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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탈북이주민의 애타는 사모곡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사흘 만에 비자를 받아 중국으로 갔어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얼굴만 봤지요. 멀리서 보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몰라볼 만큼 초췌 하셨어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기자를 붙잡고 이런 말을 할까. 몇 해 전 취재차 기자와 인연 맺은 한 탈북 이주민의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나간 자리. 오랜 만에 마주한 그는 담담하게 그간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딸이 탈북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에 남은 어머니는 산골 오지로 추방당했다. 추방당하기 전 취조를 받는 과정에서 치아가 모두 빠졌다고 했다. 딸은 ‘고문’이라는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했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수년 만에 처음 받은 어머니의 소식은 참담했다. 인편에 전달 받은 사진 한 장 속 어머니의 모습은 그간의 참혹했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난 후 급하게 돈을 마련해서 보냈어요. 은행 대출은 꿈도 꿀 수 없고, 그나마 한 달에 몇 천 원씩 납입했던 보험에서 약관대출이 된다기에 400만원을 인편에 전했습니다. 물론 100여만원이 수수료 명목으로 들었지만 다행히 돈은 잘 전해졌어요.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 편지를 받았어요. 보내 준 돈으로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고치고 그럭저럭 찬바람은 막을 수 있게 됐다구요. 그러면서 이제 서로 잊고 살자 하시네요. 하지만 하나뿐인 자식인데, 더구나 저 때문에 그리 되셨다 생각하니 어떻게 모른 척 하겠어요.”

탈북 후 우여 곡절이 많았다. 어찌해 불교계에 몸을 의탁했다. 삶의 목표도 새로 생겼다. 하지만 지붕도 없어 비가 들이치는 흙벽돌집에 홀로 남아있을 어머니에게 딸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지만 돌아온 대답에 말문이 막혔다.

“탈북민이 북에 남은 가족을 돕겠다고 하면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시선을 뻔히 아는데, 누구한테 말 꺼내기도 쉽지 않더라구요.”

▲ 남수연 기자

 

한숨이 오갈 뿐 뾰족한 수가 없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교계의 탈북이주민 지원 사업은 사실상 답보 상태에 놓여있다. 정권을 탓하기도 하고, 국제정세를 탓하기도 한다. “북한주민을 돕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북한정권의 전쟁준비를 돕는 꼴”이라며 격하게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쪽에 남아있는 피붙이가 평생의 멍울인 이들에게, 남한서 정착하기 위해 또 다른 사선을 넘고 있는 이들에게,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늘 버거운 이들에게 종교만은 의지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마주한 탈북이주민의 사연은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 깊은 허탈감으로 마무리 됐다. ‘전국이 봉축행사로 술렁인다’는 기사를 좀처럼 써내려갈 수 없는 어떤 날이었다.

namsy@beopbo.com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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