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는 출가하려는 마음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님의 얼굴은 맑아 보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란 사람 같았다. 그런데 스님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출가 동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남편·자식 하룻밤 새 잃고
친정식구마저 폭우에 사망
넋이 나간 채 손가락질 받다
법 듣고 출가해 깨달음 얻어

그녀는 부잣집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집안에는 수십 명의 일꾼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부러울 것 없이 살던 그녀에게 비극이 시작된 것은 결혼할 때가 되어서였다. 부모는 그녀를 비슷한 집안의 자식에게 시집보낼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하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부모가 그들의 결혼을 찬성할 리 없었다. 결국 그녀는 현금과 패물을 챙겨 하인의 손을 잡고 몰래 집을 나왔다. 두 사람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이름을 숨기고 살림을 차렸고 곧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주처럼 자라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보지 못한 여자와 혈혈단신 고아로 자란 남자의 결합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생활고에 지친 그녀는 남편에게 친정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주인의 분노가 두려웠던 남편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더 이상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예감하고 혼자 집을 나왔다. 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 내려온 남편은 아내가 남긴 쪽지를 보고 그녀를 뒤따라갔다. 그는 오래지 않아 산통으로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그녀를 집에 데려왔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세월이 흘렀다. 두 번째 아이의 출산일이 다가왔다. 그녀는 또 다시 친정행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남편과 아이도 함께였다. 워낙 깊은 산골에 들어와 살다 보니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느린 걸음으로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 번개가 치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두막집 한 채 없는 산길에서 산통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남편은 비라도 피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왔다. 그가 좀 더 많은 나뭇가지를 꺾기 위해 풀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을 때 왼쪽 다리가 가시에 찔린 듯 아팠다. 그는 풀숲에 숨어 있던 독사에게 물려 그 자리에서 죽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내는 빗속에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날이 밝자 그녀는 해산한 몸을 일으켜 남편을 찾아 나섰다. 머지않아 시퍼렇게 변한 남편의 시체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위대하다고 했던가. 남편의 시체 앞에서 한참을 통곡하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들은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일으켰다. 밤새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던지 길은 끊어지고 그 위로 깊은 강물이 흘렀다. 강물을 건너야 친정으로 갈 수 있었다. 이제 막 출산을 끝낸 그녀로서는 힘이 부쳐 두 아이와 함께 강 건너편으로 건널 수가 없었다. 그녀는 큰 아이를 언덕 위에 남겨두고 핏덩어리를 먼저 강 건너편으로 데리고 간 다음 나뭇단을 펴고 옷으로 잘 싼 다음 눕혔다. 큰 아이를 데리러 다시 강을 건너던 그녀는 갓난아기가 걱정되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강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매 한 마리가 갓난아기를 향해 하강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매는 갓난아기를 고깃덩어리로 생각하고 먹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매를 쫓기 위해 양손을 쳐들고 쉬쉬거리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녀는 갓난아기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매는 아랑곳하지 않고 갓난아기를 낚아채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녀는 두 팔을 휘저으며 더욱 큰 소리로 매를 쫓았다. 언덕 위에 있던 큰 아이는 엄마가 두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을 보고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큰 아이는 엄마가 어떻게 손 써볼 겨를도 없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남편과 두 아이를 전부 잃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그녀가 어찌어찌하여 겨우 친정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집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사정을 물어보니 어젯밤 폭우에 집이 무너져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가 목숨을 잃어 자신이 지금 그들을 화장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남편과 두 아이를 잃은 것도 모자라 친정 부모와 오빠까지 잃은 그녀는 넋이 나가 옷이 벗겨지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맨몸으로 돌아다니며 통곡하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 여자라 손가락질하며 쓰레기나 돌멩이를 던졌다. 그녀가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녀의 삶은 미친 여자로 끝났을 것이다.

그렇다. 이 얘기는 내가 만난 비구니스님 얘기가 아니라 ‘테리가타’에 나온 내용을 조금 각색한 것이다. ‘장로니게경’이라 불리는 ‘테리가타’는 초기불교시대 비구 260명의 오도송 552수를 묶어놓은 경전으로 전재성 박사가 역주를 맡았다. 비구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행정진을 포기하지 않고 해탈에 이른 비구니들의 얘기는 숭고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도 빠따짜라 장로니가 겪은 삶의 고초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비극을 압축해서 혼자 겪은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부처님은 설법을 하러 다니시다 그녀를 발견하고 궁극적인 앎이 성숙한 것을 아셨다. 부처님은 사람들이 그녀가 부처님께 다가가는 것을 막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부처님 앞에 서자 비로소 자신이 발가벗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누군가 던져준 옷을 입었다.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그녀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니 하소연했다. 부처님께서는 그녀의 슬픔에 깊이 공감해주셨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를 겪으면서 죽음 때문에 흘린 눈물은 사대양의 바다보다도 많다’고 설법을 시작하셨다. 계속 이어진 설법을 듣고 난 그녀는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 출가를 요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룩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부처님께서 어떤 설법을 하셨기에 그녀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을까.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직접 책을 사서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과 불행 모두 나 자신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빠따짜라 장로니의 불행한 과거 얘기만 잔뜩 늘어놓고 정작 중요한 해법은 생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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