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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같이 밥 먹을 분 없나요?”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7.04.24 13:31
  • 수정 2017.04.24 13:32
  • 댓글 0

오랜만에 도반스님과 서울 조계사를 가게 됐습니다. 서울로 향하는 동안 각자 오랜만에 만날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는 서로 묻지 않기로 하고 말이지요. 저녁 6시가 넘어 조계사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내린 도반은 어디론가 즐겁게 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걸었습니다. 서울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둘러보면 탑처럼 높다란 건물들이 가득했습니다. 건물의 창문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거리의 사람들은 발걸음이 빠릅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저녁들을 먹으러 가는 모양들입니다.

함께 밥 먹을 인연을 못 구해
쓸쓸함 달래다 찾은 조계사서
묵묵히 기도하는 분들에 감동

혹시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싶어 전화를 돌려봅니다. 한 사람은 벌써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동료스님들과 저녁자리가 한 창입니다. 다른 사람도 이미 절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여기 저기 전화하며 저녁 먹을 사람 구하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습니다.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갈 곳 없는 걸음걸이는 느리고 힘이 없었습니다. 거리에는 맛있게 보이려는 먹거리 사진들이 즐비합니다. 시선이 그곳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 문득 17년쯤 전에 인연이 있었던 찻집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그 분은 저녁을 드시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역시 인연은 묵은 지처럼 오래 묵어야 맛이 난다는 생각을 가지니 발걸음도 힘이 있었습니다.

유리문 안으로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세분이 계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혹 저녁 드시러 갈래요? 제가 모실게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스님, 지금 막 저녁 먹고 들어와서 차 마시고 있어요. 저녁에 공부모임을 하거든요”라고 답합니다. ‘좋은 일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또 느낍니다. 배고플 때 밥 사는 것이 의미가 있지만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큰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이지요. 왠지 오늘은 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맛있는 음식들도 즐비한데 혼자 먹기는 싫었습니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고 식당이 좋아도 함께 할 사람이 없으면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함께 저녁 먹을 사람을 찾지 못하다가 함께 올라온 도반스님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디세요? 저녁 드셨나요?” 도반스님도 식사 전이었습니다. 도반스님도 만나려 했던 분을 못 만난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속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시 도반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가벼워졌습니다. 마음에 따라 어찌 이렇게 발걸음이 달라질 수 있을까. 마음이 가벼워지면 몸도 가벼워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방법 중에 하나는 이렇게 외로울 때 도반을 만나는 방법도 있구나라는 생각도 갖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결국 인연이 와야 하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 하림 스님
조계사 법당에 가보니 방석을 깔아놓고 기도를 하고 있는 분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저 분들이야 말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복잡한 도심 속에서도 법당에 방석 하나두고 앉는 순간 평온하고 온전하고 순수해 보입니다. 무엇을 읽고 있는지 보면 이것저것 나름대로 다릅니다. 정작 교리가 어떻고 경전이 어떻고 떠드는 나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누군가를 찾아 거리를 떠돌고 있었는데 이 분들은 방석위에 경전 두고 염주 돌리며 내가 찾는 평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새삼 이 분들이 불교를 지키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멀리 인연을 찾아 떠돌던 제가 부끄럽기만 했습니다.

하림 스님 행복공감평생교육원장 whyharim@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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