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냐?”
수좌는 앞이 캄캄했다.
“나는 누구인가? 묻고 있는 이 놈은 누구인가?”
모든 유·무 현상에 관한 근원적 의문, ‘이 뭣고(是甚?)’. 위와 같이 스승이 학인에게 깨달음의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하여, 사리에 밝음과 어두움(明?利鈍)의 경계에 걸리지 않는 자기주체의 묘리(妙理)를 찾는 방편으로 공안(公案)이나 게송(偈頌) 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임제 선사는 “어디서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며, 주인공임을 자각하는 슬기로운 사람은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데, 그 자리가 바로 진리의 자리이다(隨處作主 入處皆眞)”고 했습니다. 즉 스스로 깨달음의 주체가 된다면, 지금 바로 이곳이 환희가 넘치는 진리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노자도 “다른 사람의 현명(賢明)함을 아는 것은 지혜이며, 밝음은 자기의 현명함을 아는 것(知人者智 自知者明)”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자기 자신을 밝혀 아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하다는 것을 강조한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수행자에게 자기를 찾는 것 보다 중요하고, 긴박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부디 전국의 선방수좌들은 이번 하안거 정진을 통해 인간 삶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바깥경계(外物)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는 길을 목숨 걸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삼계유여전법륜(三界猶如轉法輪)
인생역연수유거(人生亦然水流去)
생동만류제중생(生動萬類諸衆生)
금일부지래일거(今日不知來日去)
삼계가 오히려 얽매여서 수레바퀴 굴러감과 같으며, 인생 또한 그러하여 물 흘러감과 같도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종류의 중생들이여, 오늘을 알지 못하나니 내일 갈 것을 모르는 도다.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