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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카잔차키스의 죽음과의 만남

“그 여잔 죽었어, 우린 누구나 다 죽는거야”

▲ 그림=근호

니코스 카잔차키스((N. Kazantzakis, 1883~1957)는 그리스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높은 지성의 소유자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욕망·용기·행동을 찬양했다. 그가 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감각과 욕망에 순수(?)하게 전념하는 사람인데, 카잔차키스는 자신이 만난 실존 인물을 모델로 그 소설을 썼다. 용기와 행동은 사람들에 의해 ‘대장(캡틴)’이라고 불렸던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웃집 여인 죽음 목격 후 의문
그에게 삶은 구도이자 투쟁·축제
죽음을 기억하면 삶은 진실해져

그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조르바와 자신의 스승이었던 철학자 베르그송, 그리고 부처님을 들었다. 그는 부처님의 생애를 희곡으로  쓴 일도 있다. 그에게 삶은 구도 여정이었다. 그 여정은 한편으로는 투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축제, 즉 노래와 춤이었다.

그의 자서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나는 내 삶에 깊은 영향을 준 사건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였다. 지금 늙었어도 그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아마 내가 네 살 때였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숙부의 손을 잡고 도시 성곽 안쪽에 있는 작은 묘지로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갔었다.               
                             
봄이어서 카밀레가 무덤들을 둘러 싸고 있었고, 한쪽 구석 장미 덤불에는 사월의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태양빛을 받은 땅은 뜨거웠고, 풀은 향기로웠다. 성당문은 열려 있었다. 신부는 향로에 향을 넣고 제의를 입었다. 문을 나와 그는 묘지로 향했다.

“신부님은 왜 향로를 흔들어요?” 흙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며 나는 숙부에게 물었다. 그 냄새는 후덥지근하고 좀 역겨웠다. 그것은 지난 토요일에 어머니와 갔던 터키 목욕탕 냄새를 연상시켰다.
“신부님은 왜 향로를 흔들어요?” 말없이 무덤 사이로 계속 걸어가는 숙부에게 나는 다시 물었다. “조용히 해. 곧 알게 될 테니까. 따라 오거라.”

성당 뒤로 돌아가자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상복을 입은 여자들이 무덤가에 둘러 서 있었다. 두 남자가 비석을 들어 올리더니 그중 한 사람이 무덤으로 내려가 흙을 파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구덩이 가까이 가서 섰다.

“무얼 하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뼈를 파내고 있단다.”
“무슨 뼈요?”
“곧 알게 돼.”

신부는 무덤의 머리 쪽에 서더니 향로를 아래위로 흔들면서 코 막힌 소리로 웅얼웅얼 기도했다. 나는 새로 판 흙 위를 넘겨다보았다. 곰팡이, 썩은 냄새…. 나는 코를 막았다. 구역질이 나기는 했지만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뼈라고? 무슨 뼈일까? 나는 궁금하게 여기며 기다렸다. 허리를 굽히고 땅을 파던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상반신이 구덩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두 손으로 해골을 집어 올렸다. 그는 해골에서 흙을 털고 손가락을 넣어 두 눈구멍에서 진흙을 파낸 다음 해골을 무덤가에 놓더니 다시 몸을 굽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저게 뭐예요?” 무서워 떨면서 나는 숙부에게 물었다.
“보면 모르니? 죽은 사람의 머리란다. 해골이야.”
“누구 해골요?”
“그 여자 모르니? 우리 이웃에 살던 안니카 말이다.”
“안니카라뇨!”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안니카라니! 안니카!” 땅에 몸을 던진 채로 나는 돌을 집어 무덤을 파는 사람에게 마구 던졌다. 울고 한숨 지으며 나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웠고, 그녀의 냄새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떠들어댔다. 그녀는 자주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무릎에 앉히고는 자기 머리에서 빗을 뽑아 내 머리카락을 빗어 주었었다. 그녀는 걸핏하면 내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웠고, 나는 킬킬거렸고, 새처럼 짹짹거렸었다.

숙부는 나를 안고 좀 떨어진 데로 끌고 가서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럼 어떨 줄 알았냐? 그 여잔 죽었어. 우린 누구나 다 죽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녀의 금발과, 커다란 두 눈과, 나에게 키스를 해주던 빨간 입술을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고 머리카락요!” 나는 소리쳤다. “입술하고 눈은요?”
“없어졌지, 없어졌어. 흙이 삼켜버렸단다.”
“왜요? 왜요? 난 사람들이 죽는 걸 바라지 않아요!”

숙부는 어깨를 추스렸다. “너도 나이를 먹으면 왜 죽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하게 될 거다.”

나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자랐고, 나이를 먹었고,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종교는 죽음에 대한 답이다. 싯다르타 태자는 삶에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따른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출가했다. 마침내 문제를 해결하여 부처님이 되신 그분은 태어났기 때문에 죽는다고 설하셨다. 이렇게 되면 문제의 해결법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려면 삶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한다. 이것이 초기불교가 우리를 가르치는 내용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삶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열정적으로 살라고 말한다. 대승 보살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보살에게 가엾은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에 비해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다. 늠름하게 전장으로 향하는 용감한 장수처럼, 보살은 윤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다.

네 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벌써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은 점, 그 의문을 평생토록 간직한 점에서 카잔차키스는 초기 불교적인 구도자였다. 이후 그는 옳지 않은 것에 저항하며 대승불교적인 과감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죽음의 문제를 풀지 못했다. 

부처님을 사랑했으나 그는 기독교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 때문에 그의 불교에 대한 식견은 정확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나는 한국적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 때문에 나는 불교를 그보다는 더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나의 불교는 나에게 한편으로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살아 있 늘 기억하라고 말한다. 전자를 배경으로 한 삶은 더욱 진실해지고 더욱 소중해진다. 후자를 바탕으로 한 삶은 더욱 명료해지고 더욱 깊어진다. 오늘도 불교는 나에게 말한다. ‘죽음이 면전에 닥친 것처럼 살 것, 죽음은 아예 없는 것처럼 살 것.’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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