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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몸과 무상

기자명 이제열

몸은 온갖 괴로움 불러일으키는 무상한 존재

“유마거사는 몸에 병이 난 것을 이유로 문병 온 사람들에게 널리 법문을 하였다. 여러분, 이 몸뚱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굳세지 못하며, 힘도 없습니다. 빠르게 늙어감으로 믿을 것이 못되며, 괴롭고 번잡스러운 것입니다. 온갖 병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몸이어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음을 알 게 됩니다. 이 몸은 물거품, 아지랑이, 파초, 요술쟁이, 꿈, 그림자, 메아리, 구름, 번개와 같으며 주인이 없어서 땅, 불, 물, 바람과 같습니다.”

문병자들에게 몸의 실상 법문
몸은 무상·무아·고의 집결체
몸·마음은 ‘나’ 아닌 허상일 뿐
실상 알아야 보리심도 일어나

유마거사의 몸에 병이 난 것은 순전히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그에게는 실제로 병이 없다. 다만 사람들에게 법문을 들려주려고 짐짓 병을 앓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먼저 유마거사의 법문은 몸을 주제로 펼쳐진다. 자신의 몸에 병이 난 것을 염려하는 문병인들을 향해 몸의 실상이 어떠한지 설명한다. 불교의 목적은 일체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만약 나라는 존재의 성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인간이 겪어야 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나라는 존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긴다. 불교에서는 곧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을 자세히 분석하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 유마거사가 몸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느끼는 대부분의 괴로움이 몸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도 몸 때문이고, 사랑과 미움의 괴로움도 몸 때문이며, 기갈과 공포도 몸 때문이다.

몸은 몸만의 괴로움만 만들지 않고 마음의 괴로움을 만든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정신적 고통도 전부는 아니지만 몸에 의지해서 생긴다. 그러므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몸에 대한 통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라고 여기는 몸이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에 유마거사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사람들에게 몸의 실상을 바르게 알려주는 법문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유마거사의 몸에 관한 일차 법문은 몸의 무상성(無常性)과 무아성(無我性)과 고성(苦性)이다. 몸의 무상성은 몸은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변하여 마침내 늙고 병들어 사라지는 성질이다. 무아성은 몸속에는 나라고 할 만한 주체가 없는 성질이며, 고성은 몸은 쉴 사이 없이 고통을 만드는 성질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무엇보다 몸의 무상과 무아, 그리고 괴로움에 대해 설하셨다. “지혜 있는 자는 몸이 무상하고 나가 아니며 괴롭다고 보아야한다”고 가르치셨다.

불교의 진리를 아는데 있어 첫 출발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몸에 대한 무상성, 무아성, 고성을 투철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무상, 무아, 고는 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성질이다. 우리가 참된 불자라고 한다면 이 세 가지의 교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마음을 포함한 몸의 세 가지 속성을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교설로 정형화하여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몸은 변하고 사라지는 것이며, ‘나’가 없고 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진리로 인식할 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마거사의 몸에 관한 법문은 문병 온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케 하려는 차제설법이라 할 수 있다. 차제설법은 단계적으로 순서를 정해 행하는 설법을 말한다. 유마거사는 사람들에게 마냥 잊고 있었던 자신들의 몸을 돌아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중생의 몸은 어리석음과 애착과 탐욕에 의해 생긴다. 부모가 생명을 잉태시키는 것도 어리석음과 탐욕과 집착에 의해 잉태시키고, 태어나는 생명도 어리석음과 탐욕과 집착에 의해 태어난다. 중생은 너나없이 어리석음과 집착과 탐욕을 수반한 채 몸을 받는다. 몸의 실상을 바르게 알고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은 괴로움의 길이 아닌 해탈과 공덕에 이르는 길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89호 / 2017년 4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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