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 2017.5.25 목 20:26
> 연재 | 이제열의 파격의 유마경
16. 유신견과 전도견몸 있기에 마음 있고 마음 있기에 몸도 있어
이제열  |  yoomalee@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16  13:29:4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이 몸은 공(空)한 것이니 나와 내 것을 여읜 것이며, 이 몸은 앎이 없나니 초목이나 돌멩이 같으며, 이 몸은 본래 작용이 없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며, 더러운 물질로 가득 차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 몸은 목욕하고 입혀줘도 마침내 닳아 없어지며, 재난 덩어리인지라 백한 가지 병이 괴롭히며, 웅덩이 같고 독사와 같고 원수와 같고 도둑과 같고 빈 마을과 같습니다. 이 몸은 오온(五蘊) 십팔계(十八界) 십이입(十二入)이 모인 곳입니다.”

유마거사는 사람들에게 몸의 무상과 무아와 고를 깊이 자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제 그는 다시 몸이 공하다는 이치를 설하여 사람들이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인도하고 있다.

여기서 몸이 공하다는 말은 몸은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인연으로 만들어진 몸이 진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는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몸은 지수화풍 사대를 인연으로 이루어졌고, 마음은 육근과 육경을 인연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마음도 몸처럼 실체가 있을 수 없다. 몸과 마음은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연을 통해 잠시 나타난 그림자에 불과하다.

따라서 실체가 없는 몸과 마음을 나로 삼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몸과 마음은 나를 떠났고, 내 것을 떠났다. 다만 사람들이 미혹하여 ‘나다’ 혹은 ‘내 것이다’라고 탐착할 뿐이다. 몸과 마음을 자세히 살펴보라. 몸은 마음에 얽매어 있고, 마음은 몸에 얽매어 있다. 마음이 없이는 몸이라 할 수 없고, 몸이 없는 마음이라 할 수 없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은 서로 인연 관계에 의해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은 스스로 분별과 앎을 일으킬 수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 시체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는가. 몸은 물질인지라 돌멩이나 나무토막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마음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마음 역시 몸이 없다면 생기지 못하고 분별과 앎을 일으키지 못한다. 중생의 마음은 눈, 귀, 코 등의 몸뚱이에 의존해서만이 모든 인식과 분별이 가능하다. 혹 어떤 이들은 몸이 없이도 마음 홀로 존재할 수 있다거나 마음을 몸의 주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참으로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마음은 결코 몸의 주인도 아니며 주체도 아니다. 몸처럼 인연에 의지해 일어난 마음을 주인처럼 여긴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유신견(有身見)을 버리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유신견은 중생의 몸과 마음에 대한 잘못된 견해로 몸과 마음을 나로 여기거나 내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또한 전도견(顚倒見)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몸과 마음이 서로 의지해 있는 줄 모르고 마음이 주인이 되어 몸을 움직이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현재 한국불교에는 이런 유신견과 전도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이와 같은 견해는 자신뿐만 아니라 불교의 진리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생각이다.

유마거사의 말처럼 중생의 오온과 십팔계와 십이입은 모두 몸에 의존해서 생긴다. 알다시피 오온(五蘊)은 색(色:물질)·수(受:느낌)·상(想:생각)·행(行:의도)·식(識:의식)이며, 십이입(十二入)은 안입(眼入:눈의 영역)·이입(耳入:귀의 영역)·비입(鼻入:코의 영역)·설입(舌入:혀의 영역)·신입(身入:몸의 영역)·의입(意入:뜻의 영역)·색입(色入:물질영역)·성입(聲入:소리 영역)·향입(香入:냄새 영역)·미입(味入:맛의 영역)·촉입(觸入:감촉의 영역)·법입(法入:대상의 영역)이다. 십팔계(十八界)는 앞의 십이입에다 안식(眼識:눈의 의식)·이식(耳識:귀의 의식)·비식(鼻識:코의 의식)·설식(舌識:혀의 의식)·신식(身識:몸의 의식)·의식(意識:뜻의 의식)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중생의 육신을 비롯한 모든 마음과 정신 활동은 몸에 의지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들은 무상과 무아와 고의 특성을 면하지 못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라인
포토뉴스
라인
가장 많이 본 기사
여백
실시간뉴스
라인
여백
법보신문은찾아오시는길구독·법보시광고안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3157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편집국 : 02-725-7014  |  광고문의 : 02-725-7013  |  구독신청 : 02-725-7010
사업자 등록번호 : 101-86-19053  |  정기간행물·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07229  |  등록일자 : 2005년 11월 29일  |  제호 : 법보신문
발행인 : 김형규  |  편집인 : 이재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형규
Copyright © 2013 법보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