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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마거사 생활 방식

기자명 이제열

세속에서 살지만 온갖 욕망서 완전히 벗어나

“유마힐은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비야리에 살고 있었다. 흰옷을 입은 거사이지만 스님처럼 청정한 계율을 받들어 지녔고, 세속에서 살지만 삼계에 애착하지 않았으며 처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항상 범행(梵行)을 닦았으며, 음식을 먹더라도 선정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흰옷은 재가신자 신분 상징
선정 기쁨을 음식 삼아 살아
가족과 가정 지니고 있지만
깨끗한 삶 통해 범행 닦아

유마거사는 불교에서 지향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상이다. 그는 세속적으로나 출세간적으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세속적으로는 재산·명예·지식·외모 등에 부족함이 없고 출세간적으로는 부처님 같은 경지에 올라 중생을 제도한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일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는 일이다. 유마거사가 흰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재가신자의 신분임을 말해준다. 부처님 당시부터 재가신자들은 흰옷을 입고 부처님이 계신 정사에 가거나 예배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흰옷은 청정을 상징하는 옷으로 믿음과 행이 더러움이 없음을 의미하는 표식이다.

유마거사는 재가신자의 신분이면서도 출가자와 같은 범행을 닦았다. 그가 사는 곳은 세속이다.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가정에 집착하지 않았다. 몸은 그들 속에 있더라도 마음은 늘 멀리 떨어져 있다. 범행은 ‘깨끗한 삶’으로 일체의 악한 행위와 더러운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하고 복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출가한 스님들이 계율을 호지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을 범행이라 한다. 특히 범행은 음행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유마거사는 일체의 감각적 쾌락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아내에게조차도 음행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음식을 먹지만 선정의 힘으로 살아간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중생은 네 가지 자양분을 섭취해서 살아간다. 단식(段食), 촉식(觸食), 사식(思食), 식식(識食)이다. 먼저 단식은 중생이 먹는 밥이나 반찬 등 물질을 말하고, 촉식은 눈·귀·코·혀 등으로부터 일어나는 접촉을 말한다. 사식은 이렇게 해야 하겠다, 저렇게 해야 하겠다 등 의도를 말하고, 식식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분별 등을 말한다. 중생은 물질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접촉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의도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고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중생은 이러한 4가지 자양분에 의존해 오온이 유지되고 번성한다.

그런데 유마거사는 보통 중생들이 섭취하는 이 4가지 자양분 말고 다른 자양분을 섭취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선열식(禪悅食)이다. 선열식은 선정의 기쁨을 음식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4가지 자양분에 의존해 몸과 마음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 같지만 진실에 있어서는 선열식으로 음식을 삼아 세상을 살아간다. 앞의 4가지 자양분은 중생들이 섭취하는 음식 아닌 음식들이고, 선열식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섭취하는 음식 아닌 음식이다. 중생들이 의존하는 4가지 자양분은 중생들의 번뇌를 늘이고 고통을 만들어내는 음식인 반면 선열식은 반대로 중생들의 번뇌를 다스려 고통을 소멸시킨다. 중생의 사식(四食)은 선열식에 의해 청정해지는 것이다. 유마거사가 세속을 벗어나 출세간의 경지에 이른 것도 선열식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권선징악이나 가르치고 인간의 처세술이나 가르치는 종교쯤으로 알고 있다. 법을 설하는 스님들 가운데에도 ‘불교는 제 역할 잘하는 것이 불교’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남편은 남편 노릇 잘하고, 아내는 아내 노릇 잘하며, 학생은 학생 노릇 잘하는 것이 불교를 실천하는 것으로 불교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는 그 이상의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8호 / 2017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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