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부처님이 오시다(毘藍降生)
9. 부처님이 오시다(毘藍降生)
  • 정진희
  • 승인 2017.05.1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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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자취 그려 사람들 깨달음으로 인도

▲ 석가탄생도, 조선전기, 견본채색, 145.0×109.5㎝, 일본 후쿠오카 혼가쿠지.

그 옛날 우리들에게로 오셨던 부처님의 탄생장면은 불화로 그려진 팔상도에서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살필 수 있는 불화는 8장면으로 구성된 팔상도를 떠올리지만 부처의 일생을 표현한 도상에는 도를 깨닫는 장면과 열반에 드시는 2장면만을 다룬 것에서부터 여기에 탄생과 초전법륜 장면이 더해 4장면으로 구성된 것도 있고 9장면과 10장면으로 나눠진 것도 있어 표현방식에 다양함이 있다. 주로 소승불교를 믿는 남방불교권의 불전문학에서는 4가지 장면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선호되었지만 북방불교권의 대승불교 불전문학에서는 이것이 더욱 구체화되어 8개의 장면으로 확대 전개된다. 미술품으로 표현한 작품의 주제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인도의 것은 주로 성도 이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의 팔상은 출가 전 세속의 생활에 중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부처님 일생 도상화한 팔상도
구성순서는 ‘석보상절’과 동일
장면 4개로만 구성한 남방불교
인도는 성도 이후 사건 초점


우리나라의 팔상도는 부처님 전생인 도솔천의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태속으로 흰 코끼리를 타고 들어가는 마야 부인의 꿈을 표현한 ‘도솔래의’로 시작된다. 그리고 ‘비람강생’ ‘사문유관’ ‘유성출가’ ‘설산수도’ ‘수하항마’ ‘녹원전법’ ‘쌍림열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머지 7장면이 순차적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 팔상도의 구성순서는 세조가 지었다는 ‘석보상절’에 소개된 순서와 동일하다. 부처님이 일생 동안 겪으신 일을 그림으로 엮어서 보이는 이유를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도 팔상을 넘지 못하고 중지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인간세상에서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출생하신 곳과 종신한신 곳의 출처를 선명하게 알리노라. 세존께서 성도하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시초와 종신하신 곳의 자취를 넣어 놓았으니 사람마다 쉽게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여 소망을 이루기 바라노라’라고 ‘석보상절’의 서문에는 기록하고 있다. 2세기 전후 인도 시인 마명이 부처의 생애를 시적으로 서술한 ‘불소행찬(Buddhacarita)’에는 전생담을 배제하고 도를 이루신 현생으로만 구성되어 있음에 반해 ‘석보상절’에 소개된 부처님은 초월력과 자비심을 강조하여 고난에 처한 인간을 구제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되어 차이를 나타낸다.

팔상도는 사찰의 대웅전이나 영산전, 팔상전 등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 있는 전각에 걸리게 되는데 팔상의 모습 가운데 부처가 태어나시는 장면을 도상으로 표현한 것이 비람강생상이다. 비람강생이라는 뜻은 룸비니동산으로 내려와 태어나셨다는 말로 도솔천에서 본인이 서원한 바에 따라 본인의 선택과 의지에 의하여 탄생하였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월초파일은 부처님이 오신 날이라 표현한다. 우리나라 불화로 가장 오랜 된 비람강생도는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된 ‘석가탄생도’이다. 한 화면에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은 세종이 ‘석보상절’에 부합하기 위해 석가모니 일대기를 시로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에 도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는 기존의 연구가 있으며 특히 화면 중앙 정방형의 단 속에 그려진 내용은 ‘월인석보’의 ‘비람강생’ 판화와 거의 일치한다.

▲ 비람강생, 1459년, 35×40㎝, 월인석보 팔상판화 부분, 서강대 도서관.

혼가쿠지 ‘석가탄생도’의 이야기 전개는 화면을 바라보는 우측 중단부에서 무우수 나무를 잡고 있는 마야 부인의 출산장면으로 시작된다. ‘불본행집경’에 의하면 마야 부인이 나뭇가지를 잡자마자 부인의 꿈속에서 호명보살이 들어갔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태자가 태어났는데 출산을 하며 상처도 없고 아픔도 없었기에 마야 부인의 표정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표현을 인도에서는 사실적인 조각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조선 전기 팔상도에서는 부인의 오른쪽 소매 깃에서 합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그 장면 아래 어린 아이가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은 싯다르타 태자가 인도에서 완성의 수를 뜻하는 7걸음을 걸어 장차 깨달음을 이루고 이를 널리 펼칠 것을 다짐하는 모습이다. 사람이 죽어 다시 태어나는 인연과 이치를 설법한 ‘정법념처경’에 따르면 선행을 닦은 사람이 다시 태어난 천상의 숲은 그 이름이 연화화생이며 그 숲에서 유희할 때 옮기는 한 걸음 한걸음마다 줄기는 비유리로 되어 있고 꽃술은 금강으로 되었으며 잎은 진금으로 된 연꽃이 피어나서 그 발을 받든다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 주위 바닥의 정방형으로 표현된 연꽃은 천상의 연화화생 숲에서처럼 동서남북으로 걸었던 각각의 걸음걸이마다 땅에서 연꽃이 피어났음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은 태어난 석가모니를 사천왕이 하늘의 비단으로 안아 금궤 위에 앉히고 제석과 범왕이 여러 가지 향을 뿌리는 장면이다. 그 위로는 아홉 마리의 용이 향기로운 물을 내려 보살을 씻기는데 왼쪽 물은 덥고 오른 쪽 물은 차다고 한다. 몸을 씻은 뒤 태자는 말없이 세상의 아기와 같아졌는데 그 다음은 제석과 범왕이 천의로 태자를 둘러싸 채녀에게 안겨 주면 그녀가 화면 중앙 마야부인이 있는 곳으로 아기부처님을 모셔가고 있다. 화면 하부 정방형으로 뚫어진 네 개의 사각우물은 마야부인이 몸을 씻은 팔공덕수를 표현한 것이다. 부처가 태어나는 극적인 상황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보여주던 조선전기 비람강생 도상에 비해 조선후기 도상은 산만한 구성과 생략으로 인해 화면은 설명력을 잃고 도상이 해체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탄생에 천지만물이 상서로움을 보였으며 깨달음을 얻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몸을 나투신 까닭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습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다.

▲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쿠산시대, 라호르박물관.

일반적인 인간의 출생과 달리 태아가 산모의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은 그 존재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설화에 의하면 산모의 옆구리로 출생한 사람은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정확한 이유를 잊지 않고 태어난 존재라고 한다. 때문에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일곱 걸음을 걸으며 그 자리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태어났으며 세상의 이익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이 세속적인 존재의 마지막 탄생이다’라고 말씀하셨나 보다. 그렇다면 출생의 고통으로 그것을 잊어버려서 그렇지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어 가기 위한 자신의 숙제를 가지고 이 땅에 왔다는 말이다. 죽음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흔히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학교에 와서 깨달음을 이루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존재들인가 보다. 부처님은 고맙게도 득도하시는 순간부터 열반에 드시기까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얻는 방편을 일러주셨지만 게으르고 어리석은 중생은 입으로 말하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태어나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걸음을 떼셨고 열반에 들면서 자기 자신 이외 그 무엇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던 부처님의 말씀을 오신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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