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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다스리는 법 일깨워준 군법사님 덕에 찾은 인생 새 길

기자명 법보신문

동국대 총장상-조형준

▲ 그림=허재경

문득 삶을 살다보면 인간관계에서든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든 그럴 때가 있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살아야 되나?” 혹은 “아니 쟤는 왜 저러는 거야. 진짜 이해가 안 되네?”라는 생각이 누구나 한번쯤은 들 때가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사람의 경우였다. 내 인생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평범한 초등학교를 가고 평범한 중학교를 가서 평범한 고등학교에 가서 평범하게 공부해서 평범한 대학교에 갔다. 그래서인지 이렇다 할 학창시절 추억이 남들에 비해 적은 것 같다. 그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대학생활은 뭔가 남들과는 다르게 생활하고 싶었지만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또다시 평범한 생활을 하게 된다. 군대 갈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남들이 밟은 전철을 따라가며 살아왔던 삶이었다. 그리고 2015년 12월7일, 입대를 했다. 입대 당시에는 또 다른 생각을 해봤다.

특별한 군생활 하고싶어
의장병으로 자원해 입대

쌓였던 스트레스 폭발해
후임에게 폭언과 욕설도
징계받아 영창 신세까지

마음 다스리려 법당으로
“욕을 참아 분함 극복하고
고운 말에서 향기가 난다”
법사님 가르침에 큰 감동

두려움 때문에 못했던 일
도전해 보라는 가르침서
군생활·미래의 희망 찾아

“아, 어차피 한번 가는 군대면 뭐라도 배워서 오는 게 낫지 않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생각이다. 나는 의장병으로 지원했다. 남들과는 다르고 특별한 군 생활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에선 내가 남들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아 내 능력을 키워야 했지만 군대에선 커리큘럼에 따라 훈련하고 생활하면 누구나 의장병의 화려한 무대에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속에 입대를 했다. 그렇지만 훈련소에선 생각보다 적응하기가 쉬웠다. 군대라는 특정집단의 타이틀 속에서 적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보다 훈련소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훈련소에선 분대장 훈련병도 해서 사회에서 해보지 못한 ‘리더의 자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훈련소 생활도 열심히 했고 연대장 포상으로 교육훈련 우수 상장도 받았다. 나는 그렇게 훈련소를 수료했다. 그리고 내 본격적인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국방부 의장대대로 전입을 와서 군기가 바짝 든 이병의 모습으로 선임들을 마주했다. 전입신고가 끝나고 각 중대로 어떻게 편성될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선임이 와서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말해줬다.

“야야 먹어먹어, 이런 거 엄청 먹고 싶지 않았냐?”

난 군것질을 딱히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냥 덤덤했지만 뭔가 잘 보이고 싶어서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하며 아이스크림을 감사히 먹었다. 상병 6호봉인 지금도 그 선임을 잊을 수가 없다. 작은 친절이 뭔가 엄청나게 고마웠다.

나는 이틀 뒤 국립 서울현충원 의장대로 배치가 되었다. 영외부대라서 뭔가 부조리가 있을까 싶어 무서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됐다. 처음 간 부대에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 준다. 신병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군 생활이 얼마 차이 나지 않는 근거리 선임들은 자신과 일을 같이 할 후임이 왔기 때문에 기뻐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대 배치까지 마치고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있는 일 없는 일 다 해가며 매사 열심히 임했다. 혼도 많이 났다. 실수도 많이 했다. 하지만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이 너무 강렬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총 돌리는 것(이하 동작)도 앞서 나갔고 생활이나 행사복 정비 같은 면에서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총도 잘 돌리게 되었고 그토록 해보고 싶은 동작 행사도 해냈던 나였지만 무언가 바뀌어 있었다. 내 자신이었다. 사실 살면서 군 생활처럼 많이 노력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군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니까, 나 자신을 잘 꾸며 가면 됐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대인 관계에서 조금씩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깨스TO’였다. 그러니까 군기 담당이다. 성격 자체가 그리 썩 온화하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마음은 굉장히 나약하고 여리다. 이런 모습을 남들한테 보이는 것이 정말 싫어서 일부러 장미의 날카로운 가시처럼 위장을 한 채 군 생활을 했다. 또한 의장병은 군을 대표하는 행사를 하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도 없기 위해선 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자처했다. 어쩌면 열심히 하고자 했던 내 마음이 비뚤어진 것일 수도 있었다. 후임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꾸짖고 일부러 더 화를 냈다. 사실 한번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화 낼 일이 아닌 것도 많았는데 누군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군기가 확립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더 그랬던 것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아니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혼을 낼 때는 엄청나게 혼을 낸 후에 후임들을 챙겨주고 보듬어 줄 때는 누구보다 먼저 가서 케어해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다.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병 생활을 보내고 상병을 달고 3호봉이 되어 얼마 안 있어서 사건이 터졌다. 너무 말을 안 듣는 후임이 들어왔던 것이다. 현충원 의장대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이 다 같이 모여서 생활한다. 그래서인지 군번이 꼬여서 육군 후임이 상병 3호봉이 되도록 2명밖에 없었지만 심지어 그 두 명은 행정병이었다. 실질적으로 새로 온 후임은 내가 가르쳐야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군 생활이 너무 차이가 커서인지 후임은 너무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 후임이 자기 고집대로 하자 나는 너무 화가 나 폭언과 욕설을 하고 말았다.

예전에도 후임들에게 그렇게 화를 내도 욕은 하지 않았었는데 전례없는 행동과 사건으로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나는 징계를 받았고 영창을 가게 되었다. 영창을 가기 전 너무나도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영창을 가야하지? 난 군 생활 누구한테 피해 안주고 잘했고 말 안 듣고 잘못한 건 후임인데? 진짜 너무 화가 난다.”

이런 생각들이 내 몸을 지배했다.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아서 피부도 안 좋아지고 수척해졌었다. 너무 혼란스러워서,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 신병 때 재미삼아 두세 번 가본 부처님 법당을 다시 한 번 찾아가 봤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마음을 다스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법사님 말씀을 경청했다.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조언을 예불 때 해주시는 것이었다. 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만히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보세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일병, 이병들은 선임들이 너무 혼내서 힘드신가요? 상병, 병장 분들은 후임들이 너무 말을 안 들어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분함과 억울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젊습니다. 그리고 삶을 살면서 자신의 심신을 단련시킬 시간은 더더욱 없이 치열하게만 살아왔지요. 그러니 작은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선임 병사 분들은 후임이 너무 말을 듣지 않아서 욕을 하고 화를 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욕을 참아서 분함을 이겨라. 고운 말에선 향기가 난다.’라고 하셨습니다.”

너무 와 닿았다. 평소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나’였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딱히 믿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냥 혼자 살아가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법사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조금씩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어차피 영창은 정해진 거 이미 돌이킬 수는 없다. 내가 뱉은 말이 화살로 돌아와서 박힌 것 뿐이다. 가서 법사님 말씀대로 앉아서 가만히 있어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4일 동안의 영창기간을 보내고 나왔다. 인간관계에 대한 책도 많이 읽었고 나 자신에 대한 통찰도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후임이 한 명 있었는데 영창을 갔다 오고 난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후임이 말했다.

“어! 조형준 상병님, 근데 뭔가 영창 갔다 오시고 난뒤 뭔가 경건? 뭐라로 해야 되지, 되게 홀리(holy) 해 지신 것 같습니다.”

신기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갔다면 스트레스만 잔뜩 받아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불교 종교참석을 갔을 때 법사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이었다. 아니 많이 편해졌다. 확실히 정신은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기였다. 그리고 영창을 다녀와서는 법사님이 말씀하신대로 생활해 봤다. 한발 물러서서 상대를 생각해주기 특히 “고운 말은 향기가 난다”라는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앞서 말했듯이 난 내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욕도 많이 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성향이 있었다.

법사님 말씀대로 생활해 보니까 지금까지 폭풍이 몰아치는 파도 같았던 군 생활을 비웃기라도 하듯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후임들이 실수하는 것에서는 한발 물러서서 봐주었다. 나의 일병, 이병 생활을 되새겨 보며 누군가에게 위로받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실수한 후임이 있으면 다가가서 격려하고 “괜찮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이미 한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며 다독여줬다. 그렇게 생활한지 2개월 가까이 되어간다. 내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의장병으로서의 생활과 군대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후임들은 나를 전보다 더 친근감 있게 여기고 가까이 다가오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두 개의 생활을 동시에 해본 나로서는 당연히 정답이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 때 가본 불교 종교참석은 내 인생에선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될 만큼 파급력이 컸다. 지금도 시간이 되면 법당을 찾아가서 좋은 말씀을 듣곤 한다. 법사님은 늘 내 마음에 바로 꽂히는 말씀을 해주셨다.

“아직 젊은 20대 청춘인 병사 여러분들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움 때문에 해보지 못한 일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인생에서 젊음은 굉장히 짧고 한정적입니다. 그런 시간에 해보지 못하면 평생 후회로 남아요. 정말입니다. 왜 해도 후회 할 것 같고 안 해도 후회 할 것 같으면 차라리 하고 후회하라고 하잖아요?”

법사님이 해주신 말씀은 신기하게 그 누가 한 말보다 가슴깊이 와 닿았다. 어쩌면 그 법사님이 달변가 일수도 있겠지만 불교의 덕목을 말씀 속에 잘 스며들게 하여 의미 전달이 잘 되게끔 설명해 주셨다. 그렇게 하신 법사님 말씀에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성우가 갑자기 떠올라서 성우에 대한 글도 많이 찾아보고 학원도 찾아봤다.

지금은 군인이라서 학원에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전역하면 바로 해볼 생각이다. 물론 이건 내 진로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조금만 해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올 생각이다. 정말 지금 안하면 후회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법사님 말씀대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 하는 것이 몇 배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너그러운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걸 행동으로 이끌어주고 일깨워 줄 계기가 없었던 것뿐이다. 사람들도 살면서 정답을 알고 있지만 그걸 실행하는 사람과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 것이 굉장히 많다.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가 겪은 것처럼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보고 행동하면 전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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