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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 하안거 결제법어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7.05.11 11:51
  • 수정 2017.05.11 19:27
  • 댓글 0

 
까마귀도 깍깍깍, 이 마을 저 마을 산천에서 울어 되는데 어찌 사람들은 이 모양으로 살아왔을까?

인간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지식(상식)이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존재의 근원적 물음에 답해가는 교육이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요. 특히 수행자들은 사람들 가운데 참사람이 되어서만이 자기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디로 가는지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인 증명만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정보지식이 가득한 세상일지라도 참사람이 되지못한 인간의 고뇌, 갈등은 해소시켜줄 수 없습니다. 참사람이 되는 길만이 모든 차별과 회의가 끊어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참사람의 길이 아니면 맹렬한 삼독심이 부리는 로봇이 됩니다.

그럼 어떠하면 본래의 참 자기를 알게 되는지 먼저 깨달은 선지식인 옛 선사들의 얘길 해볼까합니다.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라는 공안이 있습니다. ‘아직 당나귀의 일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당나라 말기의 선승 영운지근(靈雲志勤)스님께서 어느 납자(長慶)에게 답한 말씀입니다.

장경혜릉 스님이 납자 시절에 영운선사를 찾아가 무엇이 불법의 대의(大意)냐고 물었습니다. 영운선사께서 ‘여사미거 마사도래’라고 답하셨지요.

근래에 경허 스님께서 참선 중에 문밖에서 이처사란 이가 내뱉은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공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나귀의 일은 무엇이고 말의 일은 무엇이냐? 당나귀의 일이란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뜻이고 말의 일이란 닥쳐온다는 뜻입니다. 이 답변은 분별심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말 역시 정답이던지 틀린 답이던지 차치하고 각자 알아서 할뿐입니다. 선 역시 부처님 방편이니까요.

내가 어렸을 때 소뼈를 가지고 놀았는데 출가해서는 말뼈를 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소일이든지 말일이든지 닭일이든 다르지 않아 억천만사가 다 똑같습니다. 모시고 섬기는 일을 좋으나 가지고 노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룩하고 특별한 마음이 따로 없고 다만 범부의 정만 다하면 될 뿐 별다른 성해(聖解)가 없습니다. 그냥 삼독심을 쉬면되는 것일 뿐 부처의 경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설하고 삼매(三昧)는 욕망을 극복하는 수행이고, 통찰지(通察知)는 무명을 극복하는 수행인데 이를 같이 하는 것을 일러 ‘지관겸수 정혜쌍수(止觀兼修, 定慧雙修)’라고 합니다. 지를 일러 사마타, 관을 일러 비발사나라고 하기도 합니다. 마치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지관타좌(止觀打坐)라는 것은 하나로 되는 것이지 갈래치고 분별하는 것은 올바른 참선이 아닙니다.
부처님을 신앙만하는 기복불교는 언제나 중생으로 남겠다는 것이요, 조사만을 신망하는 선자(禪者)는 범부로만 살겠다는 것입니다.

‘선문염송’에 백운화상께서 “장부에게는 천지를 꿰뚫을 뜻이 있나니(丈夫自有衝天志) 여래께서 가신 길이라도 따르지 않는다(不向如來行處行)”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는 독탈무이(獨脫無二)의 대자유인으로 이르는 처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이 되는 그런 존재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조의 뼈다구만 가지고서 환상을 갖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행 대중들은 삼하구순(三夏九旬)안거동안 가행정진을 합시다. 국가사회가 새로운 계기를 만났으니 국민 모두가 본업에 충실하고 사부대중들은 어둠을 사르는 불자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아직 당나귀의 일은 없어지지 않았고 말의 일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무슨 턱주가리 놀음인가! 쯧쯧.

바람은 고요한데도 꽃은 떨어지고 風定花猶落
새가 울어도 산은 다시 그윽한데 鳥鳴山更幽
하늘과 흰 구름은 같이 밝아지고 天共白雲曉
시냇물은 달빛과 같이 흘러가네 水和明月流.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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