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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7.05.11 11:49
  • 수정 2017.05.11 17:24
  • 댓글 0

 
동산양개 화상이 스스로 경계하시기를 “명리도 구하지 말고 영화도 구하지 말며, 다만 인연 따라 세상을 살며 정진하려 한다. 숨 한번 내쉬고 들이쉬지 못하면 누가 주인인가. 내가 죽은 후에 헛된 이름뿐인 것을. 옷이 떨어지면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이 떨어지면 그럭저럭 구해서 먹을 것이다. 한낮 허망한 이 몸뚱이 얼마나 살 것인고. 부질없는 일로 업만 쌓을 순 없지 않겠는가.”

이 얼마 안 되는 말씀은 출가한 사람들이 명심하고 날마다 경책해야할 도리이다.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엄중하여 무섭다는 것을 가슴에 담아, 가나오나 눈을 뜨나 눈을 감으나 간절하게 생각하고 정진한다면 부질없는 망상으로 허무하게 날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상의 허망하고 실답지 못한 일에 관심 가져 무엇 하겠는가. 출가인은 오직 본래면목 찾는 일에 전념할 뿐이다.

쌍림의 전대사가 말하기를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난다. 앉으나 서나 함께 따라 다니고, 말할 때나 잠잠할 때 언제나 함께 한다. 털끝만치도 서로 떨어지지 않아서 몸의 그림자 같다. 부처님 있는 곳을 알고자 한다면 다만 이 말하는 소리 이것이다.”하였는데 이 몇 구절 안 되는 말 하나 하나에 우리가 참구하는 진실함이 있다.

한량없는 무진장보(無盡藏寶)가 내 육신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해 수많은 생을 고통 속에 살았는데 우리가 금생에 다행히 불법을 만나 생사윤회의 고통 면하는 도리를 알았으니 고인들이 가르쳐준 수행의 길에서 참선을 하던가, 혹 염불을 하든, 혹 주력을 하든 다만 노력하여 수행하되 회광반조(回光返照)하는데 힘을 써라. 가장 중요한 것은 ‘청정’이라는 두 글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 ‘청’은 ‘보리’요, ‘정’은 ‘열반’이다. 그러나 철저히 깨달음에는 명색이 끊어지고 능소가 떠난 자리여서 무념으로 위종할 뿐이다.

진정한 도와 법문은 다 언어로써 표현 할 수 없다. 언어는 이미 실상의 세 번째 투영일 뿐이다. 진정 도에 들어갔다면 언어로써 표현 할 수 없고 오로지 그 여여부동한 존재만을 감수할 뿐이다.

종지의 테두리는 이론적이지만 그 핵심은 이론에 속한 것이 아니다. 이론은 상상할 수 있지만 도의 핵심은 생각으로 해내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언어로는 도를 논할 수 없으니 반드시 지식과 언어의 영역을 초월해야만 도의 깊은 곳에 들어 갈 수 있다.

말씀이 있기 전이라 글귀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가.
묘한 말도 원래는 눈 속의 티끌이라네.
유마거사의 침묵소식을 알고자 한다면
수고로이 입을 열지 않고 현인을 대하였다네.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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