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12.12 화 18:26
> 연재 | 정운 스님의 전심법요
14. 오직 구하지만 말라한 생각도 무심히 받아들여야
정운 스님  |  saribull@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4.18  13:26:5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원문:오직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라는 것을 몰록 요달해야 하는 것이요, 한 법도 얻을 것이 없고, 한 가지 행도 행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무상도이며, 이를 진여불이라고 한다.

8만4천 법문 존재하는 것은
중생번뇌 따라 법문한 때문
관념·아만 없는 경지가 부처
집착 없는 법 배워야 깨달음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만 일념이 일어나는 것조차 두려워해야 한다. 일념이라도 일어나면 도와는 멀어진다. 념념에 상(相)이 없어야 하고, 념념에 무위(無爲)여야 부처라고 할 수 있다. 수행자가 성불코자 한다면, 불법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하지 않고,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구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이요,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이 멸할 것도 없다. 불생불멸이 곧 이 부처이다. 8만4천 법문은 8만4천 번뇌에 대치하는 것이니, 다만 이는 교화해 이끌기 위한 방편이다. 본래 일체법도 없다. 여윈즉 법이요, 여윔을 아는 즉 바로 부처이다. 다만 일체번뇌를 여의면 어떤 한 법도 얻을 필요가 없다.  

해설:원문에서 ‘수행자가 성불코자 한다면, 불법에서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하지 않고, 조금도 집착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구절은 황벽이 어록에서 몇 번이고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다. ‘유마경’에서 “무주(無住)의 근원에서 일체법을 일으킨다”라고 하였다. 곧 어떤 작용이 일어나도 작용이 일어나는 본 근원지에서 집착하지 않고, 무심히 작용하게 하라는 것이다. 또 이어서 ‘유마경’에서는 ‘법(法)을 구하는 사람은 일체법에 무언가 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곧 중생에게 참된 성품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굳이 밖에서 무언가를 구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유마경’은 선경(禪經)이라고 할 만큼 선사들이 가장 많이 애독하는 경전이다. 임제의현(?~866)은 ‘구하는 마음이 없는 평온한 경지’를 무사(無事)라고 하였다.

이탈리아 로마 제정 시대의 철학자 에픽테투스(55~135년경)의 시 구절에도 임제의 선사상과 유사한 내용이 있다.

“모든 일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 들여라. 그리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리하면 그때그때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고난이나 역경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인간이 삿된 욕망을 일으킴으로서 문제가 발단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곧 삶에서 내면의 평화를 지속하기만 하면 행복은 그 자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행할 때는 특히 그 일어나는 생각조차 무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억지로 구하려 하지 말며[無求], 청정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無住心]. 

원문에서 ‘8만4천 법문이 8만4천 번뇌에 대치하는 것’이라는 부분을 보자. 불교는 수많은 경전이 전해지고 있다. 흔히 8만4천 법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생들의 번뇌 숫자와도 일치한다. 곧 중생의 번뇌가 8만4천 가지이므로 법문 또한 그에 상응함을 상징한다. 부처님께서 각각 중생들의 병[번뇌]에 응해서 약[진리]을 주었다는 것인데, 중생에게 병이 없으면 굳이 부처님이 약을 줄 필요도 없다. 즉 참된 성품 자리에 굳이 한 법도 덧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원문의 ‘여윈즉 법이요, 여윔을 아는 즉 바로 부처이다’는 ‘금강경’의 설과 동일하다. 14품 제목도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이며, 경에서는 ‘일체의 모든 상을 여윈즉 곧 제불이다[離一切諸相 則名諸佛]’라고 하였다. 관념ㆍ아만심이 없는 경지가 바로 부처의 경지요, 해탈적멸상의 경지요, 실상의 경지이다. 이렇게 대승 반야부 경전에서 강조하는 무상법문이 중국 선사상에 그대로 녹여져 있다. 그런데 어찌 아만심이나 관념이 쉽게 녹여지겠는가? 수행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간절함만큼은 늘 염두에 두자.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라인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구독신청 : 02-725-7010  |  광고문의 : 02-725-7013  |  편집국 : 02-725-7014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등록일자 : 2005년 11월 29일  |  제호 : 법보신문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