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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된다’와 ‘안 된다’-하

“긍정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에너지입니다”

▲ 성운 대사의 긍정의 힘은 불광산의 세계화를 견인하는 원천이다. 사진은 불광산의 2016년 수계산림.   대만 불광산 제공

"불광산의 일부 제자들은 배경도 없고 능력도 한계가 있지만 ‘불교를 위하여’ 발심하고 무엇이든 하고자 긍정하였기에 국내외에 사찰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공부에 뜻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공부를 하라고 격려하였고 그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는 밀어주었고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일은 되어야 하고 나쁜 일은 안 되어야 합니다.”

“‘빈승이라는 배는 낡았지만 짐을 가득 싣는 성격’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 왔기에 나중에는 일간신문사와 라디오방송국, TV방송국, 불광회, 독서회, 도시불학원, 총림학원, 미술관, 이동도서관, 이동병원 등등을 세웠습니다. 저는 “안 되는 것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는데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치가 깊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치가 그냥 심오하다며 물러설 수 없었기에 불법의 가르침이 잘 드러나서 이해하기 쉽도록 하고, 말로 하여도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단지 제가 발심하고 마음을 먹는다면 ‘안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중에 저는 중국대륙의 교수 100여명을 초청해 불교경전의 백화문 번역작업을 돕도록 하였는데 자혜 스님으로 하여금 여러 차례 북경과 상해를 오가면서 관련 업무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저의 인연은 점점 더 넓어졌으며 저의 도움 인연도 갈수록 많아졌으며 발원한 일들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치와 일을 보아도 ‘좋은 일은 되어야 하고 나쁜 일은 되지 않아야’ 합니다.

평생토록 절 한 채를 지으려고 해도 이루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 도량을 조성함에 있어서 몇 대에 걸쳐 불사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빈승은 지금까지 세계 5대주의 수많은 나라에 수많은 사찰을 지었는데 저에게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요? 저에게는 단지 “된다”고 하는 긍정의 성격이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왕량신 선생이 “미국에 사찰을 지어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고 저는 “좋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유럽에 가니 황부인과 장지민이 빈승에게 프랑스에 사찰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에 저는 “좋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네덜란드에 갔는데 중국식당을 운영하는 뤄푸운이 그곳에 사찰을 지어야 한다고 하기에 저는 또 “좋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곳에 사찰을 지어야 한다면 저는 항상 “좋다”고 말을 했지 “안된다”고 말한 적이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좋다”라는 말 한마디에 따르는 부담은 매우 큽니다. 상대는 단지 건의를 한번 한 것입니다. 재가불자인 그 사람이 어떻게 큰 사찰을 지을 만한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짊어질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신해서 대지를 구매합니다. 저는 지역 인사들을 모야야 하며 저는 대중의 의견을 구해야만 하고 저는 공사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렇듯이 저는 절을 짓는 그 지역에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하고 저는 봉사를 해야 하고 저는 희생하고 기여를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빈승이 말하는 “좋다’는 말 뒤에는 많은 에너지와 인연이 있어야 하고 바로 이곳에서 이바지하고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빈승은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재산은 없지만 부모님은 저에게 ‘된다’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주 좋은 성격을 주셨다”고 자주 말하곤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번은 강연을 하던 중 돌연 “우리는 하나님을 ‘만능’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안 되는 것이 없도록 하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으며 앞으로 나설 수도 있고 뒤로 물러설 수도 있으며 책임을 맡을 수도 있고 물러날 수도 있으며 가질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으며 괴로울 수도 있고 즐거울 수도 있으며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 늦게 잠들 수도 있으며 추위를 참을 수도 있고 더위를 이겨낼 수도 있으며 부유할 수도 있고 빈궁할 수도 있으며 오를 수도 있으며 내려설 수도 있으며 양껏 먹을 수도 있고 허기를 참을 수도 있으며 명예를 누릴 수도 있고 미약함도 참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양변을 구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으니 우리 스스로 만능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자기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으니 사람 누구나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에서 “내가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것처럼 만약 기독교에서도 사람 누구나 다 하나님이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필시 아주 평등하고 아주 아름다울 것입니다.

마음 속에 에너지가 있어야 바깥으로 도움의 인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예전에 빈승이 불학원 원장을 맡고 있을 때 학생들의 휴가 신청의 경우 학생부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선생님들이 잘 허락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저를 찾아왔는데 저는 허락해줄 뿐만 아니라 “며칠이 필요하니?”라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학생이 “3일이요”라고 말하면 저는 “길이 이렇게 먼데 3일은 부족하지. 5일이나 일주일로 하자!”고 말해 주었고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생각지도 않게 제가 자신의 요청을 잘 들어주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였을 뿐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사흘의 휴가를 받고 부모와 떨어진지 1, 2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 학생은 기뻐하는 가족들이 마치 설날처럼 맛있는 밥도 해주고 칭찬도 해주니 마치 집이 낙원 같을 것입니다. 불학원에서의 수도생활은 어렵고 검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당연히 집이 너무나도 좋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오라고 했으니 설날 같은 처음 사흘이 지나고 나면 집에서 매일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좋은 말을 날마다 해 주는 것도 아니니 4일째나 5일째가 되면 다들 냉담해지니 무료하게 느껴지면서 불학원에서 단체생활의 온갖 좋은 점들이 점차 생각나게 됩니다. 한 생각 차이로 무엇이 낙원이고 무엇이 지옥인지를 구별하게 되고 학생은 다시 불학원으로 돌아가고 싶게 됩니다. 더 이상은 집을 그리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은 적극적인 방향으로, 위로 나아가야 하며 앞으로 좋아질 수 있도록 발전해야 하지 부정적으로 ‘안 돼’ ‘할 수 없어’ ‘못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의 청년들이여! 당신의 성격은 좋은 일을 해낼 수 있습니까? 남들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까?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고생도 수고도 감내할 수 있습니까? 용감하게 책임질 수 있습니까? 손해 보면서도 참을 수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널리 좋은 인연을 맺으려는 마음이 있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걱정할 것 없이 당신은 필히 성공할 것입니다. ‘좋다’고 하는 긍정의 마음은 남이 우리한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속에 잠재하는 에너지입니다. 자신에게 잠재된 에너지를 발휘해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불광산의 일부 제자들은 배경도 없고 능력도 한계가 있지만 ‘불교를 위하여’ 발심하고 무엇이든 하고자 긍정하였기에 국내외에 사찰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공부에 뜻이 있는 제자들에게는 공부를 하라고 격려하였고 그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는 밀어주었고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속에 에너지가 있어야 바깥으로 인연이 이어지게 됩니다. 하려고 하는 마음이 ‘인(因)’이고 바깥 인연은 ‘연(緣)’이므로 ‘연’이 있어도 ‘인’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비와 바람의 날씨환경이 좋다고 하더라도 씨앗이 없다면 어찌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모두들 자기 자신에게 ‘나는 보리종자인가?’하고 스스로 한 번 물어보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서양에서는 줄을 묶어 막아놓고서 “NO”라고 하면 이는 바로 법률이 되고 당연히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대학을 세우는 것이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원력을 세우니 비록 수천수만의 어려움이 있어도 저는 앞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그 이면에는 감당하고자 하는 원력이 있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성패의 관건이 되는 이렇게 간단한 것을 제가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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