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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수행 강성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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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16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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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일경심
수행법회에 동참하기 위해 절에 자주 나가다 보니 대광명사의 봉사단체인 ‘사무량심’에 눈길이 갔다. 수행과 봉사를 겸할 수 있는 기회를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봉사는 젊은 시절부터 늘 마음으로 발원해 온 일이기도 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임이 분명하다. 불교를 모르는 상황이거나 수행을 잘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봉사만큼은 가장 먼저 권할 수 있고 누구나 계속할 수 있는 최고의 포교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단체 ‘사무량심’ 활동
가피에 회의 들어 상심도
초심 새겨 광명진언 염송
재가불자 하안거 동참발원


그렇게 사무량심에 문을 두드린 뒤 매주 1회 우리 지역의 저소득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만들고 배달에 동참했다. 반찬을 만드는 봉사는 재료가 신선해야 되는 것은 기본이고 양이 적절해야 하고 간도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 청결은 필수였다. 처음에는 광명진언 주력수행에만 만족했다면, 언제부터인가 봉사의 보람도 무척 높아졌다. 그럴 때마다 다시 광명진언을 염하면서 이 반찬을 드시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나의 생각 속에서는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 심리가 작용했음을 고백한다. 아이가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나의 수행이 조금이라도 내 아이의 무탈함과 좋은 성적을 이끄는 거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마음으로 더 지극하게 수행을 했던 것 같다.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아이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솔직히 화가 났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수행을 하고 봉사활동까지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가피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수행이 흐트러지고 절에 가기 싫어졌다. 남편과 다툼이 이어졌다. 특히 집안의 중대한 결정을 나와 의논도 없이 결정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인지 의구심만 커졌다.

한 동안 절에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느 날 ‘사무량심’ 도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답답한 상황이라 수행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도반은 일단 봉사라도 나와서 지속해 보라고 했다. 손이 모자란다는 말에 등 떠밀린 사람처럼 억지로 다시 절에 나갔다.

그런데 웬일인가.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반찬을 만드니 이전처럼 양이나 간 등이 잘 맞춰지지 않는 거였다.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어렵게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이 드시는 음식 아닌가. 생각을 고쳐먹고 이전처럼 다시 반찬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늘 쉽게 만들던 간단한 요리인데도 이마에서는 땀이 맺힐 만큼 집중해야 했다. 다 만들고 난 뒤에는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생에 처음 봉사활동을 한 사람처럼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뭉클함도 느껴졌다.

봉사를 마무리한 뒤 차담을 나누는 동안 도반들은 내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면서 위로해주었다. 알고 보니 모두들 한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아픔을 경험했거나 겪고 있었다. 도반들은 한 결 같이 말했다. 기도의 현상적 가피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 자신이 얼마나 마음을 잘 쓰고 있는지에 따라 행복의 나침반이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서야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주지스님 법문이 떠올랐다. “마음을 바로 알고 바로 써야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씀을 왜 잊고 살았던가. 다시 광명진언을 염송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광명진언을 무한 반복했다.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기분이었다.

다시 수행 목표를 정했다. 하안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광명사는 ‘재가안거’라고 해서 스님들의 안거 기간과 같은 시기에 재가불자들도 수행법을 한가지 씩 정해서 정진을 실천한다. 나도 이번에 나름의 원칙과 규칙을 정했다. 아마 지금 이 순간 많은 불자들도 각자가 정한 원칙과 규칙에 의거해서 수행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번 안거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기도하는 기간과 독송하는 횟수에 맞게 매일 조금씩 끊임없이 정진 또 정진하는 결제 기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남편과 아이를 위하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부처님 앞에서 투정부리고 싶진 않다.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마음 바깥에서 발생하는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 주되 준 바 없이 남을 돕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

[1391호 / 2017년 5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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