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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분노의 중독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 불서
  • 입력 2017.05.15 16:07
  • 수정 2017.05.1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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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 로버트 A.F. 서먼 지음 / 허우성·이은영 옮김 / 민족사

▲ '분노'
지난 겨울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통령과 이른바 비선실세의 상상을 초월하는 국정농단에 분노했다. 그러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국민들은 분노가 폭력으로 이어질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적 결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부정한 권력자가 권좌에서 내려올 때까지 비폭력을 견지했고, 마침내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기원하며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분노는 양날의 칼’로 불린다. 분노에 중독되는 순간 고통과 증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분노의 에너지를 자유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순간, 분노는 행복으로 가는 길의 열쇠가 된다. 여기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지혜롭게 그 분노의 에너지를 자유의 에너지로 전환시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분노’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티베트불교 비구계를 받았던 최초의 서양인인 로버트 서먼(컬럼비아대 종교학과 인도-티베트 불교학 명예교수)이 ‘입보리행론’의 ‘인욕품’을 해설하면서 분노에 대한 불교적 태도의 정수를 보여줬다. “나는 원수와 함께 인내를 수련할 수 있네. 그래서 그는 그를 인내한 결과인 내 첫 번째 공물을 받을 만하네. 원수야말로 인내의 원인이기 때문에.”

서먼은 이 책 ‘분노’에서 ‘원수가 인내의 원인이므로 나의 공물을 바칠만하네’라는 취지의 구절을 설명하며, 달라이라마가 티베트를 핍박한 마오쩌둥에 대해 ‘자비를 보낸다’고 언급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서먼은 “분노가 가져오는 끔찍한 공포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시간을 내어 성찰하는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분노는 서양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오랫동안 ‘대죄’로 여겨졌다. 동양의 불교에서도 분노는 번뇌로서 탐욕, 무지와 함께 삼독에 속한다. 삼독은 윤회의 원인, 해탈하지 못한 채 끝없이 윤회하는 삶의 원인”이라고 설명하며 전자를 ‘분노에 항복하기’로, 후자를 ‘분노에서 해방되기’로 정의했다. 이어 분노의 에너지를 정복해서 자비의 에너지로 바꿈으로써 그 에너지를 재배치하자고 제안한다. 분노의 메카니즘을 이해해 증오와 결합된 분노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인내와 자제심을 기르고, 증오심과 분리된 자비심을 길러 분노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입보리행론’에 나오는 ‘인욕품’의 가르침을 통해 분노 대신 사랑과 자비를 닦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만2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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