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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창원 구암동 용수사

새벽 깨우는 목탁소리 구암민심을 움직이다

▲ 1986년 인법당으로 시작한 용수사는 매일 새벽 마을을 돌며 관음정근을 하며 구암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전국의 모든 사찰은 축제의 장이 된다.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이날만큼은 오색 연등 빛나는 사찰을 찾아  바람을 기도하고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비빔밥 한 그릇을 공양할 수 있다.

15평 슬레이트 인법당으로 시작
매일 새벽 마을 돌며 관음정근
지역민 이름 모두 알만큼 친근
봉사·나눔행으로 동네절 거듭

불기 2561년 부처님오신날인 창원 구암동 용수사(주지 혜정 스님)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사찰 아랫마을인 구암동 주민들이 모두 모였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북적이는 이 도량에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법요식 막바지, 총무 법룡 스님이 대웅전에서 축원을 하는 동안 주지 혜정 스님은 직접 경내를 순회하며 사람들마다 손목에 합장주를 걸어주었다.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자주 얼굴을 보는 신도들의 이름은 알 수 있다 치더라도 모처럼 사찰을 찾은 부부, 어르신,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스님은 막힘없이 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지었다. 법석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동참자들은 누구할 것 없이 고향을 찾은 가족처럼 안부를 나누고 덕담을 건넸다. 창건 31주년을 맞이하는 창원 용수사만의 부처님오신날 풍경이다.

용수사는 국립3·15민주묘지 인근 천주산 자락 아래 소박한 도량이다. 하지만 구암동 마을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곳이어서 마치 마을의 어머니 같은 전경을 지니고 있다. 용수사가 창건 당시부터 지금의 사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용수사는 주지 혜정 스님이 1986년 건립한 15평의 작은 슬레이트집에 약수사라는 사명으로 출발했다. 스님은 매일 새벽예불을 마치면 수행삼아 목탁을 들고 마을을 돌며 관음정근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뜨거운 여름과 혹한의 겨울에도 2시간 동안 이어지는 마을순례기도를 묵묵히 7년간 이어갔다.

창건 3년이 뒤 용수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관음정근 6년차에 접어들 때 비로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묻고 물어 절을 찾아 올라오는 이들은 매일 아침 스님의 목탁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 구암마을 주민이었다. 어떤 이들은 “목탁 소리를 듣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며 스님의 손을 잡고 삶의 하소연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과 소통하기 시작한 스님은 7년 관음기도를 회향하고 2년 동안의 불사 끝에 1995년 지금의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했다. 이후 2004년 삼성각을 낙성하고 2011년에는 일주문을 조성하면서 현재의 사격을 갖추었다.

▲ 용수사를 찾는 누구나 주저함 없이 이름을 부르며 미소로 인사하는 주지 혜정 스님.

무엇보다 용수사는 지역 밀착형 신행과 포교에 집중했다. 혜정 스님은 주지실의 문턱을 낮추고 틈날 때마다 신도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혜정 스님이 신도는 물론 가족구성원까지 알게 된 것도 이 같은 용수사의 운영방침에 기인한 것이다.

신도들과의 소통은 단순히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축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관음종 초대 경남종무원장 운강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혜정 스님은 창건 당시부터 종풍을 이어가는 데 주력했다. ‘법화경’ 독송과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용수사 신도들의 기본수행으로 정착된 것도 관음종 종풍을 잇기 위한 스님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용수사가 구암동을 대표하는 신행도량으로 정착한 데에는 신행단체 ‘보현회’의 활약이 컸다. 용수사 제2대 신도회가 조직될 당시 15명으로 출발한 보현회는 용수사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음성공양을 올리는 신행단체다. 정식 합창단은 아니지만 보현회의 정성스러운 공양은 음성공양뿐 아니라 신행, 봉사 등 모든 분야로 확장됐고 현재는 용수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신행단체로 자리를 잡았다.

도량 불사가 마무리되고 신도조직이 안정되자 용수사는 지역사회를 위한 자비나눔에 동참했다. 부처님오신날과 명절이 되면 사중에 모인 쌀과 보시금 등을 주민센터를 통해 저소득가정에 전달했다. 올해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백미 300kg을 보시해 훈훈함을 더했다.

주지 혜정 스님은 “구암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용수사 신도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오랜 인연을 이어왔고, 용수사가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감로수가 돼주었다”며 “지난해 어른스님들과 신도 그리고 주민들의 격려 속에 30주년 기념법회를 성대하게 봉행한 원력을 이어 구암마을과 함께하는 용수사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창원=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지역에 힘이 되는 도반 같은 사찰 발원”

용수사 주지 혜정 스님

 
“용수사가 구암마을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수행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마음 편히 쉬어가고 언제나 정진할 수 있는 도량이 됐으면 합니다.”

용수사 주지 혜정<사진> 스님은 사찰 창건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인법당으로 조성한 15평의 건물이 돈만 받고 연락을 끊은 건축회사의 부실공사로 속절없이 내려앉았고, 종교부지 지정을 위해 노력을 이어 온 시간들이 허사가 된 때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혜정 스님은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새벽 관음기도만큼은 7년간 한 결 같이 이어왔다. 그 기도는 용주사가 천주산 아래 구암마을 주민들의 어머니 같은 도량으로 자리매김하는 탄탄한 기반이 됐다.

혜정 스님은 “31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 절에 올라오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30년 전 목탁소리를 회상하곤 한다”며 “나에게는 일상의 수행이었지만,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하루를 깨우는 도량석이 되고 마음속 불성을 깨우는 자명종이 된 것 같아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저 역시 처음 절을 창건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새벽 관음기도를 통해 어려움을 털고 매일 새벽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그 초발심의 원력을 항상 가슴 깊이 품고 항상 주민들 가까이에서 호흡하며, 그들의 몸과 마음 치유와 행복에 앞장서는 도량으로 변함없이 정진하는 것이 31주년을 맞이하는 용수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혜정 스님은 18년 전 암수술과 방서선치료 후유증 등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고 원만하게 절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5년 전부터 총무 법룡 스님이 종단과 도량을 오고가는 바쁜 일정 속에도 정성스레 불공을 이어오면서 한층 안정됐다”며 “젊은 불자를 위한 포교와 가족이 함께하는 법회를 모색해 포교도량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덧붙였다.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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