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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7.05.01 18:04
  • 댓글 0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에 부쳐

불서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대승기신론’의 저자 마명 스님은 또 하나의 걸작, 부처님의 생애를 담은 ‘불소행찬(佛所行讚)’을 내놓았다. 시적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어 문학적 요소가 짙게 배어 있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덮고도 하염없는 환희심에 젖게 한다. 마야부인의 태몽 역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보살이 도솔천상에서 지상을 내려 보고 있을 때… (마야부인) 잠시 꿈을 꾸었는데 꿈에 공중에서 웬 사람이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꼬끼리를 타고 광명을 천하에 두루 비추며 거문고를 뜯고 여러 가지 악기를 울리고 노래하면서,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며 자기 위에 와서는 갑자기 없어짐을 보고 부인이 놀라 깨어났으므로, 왕이 묻기를 ‘무엇 때문에 놀라시오?’라고 물었다.’

마야 부인이 태자를 낳기 전까지 전생을 거듭하며 무수한 수행을 닦은 부처님은 도솔천에 계셨다. 그 곳에서 자신을 세세생생 낳아주신 어머니를 찾고는 보살로 변해 마야부인 태로 들어갔다. 숙명적 탄생이 아닌 선택적 탄생을 의미한다. 이는 도솔천에 머물렀던 전생과 달리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에 내려와 중생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꼬끼리’를 타고 태 안으로 들어왔다는 묘사가 의미심장하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지혜를 상징한다고 하니, 태몽에서 코끼리를 보았다는 건 지혜로운 사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왜 하필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코끼리였을까? 불교법수에서 ‘6’을 대표하는 건 ‘육바라밀(六波羅蜜)’이다. 육바라밀 실천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또는 이를) 지혜로운 사람이 이 세상에 올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결국 우리 앞에 오신 분은 ‘모든 것을 성취하실 분’ 싯다르타였다. 

‘왕비 일행이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각양각색의 꽃들은 한껏 향기를 뿜었고 새들은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산에서 왕비가 오른손으로 무우수 가지를 잡고 무한한 희열에 잠겼을 때, 태자는 어머니에게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고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 요즘처럼 화사한 봄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에 태어나신 부처님께서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 당시 인도사회는 카스트로 대변되는 계급사회였다. 최고 지위에는 제사장 브라만이 있었는데 신의 입에서 태어났다고 믿었다. 크샤트리아(무사)는 신의 옆구리에서, 바이샤(평민)는 다리에서, 수드라(노예)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는 건 부처님이 왕족 출신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스로 대지에 내려서니 그때 나무 밑에는 크기가 수레바퀴만한 연꽃이 생겨났다. 보살은 그 연꽃 위에 떨어져 부축해 주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 동서남북으로 7걸음씩 걷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하시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승리자라는 선언을 외쳤다.’

당시 인도 사회 저변에 인식된 윤회세계는 하늘,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등 6개의 세계였다. 일곱 걸음을 하셨다는 건 여섯 걸음을 한 후 한 발 더 내디딘 걸음이니 전제한 6개의 세계를 모두 넘어섰다는 뜻이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겠다”라는 사자후를 토해낸 장면은 압권이다. 여기서 ‘나’란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육도윤회를 끊은 사람이다. 열반의 길을 걷는 사람이기에 천상과 인간세계에서도 가장 귀한 존재다.

이 탄생게를 좀 더 깊이 있게 해석하면 ‘나’는 싯다르타뿐 만이 아니다. 불성을 가진 모든 존재가 ‘나’이며 생명을 가진 모든 인간 또한 ‘나’이다. 생명을 지닌 모든 인간은 하늘과 인간 세계에서 둘 도 없이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브라만을 최고 존재로 인식했던 당시 인도 카스트제도에 대한 도전임과 동시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지향한 진보적 주장이다.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은 오늘 자신과 마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스스로 존귀하다고 자신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옆의 그 누군가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가!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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