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를 찾아 떠나는 이 누구든 천상세계에 태어나리라”
“성지를 찾아 떠나는 이 누구든 천상세계에 태어나리라”
  • 남수연 기자
  • 승인 2017.05.02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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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순례, 왜 신행트렌드 됐나

▲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성도지를 비롯해 재세 시 발길이 닿았던 성지에는 지금도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성지순례’ 개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부처님 재세 시다.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의 입멸 후 친견하지 못하고 공경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아난다에게 부처님은 4대 성지를 언급하며 성지순례를 제시하셨다.

“아난다여, 믿음을 가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가 있다. 아난다여, ‘여기서 여래가 태어나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셨다, 여기서 여래가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여기서 여래가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하셨다’라면서 믿음을 가진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이 이곳을 방문할 것이다. 아난다여, 누구든 이러한 성지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2500여년 불교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순례의 길에 나섰다. ‘여래가 다니셨던 성스러운 유적에 예배하기를 바라던 이들’ ‘수승한 복덕을 회향하여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던 이들’ ‘정법을 펼치기 위해 부처님의 법을 찾아 나선 이들’의 걸음은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해 ‘대당서역기’ ‘불국기’ 등 소중한 기록을 남겼다. 또한 그들의 이름은 ‘고승전’ ‘속고승전’ ‘대당서역구법고승전’ 등에 영원히 새겨졌다.

부처님 입멸 후 근세에 이르도록 순례는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한 지극한 신심의 발현이었다. 불법을 구하기 위해, 혹은 부처님의 발자취가 서린 성지를 친견하기 위해 길을 떠났던 이들 가운데 원력을 성취한 이들은 소수에 그쳤다. 상당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거나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역만리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럼에도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순례가 단순한 유랑이나 여행이 아닌 신심의 발현, 구법의 과정, 수행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의 순례처럼 반드시 부처님 발자취가 남은 장소를 찾아가야만 신행과 수행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열반경서 순례공덕 첫 언급
재세 시 인연장소 아니라도
부처님 떠올리며 가르침 새겨

목숨 걸고 떠나야 했던 시절
발길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순례 곧 수행·신행이기 때문


‘청정도론’을 집필한 스리랑카의 고승 붓다고사는 “비구나 붓다의 회상에 전념하고 있을 때…그는 스승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의 마음은 붓다들의 영역으로 향하게 된다. 계율을 어기는 경우에 그는 스승을 마주 대하고 있는 듯이, 생생히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설령 그가 더 높은 것을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행복한 곳으로 태어난다”고 제시했다. 부처님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4대 성지를 직접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부처님을 떠올리고 그 가르침에 집중할 때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고 삶의 자세는 청정해짐으로써 무한한 공덕을 쌓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성지순례 실천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대안으로 제시된 해석이라 해도 성지순례의 근본적인 성격을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안양규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불교의 성지순례와 그 종교적 의의’에서 이에 대해 “원거리에 있는 성지를 방문하는 대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4대 성지를 상징화하는 것”이라며 “붓다의 출생은 붓다의 발자국 모형으로, 성도는 보리수로, 초전법륜은 바퀴 모양으로, 입멸은 탑으로 상징화되었다. 굳이 4대 성지를 직접 순례하지 않더라도 이들 상징물을 예배함으로써 성지 순례 본연의 목적에 부합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순례가 부처님을 회상하고 가르침을 새김으로써 신심을 증장시키는 방편이라는 해석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성지순례가 출연하는 배경을 이해하는 단초이기도 하다. 순례모임 ‘합장하는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지도법사 혜정 스님은 “독실한 불자가 아니었던 사람들이라도 순례를 다녀온 후 불교를 더 알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며 “순례 후 불교대학에 등록하거나 불교에 귀의하는 경우를 자주 접할 수 있다”고 말해 순례가 초심자의 발심을 북돋는 계기로도 작용함을 강조한다. 이는 순례라는 행위 자체가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자세에서 스스로 가르침을 찾아나서는 적극적 행위로 변하게 되는 계기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특히 4대 성지와 선종사찰, 기도처 등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소를 찾아가는 사전적 의미의 순례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순례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특징을 대변하고 있다. 불교유적지를 찾아 불교사와 그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되새겨보는 문화답사형식의 순례를 비롯해 지역사회와의 소통 및 나눔 활동의 계기로 삼는 순례 등 다양한 형태의 순례들은 오늘날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다방면으로 확산시켜나가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불자들의 순례 동참·확산은
스스로 가르침 찾아 간다는
적극 신행으로의 변화 상징

수행·배움·나눔 등도 결합
힐링·휴식·가족 중시 여기는
현대인의 트렌드와도 부합


여기에 주5일 근무의 정착으로 인한 휴일 확대와 힐링, 휴식, 가족 간의 활동에 대한 현대인들의 가치변화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기도와 수행, 문화교육과 나눔 활동이 결합한 다양한 형태의 순례들은 종교를 기반으로 현대인들의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있는 최상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순례 동참 불자들은 단순한 기도와 가피를 넘어 적극적인 자세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동시에 순례를 통해 일상의 활력을 높이고 재충전의 기회로 승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순례가 갖고 있는 참다운 목적이다. 입멸을 앞두고 사라쌍수 아래 누운 부처님께 천상의 꽃이 공양되고 음악이 연주되자 아난다는 “신들도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고 찬탄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아난다를 향해 “그것은 올바르게 여래는 공양하는 것이 아니다”며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받아들여 법답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여래를 공양하는 것”(조계종 교육원 간행 ‘부처님의 생애’ 중에서)이라고 단언하셨다.

순례 역시 종교적 의미가 깃든 장소를 방문하고 그곳에 보시, 경배함으로써 공덕을 얻는 단순한 도식이 아니다. 성소를 방문한다는 물리적, 형식적 행위를 통해 보살에 대한 다짐,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집중, 그리고 법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고 실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순례의 참된 의미가 담겨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90호 / 2017년 5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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